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
  • 서(1)(書(1))
  • 노사 선생께 올림(上蘆沙先生)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 / 서(1)(書(1))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2.0001.TXT.0001
노사 선생께 올림
삼가 생각건대, 깊어가는 가을에 편안히 지내시는 도체(道體)는 절기에 따라 편안하실 것입니다. 문생(門生)은 22일에 문하에서 돌아오다가 중도에 병을 얻었고, 23일에 유생(柳生)의 집에 도착하여 여러 날 지체하였으니 사사로운 정리에 매우 근심스러웠습니다.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하며 장엄해야 한다는 것주 1)에 대해서 지난번에 이미 가르침을 받았지만 끝내 석연하지 않았습니다. 대저 장엄하고자 하면 각박하게 되고 온화하고자 하면 너무 관대해지니, 어떻게 해야 용모와 생각이 마땅히 서로 배치되는 지경에 이르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기품은 만 가지로 다르니, 학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의 기품이 어떠한지 파악한 뒤에 폐단을 바로잡는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저의 기품을 가지고 살펴보면 너무나 유약하니, 이는 타고난 양기(陽氣)가 부족한 것입니다. 양기가 부족하면 음기(陰氣)는 필시 남음이 있을 텐데, 엄하고 굳세지 못한 성품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품부받은 음기도 부족하니, 그 까닭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해 가르침을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날씨가 아직 춥지 않습니다만 도를 위해 보중하시기를 거듭 바랍니다.

답장을 덧붙임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하고 장엄해야 한다는 말에 대해서 다시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니, 절문 근사(切問近思)하고 터득하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는다는 뜻주 2)을 볼 수 있네. 다만 이렇게 혼미한 사람이 어찌 만분의 일이나마 도움이 되겠는가마는 얕은 견해를 말해 보겠네. 얼굴빛을 장엄하게 하는 것은 온화하기를 생각하는 것의 밖에 있지 않네. 온화하기를 생각한다는 것은 내면에 가까운 말이고, 얼굴빛을 장엄하게 한다는 것은 외면을 가지고 말한 것이네. 그러므로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하고 그 앞에 나아가면 온화하다고 말하는 것이네. 대개 마음에 포악하고 성내는 사사로움이 없으면 그 안색은 반드시 온화하고, 외면에 희롱하고 방랑하는 태도가 없으면 그 용모는 반드시 의젓한 법이네. 만약 온화함을 버리고 장엄함을 구한다면 나는 그 성취한 것이 포악하고 성내는 사사로움뿐일 듯하리라 생각하네. 《시경》에 이르기를 "온화하고 공손한 사람은 덕의 터전이다.[溫溫恭人 惟德之基]"라고 하였으니, 힘쓰게나. 기질의 치우침을 바로잡는 것은 실로 언제 어디서든 힘쓰지 않음이 없어야 하지만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한다는 한 구절의 말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법이라 벗어날 수 없을 듯하네. 내 생각은 이와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별지
한 이치가 마음에 있어 느끼는 바에 따라 응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각각 주장하는 바가 있어 각각 서로 발용(發用)하는 것입니까? 저의 생각으로는, 그 체(體)는 혼연(渾然)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혼연한 가운데 또한 각각 말할 만한 조리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 발(發)할 때는 하나만 발하고 세 가지는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며, 또 한 가지가 발함에 세 가지가 따라서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무릇 오행(五行)의 이치는 그 형세가 서로 필요한 관계이니,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적당하여 어긋나지 않는 것은 의(義)의 마땅함이요, 찬연하게 조리가 있는 것은 예(禮)의 절문(節文)이요, 측은히 여길 바를 아는 것은 지(智)의 분별이니, 이를 미루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동(動자마자 곧 양이요, 정(靜)하자마자 곧 음인데, 이제 '동하여 양을 낳고 정하여 음을 낳는다고 한다면 음과 정, 양과 동은 또 각각 두 가지 물건입니까? 저의 생각으로는, 동정(動靜)은 이기(二氣)의 유행(流行)이요, 음양은 유행의 체단(體段)입니다. 소자(邵子 소옹(邵雍))가 "용(用)은 천지 이전에 일어났고, 체(體)는 천지 이후에 성립되었다.[用起天地先 體立天地後]"라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미발시(未發時)도 기질지성(氣質之性)이 있습니까? 저의 생각으로는, 이 성(性)이 기질 속에 떨어져 있는 것이니, 비록 아직 발하지 않았더라도 기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기가 작용하지 않으므로 청탁(淸濁), 수박(粹駁), 강유(剛柔), 편전(偏全)의 같지 않음이 있음을 볼 수 없고, 단지 수연(粹然)하고 혼연(渾然)할 따름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움, 금수가 금수다움, 초목이 초목다움은 모두 하늘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이 명한 것이 각각 같지 않은데 같다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주역》에서 동(動)으로써 복괘(復卦)를 삼았는데, 주자(周子)가 정(靜)으로써 성(誠)의 복(復)이라고 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저의 생각으로는, 양(陽)은 숙(淑 선(善))이 되고 음(陰)은 특(慝 악(惡))이 되기 때문에 《주역》에서는 양을 주장하여 말하고, 정(靜)은 체(體)가 되고 동(動)은 용(用)이 되기 때문에 주자(周子)는 체(體)를 주장하여 말한 것입니다.주 3)
천지가 오행을 호생(互生)하고, 오행이 또 상생(相生) 순환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저의 생각으로는, 하늘이 1로 수(水)를 낳고 땅이 2로 화(火)를 낳는 것주 4)은 만물의 형화(形化)를 가지고 말한다면 목(木)은 화(火)를 낳고, 화(火)는 토(土)를 낳는 것이고, 만물의 기화(氣化)로 말한다면 도라는 것은 체(體)와 용(用)일 따름입니다. 천명지성(天命之性)을 체라고 한다면 솔성지도(率性之道)를 용이라고 하고, 수도지교(修道之敎)를 용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저의 생각으로는, 천명은 실로 미발 중의 체이고 성품대로 따르는 도는 바로 미발 중에 삼연(森然)히 이미 갖추어져 있는 칭호입니다. 도를 닦는 것에 이르러 비로소 용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답장을 덧붙임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별지의 몇 가지 조목은 명리(名理)의 핵심이 아님이 없지만, 스스로 돌아보면 이처럼 혼미하니 어찌 그대와 더불어 그 논의에 대해 논란할 수 있겠는가. 대저 그대가 이와 같이 구하기를 쉬지 않으니 필시 터득하지 못할 리가 없을 것이네. 늙고 혼미한 사람의 글 끝에 붙인 몇 마디 말로 귀결처를 삼지 말고 더욱더 깊이 탐색하고 푹 젖어들기를 바라네.
첫째 단락에서, 한 이치는 느끼는 바에 따른다는 설은 매우 좋네.
둘째 단락에서, 동(動)은 곧 양(陽)이라는 설에 대해 대답한 말을 고쳐서 "동정은 일기(一氣)의 유행이요, 음양은 이체(二體)의 대립(對立)이다."라고 하면 어떻겠는가.
셋째 단락에서, 미발시도 기질이 있다는 설은 이곳은 도리어 일필(一筆)로 단정 짓기가 쉽지 않네. 다만 "본연(本然)은 기질의 밖에 있지 않으니, 기가 만약 잠깐이라도 맑아진다면 이곳이 바로 본연이다."라고 결단하여 말한다면 족하네.
넷째 단락에서, 인(人)과 물(物)의 천명설(天命說), 이것은 가장 말하기 어려운 곳이네. 천명이 이와 같이 분별이 없다면 하나의 이치가 만 가지로 달라진다는 것은 어디에서 올 수 있겠는가. 이른바 일(一)이라는 것은 분별없는 것이 아님을 모름지기 알아야 하네.
다섯째 단락에서, 동복(動復)에 대한 설은 대의가 옳은 듯하네.
여섯째 단락에서, 오행이 상생(相生)하고 호생(互生)한다는 설은 만약 천지지생(天地之生)이 아니면 오행이 어찌 스스로 상생할 수 있겠는가.
일곱째 단락에서, 체용(體用)에 대한 설은 솔성(率性)을 체로 삼은 것은 혹 그렇지 않은 점이 있네. 도를 닦는 것은 바로 심(心)의 용이지 도의 용이라고 할 수 없네.
주석 1)얼굴빛은……것
《논어》 〈계씨(季氏)〉에 "볼 때는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 들을 때는 밝게 듣기를 생각하며,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하고,……얻을 것을 보고서는 의리를 생각한다.[視思明, 聽思聰, 色思溫,……見得思義.]"라고 한 구절의 '색사온(色思溫)'과 《예기》 〈옥조(玉藻)〉 구용(九容) 중의 '색용장(色容莊)'이라는 말이 상반되므로 질문한 것이다.
주석 2)터득하지……뜻
《중용장구》 제20장의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만이거니와 일단 생각할진댄 터득하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는다.〔有不思, 思之, 不得, 不措也.〕"라는 말을 발췌한 것이다.
주석 3)체(體)를……것입니다
《노사집(蘆沙集)》 권12 「답정계방문목(答鄭季方問目)」에는 '體'가 '情'으로 되어 있다.
주석 4)하늘이……것
《주역》의 수리에 의하면, 하늘은 홀수이고 땅은 짝수이다. 주희가 오행 생성의 이치를 말하면서 "하늘은 1로 수를 낳고, 땅은 2로 화를 낳고, 하늘은 3으로 목을 낳고, 땅은 4로 금을 낳고, 하늘은 5로 토를 낳는다.[天一生水, 地二生火, 天三生木, 地四生金, 天五生土.]"라고 하였다. 《近思錄集解 卷1 太極圖說註》
上蘆沙先生
伏惟秋高。燕申道體對序寧適。門生二十二日。自門下還。中路得病。二十三日到柳生家。累日濡滞。情私甚悶。思溫容莊。向旣聞命。而終未釋然。大抵欲莊則渉於迫隘。欲溫則流於寛緩。何以則容思合宜不至相背乎。人之氣稟。有萬不同。學者必先知自己氣稟之如何然後。可下矯捄之功。以生之氣稟觀之。則柔弱太甚。是稟陽之不足。陽旣不足則陰必有餘。而以不能嚴厲者觀之。稟陰亦不足也。未知其故安在。此處下一語。千萬至祝。天氣未寒。更乞爲道保重。


答附
畧曰思溫容莊。復此提起。足見切問近思不得不措之意。顧此昏翳。何足以助發萬一。以淺見言之。容莊不在思溫之外。思溫者近裏語也。容莊者外面語也。故曰望之儼然。卽之也溫。蓋胷中無暴戾狷忿之私。則其色必溫。外面無戲豫放浪之態。則其容必莊。若舎溫而求莊。則吾恐其成就者。暴戾狷忿之私而己矣。詩曰溫溫恭人。惟徳之基。勉之㢤。矯捄氣稟之偏。固當無時無處不用其力。而色思溫一節。恐是衆人通法。出脱不得。吾意如此。未知如何。


別紙
一理在中。隨感異應耶。抑各有攸主。各相發用耶。曰其體未嘗不渾然。而渾然之中。亦不能無各有條理之可言。其發也。非一者出而三者留在其中。又非一者發而三者因以隨滅也。夫五行之理。其勢相須。如見孺子入井。而惻隱之發也。的當不忒者。義之宜也。燦然有條者。禮之節文也。知所惻隱者。知之分別也。推此可見。
纔動便是陽。纔靜便是陰今曰動而生陽。靜而生陰。則陰與静陽與動。又各兩物耶。曰動静者。二氣之流行也。陰陽者。流行之體段也。邵子所謂用起天地先。體立天地後者。此歟。
未發時。亦有氣質之性耶。曰此性墮在氣質之中。則雖未發。不可謂無氣。但氣不用事。故不見有淸濁粹駁剛柔偏全之不同。而只是粹然渾然而已。
人之爲人。禽獸之爲禽獸。草木之爲草木。莫非天使之。然則天命其各不同而謂之同。何歟。
大易以動爲復卦。周子以静爲誠之復。何耶。曰陽爲淑陰爲慝。故大易主陽而言。静爲體。動爲用。故周子主體而言。天地互生五行。五行。又相生循環。何也。曰天一生水。地二生火者。以萬物形化而言。木生火。火生土者。以萬物氣化而言。道者體與用而已。以天命之性謂體。則以率性之道爲用歟。以修道之敎謂用歟。曰天命固是未發之體。而率性之道。乃未發中森然已具之稱。到修道上。方他說用


答附
畧曰別紙幾條。無非名理肎綮。自顧昏翳如此。安能與之上下其論也。大抵君能如此求之不休。必無不得之理。勿以老昏人尾附數語爲歸宿。更加玩索涵泳。是所望也。
第一段一理隨感說。甚好。
第二段動便是陽說。答語改之曰。動静者。一氣之流行也。陰陽者二體之對立。何如。
第三段未發時亦有氣質說。此處却不易一筆句。但斷曰。本然不在於氣質外,氯若霎時澄淸。則此處便是本然。足矣。
第四段人物天命說。此是最難言處。天命若是無分別。一理則萬殊。從何得來。須知所謂一者。非無分之謂也。
第五段動復說。大意似然。
第六段五行相生互生說。若非天地之生。五行安能自相生乎。
第七段體用說。以率性爲體。容有未然。若修道。乃心之用。不可謂道之用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