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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
  • 서(1)(書(1))
  • 전재 임 좨주 어른【헌회】에게 올림(上全齋任祭酒丈【憲晦】)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 / 서(1)(書(1))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2.0001.TXT.0013
전재 임 좨주주 29) 어른【헌회】에게 올림
의림(義林)은 삼가 아룁니다. 예부터 사문에 이름이 있었던 군자는 모두 사우의 도움을 받아 그 학문을 성취하였습니다. 비록 안자(顔子), 증자(曾子), 정자(程子), 주자(朱子)와 같은 현인이라도 반드시 스승에게 전수받은 뒤에 더욱 그 덕을 드러내었습니다. 더구나 그 아랫사람은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이를테면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시대 절의와 문장이 있는 선비는 그 재주와 그 인품을 가지고 만약 공자(孔子)를 만나 배웠다면 그 성취한 것이 어찌 한 기예와 한 행적이 드러난 선비 정도에서 그쳤겠습니까. 매번 《한서(漢書)》와 《당서(唐書)》를 읽을 적에 일찍이 이러한 인물에 대해 애석하게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의림의 혼우한 재주는 그 누구보다도 심하고 거처하는 곳은 매우 외지며, 또 이끌어 주는 어진 사우가 없어 갈팡질팡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은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내 마땅히 문을 닫고 스스로 수양하여 우선 학업에 조금 진보한 뒤에 세상에 나가서 도가 있는 문하에 나아가 질정해야겠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인하여 몇 년 동안 학문하였지만 더 진보하지 않았고, 금곡(錦谷), 삼계(三溪), 화서(華西)와 같은 선생들이 서로 이어서 세상을 떠났으니, 외롭게 오늘날 세도의 기대를 받는 사람이 몇이겠습니까. 이에 평소의 계획이 허사가 될까 매우 두려워 여러 날 힘들게 가서 문하에 절하였으니, 소생의 평소 소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치쯤 되는 가는 죽간으로는 큰 종을 울릴 수 없고, 썩은 나무는 봄 햇살을 받아 살 수 없으니, 이른바 지극히 어리석은 자는 변화시킬 수 없다는 말은 처음부터 소생에게 해당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문장(文丈)께서는 특별히 포용해 주시는 은혜를 내리고 가르쳐 주시는 정성을 곡진히 쏟아 오랫동안 중병을 앓는 이에게 알맞은 처방을 내리는 것과 같게 해 주소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마땅히 명심하고 가슴에 새겨 평소 수용할 자료로 삼겠습니다. 생은 출발에 앞서 구구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여 미진한 뜻을 삼가 서신으로 감히 이렇게 번독스럽게 아뢰니, 너무나 송구한 마음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주석 29)임 좨주(任祭酒)
임헌회(任憲晦, 1811~1876)로,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명로(明老), 호는 고산(鼓山)ㆍ전재(全齋)ㆍ희양재(希陽齋)이다. 송치규(宋穉圭)ㆍ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이다. 1874년에 이조 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상소하여 사직하였다. 그 뒤 대사헌ㆍ좨주 등에 임명되었다. 경학과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낙론(洛論)의 대가로서 이이(李珥)ㆍ송시열(宋時烈)의 학통을 계승하여 그의 제자 전우(田愚)에게 전수하였다.
上全齋任祭酒丈【憲晦】
義林伏以自古君子之有名於斯門者。莫不由師友之助而成就其學焉。雖顔曾程朱之賢。必待其師而益彰其德。況其下者乎。如漢唐之世節義文章之士。其才器也。其人品也。若遇孔子而從事。則其所就進。豈止於一藝一行之士而已哉。每讀漢唐書。未嘗不爲此等人物而惜之也。義林才稟昏愚最出人下。所居深僻。又無賢師友之指引。擿埴倀倀者。已二十有餘年矣。初以爲吾當杜門自養。姑俟學業之少進然後。出而就正於有道之門矣。因以有年學不加進。而如錦谷三溪華西諸先生。相繼下世則煢煢爲今日世道之望者。爲幾人乎哉。於是切懼素計之歸虛。累日跋涉。獲拜門下。小生平日之願。可謂遂矣。然寸筳不能發洪鍾之音。朽木不能受陽春之化。所謂下愚不移。未始非此生也。伏願文丈特軫包荒之惠。曲加俯就之敎。使積年膏肓。如得對證單方也。第當書紳服膺。以爲平日受用之資。生將臨行。不勝區區。未盡之意。謹以咫尺之書。敢此煩瀆。不任悚仄之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