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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
- 서(1)(書(1))
- 전재 임 좨주 어른【헌회】에게 올림(上全齋任祭酒丈【憲晦】)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 / 서(1)(書(1))
전재 임 좨주주 29) 어른【헌회】에게 올림
의림(義林)은 삼가 아룁니다. 예부터 사문에 이름이 있었던 군자는 모두 사우의 도움을 받아 그 학문을 성취하였습니다. 비록 안자(顔子), 증자(曾子), 정자(程子), 주자(朱子)와 같은 현인이라도 반드시 스승에게 전수받은 뒤에 더욱 그 덕을 드러내었습니다. 더구나 그 아랫사람은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이를테면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시대 절의와 문장이 있는 선비는 그 재주와 그 인품을 가지고 만약 공자(孔子)를 만나 배웠다면 그 성취한 것이 어찌 한 기예와 한 행적이 드러난 선비 정도에서 그쳤겠습니까. 매번 《한서(漢書)》와 《당서(唐書)》를 읽을 적에 일찍이 이러한 인물에 대해 애석하게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의림의 혼우한 재주는 그 누구보다도 심하고 거처하는 곳은 매우 외지며, 또 이끌어 주는 어진 사우가 없어 갈팡질팡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은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내 마땅히 문을 닫고 스스로 수양하여 우선 학업에 조금 진보한 뒤에 세상에 나가서 도가 있는 문하에 나아가 질정해야겠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인하여 몇 년 동안 학문하였지만 더 진보하지 않았고, 금곡(錦谷), 삼계(三溪), 화서(華西)와 같은 선생들이 서로 이어서 세상을 떠났으니, 외롭게 오늘날 세도의 기대를 받는 사람이 몇이겠습니까. 이에 평소의 계획이 허사가 될까 매우 두려워 여러 날 힘들게 가서 문하에 절하였으니, 소생의 평소 소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치쯤 되는 가는 죽간으로는 큰 종을 울릴 수 없고, 썩은 나무는 봄 햇살을 받아 살 수 없으니, 이른바 지극히 어리석은 자는 변화시킬 수 없다는 말은 처음부터 소생에게 해당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문장(文丈)께서는 특별히 포용해 주시는 은혜를 내리고 가르쳐 주시는 정성을 곡진히 쏟아 오랫동안 중병을 앓는 이에게 알맞은 처방을 내리는 것과 같게 해 주소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마땅히 명심하고 가슴에 새겨 평소 수용할 자료로 삼겠습니다. 생은 출발에 앞서 구구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여 미진한 뜻을 삼가 서신으로 감히 이렇게 번독스럽게 아뢰니, 너무나 송구한 마음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 주석 29)임 좨주(任祭酒)
- 임헌회(任憲晦, 1811~1876)로,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명로(明老), 호는 고산(鼓山)ㆍ전재(全齋)ㆍ희양재(希陽齋)이다. 송치규(宋穉圭)ㆍ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이다. 1874년에 이조 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상소하여 사직하였다. 그 뒤 대사헌ㆍ좨주 등에 임명되었다. 경학과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낙론(洛論)의 대가로서 이이(李珥)ㆍ송시열(宋時烈)의 학통을 계승하여 그의 제자 전우(田愚)에게 전수하였다.
上全齋任祭酒丈【憲晦】
義林伏以自古君子之有名於斯門者。莫不由師友之助而成就其學焉。雖顔曾程朱之賢。必待其師而益彰其德。況其下者乎。如漢唐之世節義文章之士。其才器也。其人品也。若遇孔子而從事。則其所就進。豈止於一藝一行之士而已哉。每讀漢唐書。未嘗不爲此等人物而惜之也。義林才稟昏愚最出人下。所居深僻。又無賢師友之指引。擿埴倀倀者。已二十有餘年矣。初以爲吾當杜門自養。姑俟學業之少進然後。出而就正於有道之門矣。因以有年學不加進。而如錦谷三溪華西諸先生。相繼下世則煢煢爲今日世道之望者。爲幾人乎哉。於是切懼素計之歸虛。累日跋涉。獲拜門下。小生平日之願。可謂遂矣。然寸筳不能發洪鍾之音。朽木不能受陽春之化。所謂下愚不移。未始非此生也。伏願文丈特軫包荒之惠。曲加俯就之敎。使積年膏肓。如得對證單方也。第當書紳服膺。以爲平日受用之資。生將臨行。不勝區區。未盡之意。謹以咫尺之書。敢此煩瀆。不任悚仄之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