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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
  • 서(1)(書(1))
  • 사애 민 어른【주현】께 올림(上沙厓閔丈【胄顯】)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 / 서(1)(書(1))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2.0001.TXT.0019
사애주 36) 민 어른【주현】께 올림
삼가 봄이 저물어 가는 가운데 대감의 체후는 편안하신지요. 새로 우거하는 곳은 조용하고 한가하여 만년에 편안히 수양하기에 알맞은 곳이리라 생각됩니다. 문장(文丈)께서는 안으로 가정에서 익히고 밖으로 스승에게 배웠으니, 바른 학문과 높은 덕의는 실로 오늘날 후배들이 의심스러운 것을 질정하고 덕을 상고하는 터전이 됩니다. 하지만 궁벽한 시골에 칩거하며 가난과 병으로 고생하느라 아직도 나아가 책상 아래에서 절하고 문 앞을 쓰는 예를 펴지 못하고 있으니, 서운하고 슬픈 저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어른의 숙부이신 교채와(咬菜窩) 선생주 37)이 지은 《심경주해(心經註解)》는 소생이 몇 해 전에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박학하고 정밀하여 사문을 보호한 것에 대해 탄복하였는데, 문득 세상을 떠나셨기에 가까이서 모시지 못한 것이 너무나 한스럽습니다. 듣건대 그 맏아들 되시는 어른께서 그 가법을 계승하여 명망이 높다고 하니, 저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삼가 몇 글자의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는 것을 대신하고자 하였지만 노쇠하고 병든 몸이라 어려움을 꺼려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주석 36)사애(沙厓)
민주현(閔冑顯, 1808~1882)으로,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치교(穉敎), 호는 사애이다.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이다. 44세에 경과 정시(慶科庭試)에 급제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 국방과 교화에 대한 정책을 주장하였고, 만년에는 학문을 강론하면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사애집(沙厓集)》을 남겼다.
주석 37)교채와(咬菜窩) 선생
민백촉(閔百爥, 1779 ~ 1851)으로,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욱지(郁之), 호는 교채와(咬菜窩)이다.
上沙厓閔丈【胄顯】
伏未審春暮台體寧適。新寓蕭散。其爲晩景燕養。想有其所矣。文丈內襲家庭。外事師友。其學問之正。德義之崇。實爲今日後生質疑考德之地。而跧伏窮峽。困於貧病。尙未有拜床掃門之禮。下情悵缺。爲何如哉。尊叔父咬菜窩先生所撰心經註解。生讀之有年。嘆其博洽精微。羽翼斯文。而奄成千古。未得摳衣爲至恨。聞其胤丈繼述厥模。聲望隆重不覺斂衽。切欲以數字代候。而衰疚在躬。畏難未果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