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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
  • 서(1)(書(1))
  • 노사 선생께 올림(上蘆沙先生)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 / 서(1)(書(1))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2.0001.TXT.0003
노사 선생께 올림
세전(歲前)에 천곡(泉谷) 편에 다시 편지 1통을 올렸는데 자취가 몹시 구차하고 소홀하였기에 황공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인편이 돌아올 적에 나무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답서까지 보내 주시고, 또 누누이 가르쳐 준 말씀은 매우 간절하였습니다. 절하고 받고서 엄숙하게 읽고는 진정으로 감읍하였습니다. 대저 스승과 제자 사이는 실로 은혜와 의리가 두루 극진한 관계입니다. 여기에서 그 정을 다하지 않음이 있다면 비록 대중을 널리 사랑하고 두루 베푸는 행위가 있더라도 패덕(悖德)주 7)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형편없는 소자는 어버이 봉양을 부지런히 하는 일과 전수받고 강학하는 방도에 있어서 일찍이 조금이라도 남과 비슷한 점이 있지 않았으니 소자가 지극한 은혜를 저버린 것이 큽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손을 저어 물리치지 않고 자식처럼 아우처럼 아껴주고 가르쳐 주시니 실로 천지와 같은 도량은 포용하지 않는 사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송구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실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편지를 보낸 이후에 아무런 소식이 없는 가운데 해가 또 바뀌었습니다. 삼가 선생님께서 한가하고 편안히 쉬는 도체(道體)는 새해를 맞아 더욱 건강하십니까? 소자는 연로한 부모님을 봉양하며 한 해를 무사히 보냈으니, 사사로운 분수에 있어서 매우 다행입니다. 소자의 나이는 또 고인이 덕을 세운 나이가 되었지만 성취한 것을 따져보면 도리어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둔주 8) 아래 수준에서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니, 어찌 백배로 공부하여 고인이 진취(進就)한 경지에 이르겠습니까. 생각이 이에 미치자 어느새 개연히 망연자실합니다. 대저 소자의 오늘날 공부는 중단되기는 쉽고 계속하기는 어려우며, 개인적인 근심은 많고 실심(實心)은 부족합니다. 만약 이 한 관문을 통과한다면 발전할 가망이 있을 듯하지만 주저하고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끝내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으니,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지난겨울부터 차츰 독서와 궁리의 공부를 줄이고 매양 더욱 함양하여 근본을 세우는 계책으로 삼고 있는데,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답장을 덧붙임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요사이 특별한 활계(活計)를 하고 있음을 들었네. 본래 가장 좋은 법문(法門)은 "잊어버리지도 말고 조장(助長)하지도 말라.[勿忘勿助]"라는 것과 "솔개는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뛰어오른다.[鳶飛魚躍]"라는 것이니, 여기에 재미를 붙여 힘쓰고 힘쓰는 것이 정히 좋네. 한 장의 종이에 어리석은 말을 대략 적어서 인편을 기다린 지 오래되었는데 이제야 부쳐 보내네.

[문] '정주(定主)' 2자는 사람의 안배를 기다리는 듯하다.
[답] 일찍이 생각건대, 《도설(圖說)》의 이 뜻은 《중용》에 이미 있으니, "진실로 지극한 덕이 아니면 지극한 도가 응결(凝結)되지 않는다."라고 하였네. 정하고 주로 하는 것은 바로 덕을 닦고 도를 응결시키는 일이네. 만약 도리가 천연적으로 있는 것이라 하여 마침내 인력이 개입되지 않게 하고자 한다면 재성(財成)과 보상(輔相)주 9)은 모두 헛말일 것이네.
[문] "형이상하(形而上下)"의 "상하(上下)"는 전후(前後)의 뜻으로 간주한다.
[답] '상하(上下)' 2자는 《논어(論語)》에 이미 있으니, "아래로 배워서 위로 통달한다."라고 하였네. 대개 도는 기(器) 가운데 있으니, 그 경계는 본래 말하기 어려우므로 성인이 '상하'라는 글자를 빌려서 형용하였지만 그 실상은 참으로 상하가 있는 것이 아니네. 상하도 오히려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한번 전환하여 전후로 여긴다면 도와 기가 이미 분리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학상달(下學上達)도 뒤에서 배워 앞으로 통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겠는가. "형이상하를 가지고 말하면 어찌 선후가 없겠는가."라고 한 주자의 이 한 조목은 과연 전후를 가지고 상하로 간주한 듯하지만, 정자와 주자의 평소 의론은 아마도 이와 같지 않은 듯하네. 머물러 두고 생각해야지 갑자기 한 가지 설만 고집하지 않는 것이 어떻겠는가.
[문] 마음은 크고 넓게 가지며 엄숙하게 가지는 것은 둘 다 보존하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기상(氣像)에서 체인(體認)하여 얻어야 한다.
[답] 이곳은 다만 손진인(孫眞人 손사막(孫思邈))의 "담력(膽力)은 크고자 하고 마음은 작고자 해야 한다.[膽欲大心欲小]"라는 한 구절을 가지고 보면 절로 참되고 정확해지네. 기상이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파악하지 못한 듯하네.
[문] 칠정(七情) 외에는 정이 없다.
[답] 마음이 발한 것 중에 기력(氣力)이 있어 계교(計較)할 수 없는 것이 대략 이 일곱 가지가 있네. 가령 한만(閒漫)하게 발동한다면 어찌 일찍이 일곱 가지에 그치겠는가. 또 칠정도 그 실제는 좋아하고 미워하는 두 가지 정이네.
[문] 「기선악도(幾善惡圖)」
[답] 조치도(趙致道)의 도(圖)를 말하는가? 사람의 평상적인 정으로 말하면 기(幾)가 처음 동했을 적에는 혹 쉽게 선악으로 이름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조씨의 뜻에 혹시 이런 점이 있는가? 그러나 이것은 《통서(通書)》의 본지가 아니네. 다만 하나의 '기(幾)' 자에 이르러 잠시도 멈추지 말고 선과 악을 나누어 쪼갤 뿐이네.
[문] 마음을 수렴하고 관섭(管攝)한다.……
[답] 생리가 두루 흐르고 지각이 날로 열린다는 설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듯하니 매우 좋네. 다만 인(仁)이 사덕(四德)의 으뜸이 되는 것은 어찌 반드시 이로 인해 이름한 것이겠는가.
주석 7)패덕(悖德)
《효경(孝經)》 성치장(聖治章)에 "그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을 사랑하는 것을 패덕이라 한다.[不愛其親而愛他人謂之悖德]" 하였으니, 덕의(德義)에 어그러진 것을 패덕이라 한다.
주석 8)열다섯……둔
《논어》〈위정〉에 "나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스스로 섰고,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라고 하였다.
주석 9)재성(財成)과 보상(輔相)
가득 차서 넘치는 것을 억제하고 모자라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충한다는 것으로, 《주역》〈태괘 상(泰卦象)〉에 나오는 말이다.
上蘆沙先生
歲前泉谷便。轉上一書。跡渉苟簡。繼而惶恐。及其便回。不惟不罪。而加以下賜復書。又其教語。縷縷懇惻。拜受莊讀。衷情感泣。夫師弟之間。固恩義兼盡之地也。於此有不盡其情。則雖有其泛愛博施之行。亦不免於悖德之歸況小子無狀。其於服勤就養之節。傳習講受之道。不曾有一毫髣髴於人者。則小子之所以辜負至恩者。重矣。然而先生不之揮斥。愛之敎之。如子如弟。固知天地之量。無物不包。而其感陳愧恧。實不知所以爲心也。信後寥然。歲又改次。伏未審先生燕申道體。迓新增康。小子奉老親。無事經歲。私分萬幸。犬馬之齒。且當古人立德之年。而究厥所造。反在十五志學之下。悠悠歳月。其安能百倍其功。以追古人進就之階級㢤。思之不覺慨然自失。大抵小子今日之功。易間斷而難接續。多私慮而少實心。若得過此一關。似有向進之望而進退上下之間。竟未過此闗去。奈何奈何。自去冬來。稍減讀書窮索之功。而毎加涵餋以爲立本之計。未知得否。更乞下敎伏望。


答附
畧曰聞比來做別様活計。自是太上法門。勿忘勿助。鳶飛魚躍。正好此處得滋味。勉之勉之。一紙瞽説起草。俟便已久。故茲付去。
定主兩字。渉於竢人排定。
竊嘗謂圖說此意。中庸已有之曰。苟不至德。至道不凝焉。定之主之。卽修德凝道之事。若以道理之天然自有。而遂欲不犯人力。則財成輔相。皆虛語矣。
形而上下之上下。作前後意看。
上下二字。論語已有之曰。下學而上達。盖道在器中。其界至。本自難言。故聖人借上下字。形容之。其實非眞有上下也。上下猶非眞有。況一轉而爲前後。則道器不旣離矣乎。下學上達亦可看作後學而前達乎。以形而上下言。豈無先後。朱子此一條。果似以前後看上下。程朱平日之論。恐不如此。留作商量。勿遽執一說如何。
弘廣矝莊。難於併行。須於氣象上體認。
此處。但以孫眞人膽欲大心欲小一句看之。便自眞的。氣象之云。恐沒把捉
七情外無情
心之所發。有氣力無計較者。大約有此七者。若閒漫發動。何嘗止於七耶。又七情。其實好惡兩情。
幾善惡圖
趙致道圖耶。以人之常情言之。幾之始動。或有未易以善惡名者。趙氏之意。或有此耶。然而此非通書本旨。但當於幾一字內。不留頃刻劈破善惡耳。
收斂管攝云云
生理周流知覺日開之說。似是自身経歴中出。甚善。但仁爲四德之長。豈必因此而名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