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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
  • 서(1)(書(1))
  • 면암 최장에게 올림(上勉菴崔丈)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 / 서(1)(書(1))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2.0001.TXT.0017
면암 최장에게 올림
양생(梁生)이 돌아오는 편에 삼가 답장을 받고서 덕후(德候)가 매우 좋다는 것을 알았으니, 실로 멀리 있는 이의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소생은 궁벽한 시골에 칩거하고 있기에 안목은 열 길이 없고, 마음은 넓힐 길이 없습니다. 게다가 세상사는 나날이 어지러워지고 쇠병은 날로 깊어지는 가운데 그대로 답습하며 세상일에 골몰하니, 소인이 됨을 면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다만 경기와 호남 사이에 큰 덕망을 지니신 한두 분이 산림에서 도를 지키며 후학을 가르치시니, 비록 한번 찾아가 가르침을 받는 말석에 나아가지 못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실로 여기에 있습니다. 중암(重庵)과 성재(省齋) 두 어른의 근래 안부는 어떠하신지요? 의론이 같지 않은 것은 이보다 앞서 대략 그 설을 들었는데, 보내 주신 편지를 읽고서 비로소 참으로 그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또 자세한 것은 듣지 못했으니, 두 문하에서 변론한 것이 다만 '심(心)' 1자를 가지고 기(氣)와 이(理)로 구분하는 데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별도로 곡절이 있는 것입니까? 나머지 말을 한번 듣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어리석은 저는 일찍이 망녕되이 생각하기를 '심이라는 것은, 당체(當體)로 말하면 기의 허령한 곳이고, 실두(實頭)로 말하면 이의 오묘한 곳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이(理)로 말한 것이 있으니, 정자(程子)가 "심(心)은 생도(生道)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기로 말한 것이 있으니, 주자(朱子)가 "심(心)은 음양과 같다."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와 기로 말한 것이 있으니, 장자(張子)가 "심은 성(性)과 지각을 합한 것이다."라고 한 것주 34)이 이것입니다. 하늘과 같아서 형체(形體)로 말할 수 있고 주재(主宰)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벽계(檗溪) 선생의 말이 이와 같을 뿐만이 아니라 정자와 주자 등 여러 선생의 말이 모두 이와 같습니다. 지금 어찌 유독 그 기가 됨만 보고 그것이 이가 됨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기가 이의 자리를 차지하여 크게 잘못되었으니 어디를 간들 막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른바 물칙(物則)의 구분을 알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또한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심은 물(物)이 되고 인(仁)은 칙(則)이 되며 심은 칙이 되고 신(身)은 물이 되니, 어찌 법칙이 있는데 물이 없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이는 성옹(省翁)이 우연히 잘못 본 곳입니다. 아, 태극이 진면목을 잃고 이와 기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에 어두운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다행히 오직 벽계(檗溪), 노사(蘆沙) 두 선생이 참고하고 절충하며 주선하고 지휘하여 사문(斯文)의 명맥이 실추되지 않게 하였으니, 도가 행해진 지 몇 년 되지 않아 의론이 횡행하는 것이 문하의 고제자 사이에서 나올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중암(重庵)께서 세도를 근심하고 도를 지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남김없이 토론하여 계속하여 그만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식은 한계가 있고 개색(開塞)은 때가 있으니, 행함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마땅히 곡진하게 강론하여야 천천히 그 효과를 볼 것입니다. 또 마땅히 자기에게서 돌이켜서 '내가 고한 것이 그 마음에 불성실함이 있는가? 그 말에 아뢰지 않은 것이 있는가? 그 의리에 밝지 않은 것이 있는가?'라고 반문해야 합니다. 그러나 또 불가하다면 각자가 들은 바를 존중하여 더불어 분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대저 천하의 시비는 잗단 말로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시끄럽게 하면서 그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말하고 침묵하는 것이 마땅함을 잃을 뿐만이 아니라 또 지나치게 따르는 자가 장차 이로 인하여 사단을 일으킬 염려가 있게 될 테니, 이는 예부터 편당을 짓는 습속이 점점 격렬해져서 수습하지 못한 이유인 것입니다. 지난 역사에서 보면 분명하니, 어찌 두려워할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평소 곧은 말과 곧은 행실이 당대에 미움을 받을까 두려워하였는데 지금 또 내부에서 서로 어긋나 갑자기 더욱 배척하니, 또 틈을 노리는 자가 스스로 손을 쓸 계책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어찌 장담하겠습니까. 더구나 도리 쪽에서 말한 것이 아니고 사람을 속이고 사물을 해치며 터무니없고 법으로 삼지 못하는 설에서 나왔으니, 더욱 어찌 곡직을 비교하고 시비를 따지겠습니까. 밝은 일월을 한 조각구름이 어찌 가리겠으며, 낮은 돌은 밟는 이도 낮아지는 법입니다. 계속해서 논쟁하여 해만 있고 보탬이 없기보다는 차라리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혀서 공격하지 않고 저절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처음에 이러한 내용으로 중암께 받들어 고하고자 하였는데 교분은 얕은데 말은 심오하니, 사체로 볼 때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문장(文丈)께서는 부디 강론하는 나머지에 조용히 서로 고하되, 말을 조심하는 경계를 지키고 비방을 막는 훈계를 생각하십시오.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훌륭한 계책을 고이 간직하신다면 세월이 오래될수록 더욱 신묘해지고 광채가 날 것이니, 먼저 가신 스승님의 도를 세상에 크게 밝혀 사방의 학자가 의지하고 앙망하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궁벽한 시골의 천박한 자취가 얼마나 하찮습니까마는, 지우를 받은 친밀함으로 지나친 염려가 이에 이르렀으니, 너무나 참람하고 망녕되어 죄송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살펴 주십시오.
주석 34)장자(張子)가……것
《장자전서(張子全書)》 권2〈정몽(正蒙) 1〉 태화편(太和篇) 제1에 "태허를 말미암아 천(天)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고, 기화를 말미암아 도(道)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으며, 태허와 기화를 합해서 성(性)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고, 성과 지각을 합해서 심(心)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다.[由太虛有天之名, 由氣化有道之名, 合虛與氣有性之名, 合性與知覺有心之名.]"라는 말이 나온다.
上勉菴崔丈
梁生廻。伏承下覆。仍審德候崇適。寶副遠情。生跧伏窮荒。耳目無由開發。胸懷無由展拓。加以世故日深。衰病日侵。因仍汨沒。恐無以免於小人之歸。但畿湖之間。有一二長德。守道林樊。獎進後學。雖未能一操几杖。趨走於唯喏之末。而所以爲究竟之計。實在於此矣。重庵省齋兩丈近節何若。其議論不同。前此粗聞其說。及讀下書。始知信然。而又未得其詳。未知兩門所辨。只在心一字爲氣爲理之分耶。抑別有委折耶。恨未得一聽緖餘也。愚嘗妄謂。心者言其當體。則氣之靈處也。言其實頭。則理之妙處也。是以有以理言者。程子云。心生道是也。有以氣言者。朱子云。心猶陰陽是也。有以理氣言者。張子云。合性與知覺是也。如天一也。而有以形體言。有以主宰言者也。此非獨檗溪先生之言如此。程朱諸先生之言。皆如此。今何獨見其爲氣而不見其爲理耶。氣占理位。大頭已差。則安往而不窒礙耶。且其所謂不知物則之分者。亦恐未然。心爲物。仁爲則。心爲則。身爲物。豈有有則無物之理乎。此是省翁偶失照管處。噫。太極失眞面。理氣昧界至者。久矣幸惟檗溪蘆沙兩先生。參訂折衷。指陳開揮。使斯文命脈。不墜於地。豈知行之未幾年。議論橫決。出於及門高弟之間哉。以重庵憂世衛道之心。宜其極言謁論。縷縷而不已也。然識量有分。開塞有時。行有不合。當委曲講討。徐來其效。又當反之於己。以爲吾之所以吿之者。其心有不誠歟。其辭有不達歟。其義有不明歟。然且不可。則各尊所聞。與之無辨。可也。夫天下是非。頰舌有非可辨。而若譊譊不止。則不惟自失語默之宜。且使過從者。將有夤緣生事之慮。此自古偏黨之所以轉輾層激而莫可收殺者也。前鑑昭昭。豈不可畏。平日之危言危行。恐不無見忤於時。而今又內相矛盾。遽加排擯。又安知無窺伺者。自以得下手之計也。況非道理邊語。而出於誣人害物無據不經之說。尤何足較曲直計是非也。日月之明。寸雲何傷。維扁斯石。履之亦卑。與其爭辨不置而有害無益。曷若靜而鎭之。不攻自熄之爲愈也。初欲以此。奉告重翁。而交淺言深。未知事體之何如。伏願文丈。幸於講聚之餘。從容相告。守括囊之戒。念息謗之訓。珠玉寶蘊。蓍龜珍藏歲。久年深。益神益光。使先先生之道。大明於世。而勿孤四方學者倚仰之情。如何。窮鄕賤迹。何等蟣虱。而受知之密。過慮及此。僭妄踰越。俟罪竢罪。伏乞下賜諒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