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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
  • 시(詩)
  • 서석에서 창수한 시【병서와 10수의 시가 있다】(瑞石唱酬韻【幷序十首】)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 / 시(詩)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1.0002.TXT.0046
서석에서 창수한 시주 100)【병서와 10수의 시가 있다】
정해년(1887, 고종24) 10월 16일. 이튿날 내가 벽지(碧池)에서 단양(丹陽)에 들렀다가 생질 이기호(李紀鎬)와 함께 칠송(七松)주 101)의 안국정(安國禎)주 102) 집에 도착하여 서석산(瑞石山 무등산(無等山))으로 가려 하였는데, 문봉환(文鳳煥), 양규환(梁奎煥)주 103), 김규원(金奎源), 이병섭(李秉燮)주 104), 이태환(李泰煥), 이인환(李仁煥), 문송규(文頌奎)주 105), 오장섭(吳長燮), 오문섭(吳文變)이 먼저 와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침내 출발하여 2, 3리에 이르자 이승우(李承愚)주 106)가 뒤늦게 따라왔다. 화순(和順)의 유촌점(柳村店)에 이르러 투숙하였다. 그 다음 날 빙치(氷峙)를 넘어 수촌점(水村店)에 도착하였다. 문용환(文龍煥), 김경원(金景源)이 어제 약속을 어기고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오직 김장석(金章錫)만은 끝내 오지 않았으니, 너무나 이 유람의 흠결이 된다. 몇 리를 가니 창주동(滄洲洞)이 있었다. 사방에는 산이 우뚝 솟았고 붉게 물든 단풍이 앞뒤에서 비췄으니, 참으로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은 강산이었다. 이평중(李平中)을 방문하였다. 오후에 이평중이 길을 안내하여 마을 뒤로 오르니 석굴(石窟)이 있었는데 너비는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정도였고, 내부에는 작은 굴 하나가 있었는데 맑은 샘물이 솟았다. 굴 비탈을 오른쪽으로 돌아 오르자 노은곡(老隱谷)이 있었으니, 별천지였다. 토질이 비옥하고 물이 달며 몇 이랑의 밭이 있었는데 사람으로 하여금 집을 짓고 머물러 살고 싶은 마음이 있게 하였다.
이평중과 작별하고 영신(永新)에 도착하여 이문방 언씨(李文方彥氏)의 집에 유숙하였다. 다음 날 아침 주인이 도시락을 싸 주었으니, 이는 산에 올라 요기하라는 계책이었다. 조치량(曺治良)이 길을 안내하려는 뜻이 있었기에 또한 함께하였다. 도원동(桃源洞)에 이르러 술 한 병을 사서 조치량에게 차게 하고 올라 농암(籠巖)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가 광석대(廣石臺)에 이르렀다. 광석대는 산의 중턱에 있었으니, 대개 옛날의 절터이다. 안에는 석조(石竈)가 있었고, 석조 위에는 넓은 바위가 있었는데, 평평하고 네모반듯하여 백여 명은 앉을 수 있었다. 광석대의 사면은 층층의 기이한 암석이었으니, 세로로 놓은 것은 병풍과 같고 가로로 놓은 것은 교량과 같으며, 둥근 것은 옹기와 같고 네모난 것은 새장과 같았다. 깎아지른 것은 기둥과 같고 높이 위로 솟은 것은 모자와 같았다. 우뚝 솟은 것은 지붕이 되고 쑥 들어간 것은 방이 되고 빙 두른 것은 담이 되었다. 또 절하는 것, 읍하는 것, 끓어 앉은 것, 단정히 손을 마주 잡은 것, 우두커니 선 것이 있었다. 빙 둘리서 중첩한 것은 귀신이 새긴 듯하여 기뻐 마음이 넓어졌다. 풍혈대(風穴臺)가 있었는데, 대의 가운데가 비어 소라 같았다. 안에서 돌아서 위로 나가 풍혈대 위에 앉아서 아래를 보니 곧장 수백 척 낭떠러지인지라 오금이 저려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내려와서 광석대에 앉아서 둘러 앉아 술을 마시고 시 한 수를 읊었으니, 그 참다운 생각과 뛰어난 흥취는 완연히 안기(安期)주 107)와 적송(赤松)주 108)이 푸른 구름과 붉은 노을 사이에서 한가롭게 거닐며 거스르지 않는 것과 같았다.
도시락으로 요기하고서 산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서 석문(石門)에 이르렀다. 석문 안에는 석실(石室)이 있었는데, 붉게 물든 넝쿨이 석실 밖을 칭칭 감고 있어 마치 한 송이 꽃과 같았다. 석실의 서쪽에는 모두 돌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돌 사이에 난 오솔길은 물을 건너는 곳과 같아서 걸을 때마다 발밑에는 모두 평평한 돌이었다. 돌길을 따라서 가니 옛 절터가 있었다. 큰 돌을 쌓아 계단을 만들었는데, 사람의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닌 듯하였다. 담장을 두른 것은 여전히 그대로 있었지만 이끼와 돌이 오래되어 인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노라니 슬픔이 문득 밀려왔다.
아, 천지가 개벽한 뒤로 이미 이 산이 있었다. 그간에 필시 도인과 승려가 있어 계획하여 만들고 배치하여 한 시대에 가장 성대하게 스스로 뽐내었을 텐데 안개처럼 걷히고 구름처럼 사라졌으니, 또 여기에서 몇 번이나 상전벽해를 겪었는지 모른다. 1리쯤 갔을 때 돌길이 갑자기 끊어졌기에 나무꾼에게 물어 목맥적(木麥磧)에 이르니, 목맥적 가운데 수많은 돌이 우뚝 솟아 부처와 같았다. 절정에 오르니 천황봉(天皇峯), 지황봉(地皇峯)이 있었다. 시야가 시원하여 호남의 산들이 무덤처럼 즐비하였다. 동쪽으로 방장산(方丈山)에 이르고 북쪽으로 계룡산(鷄龍山)에 이르며, 서남쪽은 모두 대해이니, 마치 붉은 구름이 하늘에 잇닿아 있는 듯하였다. 이 산은 바로 한 고을의 종산(宗山)인데도 시야가 먼 것이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한 나라에서 높고 천하에서 높은 산이겠는가. 사람의 식견의 고하와 덕성의 후박은 이것을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북쪽 산기슭으로 내려와 입석(立石)에 이르렀다. 돌은 모두 사각, 육각, 혹은 팔각, 십이각으로 수평을 맞춘 듯 평평하고 먹줄을 놓은 듯 곧으며, 서 있는 것이 기둥과 같고, 포갠 것이 삼[麻]과 같다. 기둥 위에 기둥을 얹고 삼 위에 삼을 연결하여 높은 것은 천 길이나 되고 낮은 것도 백 척을 밑돌지 않았다. 혹 두른 것은 병풍과 같고, 혹 늘어선 것은 목책과 같으며, 층이 진 것은 계단과 같으니, 참으로 천하의 절묘한 곳이다. 대저 이 산에는 가시나무가 자라지 않고, 뱀이 나오지 않는다. 돌은 뾰족하거나 기울어지지 않았고, 봉우리는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았다. 무릇 천지 사이의 정기가 모인 것이 대체로 모두 이와 같다. 입석을 지나 조치량과 작별하고 내려와서 징심사(澄心寺)에 투숙하였다. 다음 날 사찰을 두루 관람하여 반나절의 유람을 하였다. 화순(和順)에 이르러 관여(寬汝 이승우)를 따라 주암서실(舟巖書室)에 들어갔다.
다음 날은 바로 23일이다. 교촌(校村)에 이르러 만화루(萬化樓)에 올라 조금 휴식하고, 만연사(萬淵寺)에 이르니 건물은 허물어지고 잡초는 하늘로 뻗어 있었다. 선정암(禪定菴)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한참 동안 시를 읊조렸다. 저녁에 하동서실(荷洞書室)에 이르자 조인환(曺仁煥), 조동환(曺東煥), 조병길(曺秉吉), 조영환(曺永煥)이 모두 왔기에 만나 보았다. 한밤중까지 강학하고 토론하다가 새벽녘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능저(綾邸)에 이르러 영벽정(映碧亭)에 올랐다. 강물이 불어나 산 빛이 난간에 어른거리는 것을 보고 잠깐 읊조렸다. 음강(陰江)에 이르러 술 한 병을 사서 속금봉(束錦峯)에 오르니 지는 해가 산에 걸려 있어 풍광이 흡족하였다.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읊조린 다음 기쁨을 다 누리고 떠났다.
대저 서석산(瑞石山)은 실로 남쪽 지방의 명승지이고, 벗들은 모두 한 고을의 선사(善士)이다. 평소 좋은 벗과 더불어 평소 노닐기 원하던 곳을 유람하게 되었는데, 더구나 날짜도 길한 데다 절기도 좋아 하늘이 깨끗하고 공기가 맑아 행차는 지체되는 근심이 없고, 길에서는 옷을 걷고 벗는 수고로움이 없었다. 가는 길은 화락하며 나아가고 물러남에 절도가 있었다. 바쁘지만 어지럽지 않고 조화롭지만 방탕한 데로 이르지 않아 여유롭게 가고 느긋하게 왔다. 원하건대, 벗들은 돌아가 각각 힘써서 덕을 키우고 명망을 무겁게 하기를 이 산처럼 대대로 모두 우러러보게 한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유람이 길이 할 말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고을의 서석산(瑞石山)도 장차 외진 남방의 바닷가에서 더욱 빛나 응당 길이 적막하지 않을 것이다.

열다섯 사람이 와서 유람 길에 오르니 (十五人來一路登)
오성에 지는 해가 숲을 붉게 물들었네 (烏城落日入林蒸)
나한산 앞 객점에 투숙하여 (夜投羅漢山前店)
단란히 토론하며 유유히 다시 심지를 자르네 (團討悠悠更剪燈)
주석 100)서석(瑞石)에서 창수한 시
작자가 1887년 8월 17일부터 23일까지 7일간 친구나 문인들과 함께 화순에서 무등산의 광석대(廣石臺), 상봉(上峯), 징심사(澄心寺)를 거쳐 다시 화순의 만연사(萬淵寺) 선정암(禪定庵), 능주의 영벽정, 동귀봉(東歸峯) 등을 유람하고 지은 시이다.
주석 101)칠송(七松)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칠송리를 이른다.
주석 102)안국정(安國禎)
1854~1898. 자는 순견(舜見), 호는 송하(松下)이다.
주석 103)양규환(梁奎煥)
1852~?. 자는 문오(文五), 호는 석오(石塢)이다.
주석 104)이병섭(李秉燮)
1853~?. 자는 봉서(鳳瑞), 호는 백헌(栢軒), 본관은 공주(公州)이다.
주석 105)문송규(文頌奎)
1859~1888. 자는 계원(啓元), 호는 귀암(龜巖)이다.
주석 106)이승우(李承愚)
1855~1919. 자는 관여(寬汝), 호는 난계(蘭溪)이다.
주석 107)안기(安期)
동해(東海)의 봉래산(蓬萊山)에서 살았다는 전설상의 선인(仙人) 안기생(安期生)을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 때 방사(方士) 이소군(李少君)이 자기는 장생불사의 술법을 알고 있고 또 신선도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하여 무제의 신임을 얻었는데, 그가 "제가 일찍이 해상에서 노닐 적에 안기생을 만났더니, 참외만 한 크기의 대추를 먹고 있었습니다.[臣嘗遊海上, 見安期生, 安期生食巨棗大如瓜.]"라고 하였다.『史記 封禪書』
주석 108)적송(赤松)
고대 전설상의 선인(仙人)인 적송자(赤松子)를 이른다. 적송자는 장량(張良)이 유방(劉邦)을 도와 한(漢)나라를 세운 뒤에 권세에 미련을 두지 않고 그 뒤를 따랐다. 『史記 留侯世家』
瑞石唱酬韻【幷序十首】
歲丁亥仲秋旣望。翌日予自碧池。過丹陽。與李甥紀鎬。至七松安國禎家。將爲瑞石行。文鳳煥、梁奎煥金奎源李秉燮李泰煥李仁煥文頌奎吳長燮吳文燮先來在座。遂發至二三里李承愚追躡而至。至和順柳村店討宿。厥明。踰冰峙。到水村店。文龍煥金景源昨日迂違在此等候。喜不可言。惟金章錫終不至。甚爲此遊之缺望。至數里。有滄洲洞。四山壁立。丹楓紅蘿。照映前後。眞繡錯江山也。訪李平中。午後平中引路登村。後有石窟。廣可容數百人。內有一小窟。清泉湧出。自窟磴。右旋而上。有老隱谷。盖别局也。土沃泉甘。有田數頃。令人有卜築盤旋之意。別平中。到永新宿。李丈方彥氏家。翌朝。主人裹飯菜。盖爲登山療飢計也。曺治良以指路之意。亦與之俱。至桃源洞。沽一壺酒。尾治良而登。至籠巖小憩。至廣石臺。臺在山之中腰。盖古寺遺址也。内有石竈。竈之上。有廣石。平鋪方正。可坐人百餘。臺之四面。層巖奇石。縱者如屏。横者如橋。圓者如甕。方者如籠。削而直者如柱。秀而翹者如帽。穹窿而爲屋。窈窕而爲室。周遭而爲垣。又有拜者。揖者跪者端拱者凝立者。環列重疊。神鑱鬼刻。怡然而心曠。有風穴臺。臺中有空如螺殼。內旋上出。坐於臺上。下見直數百尺。足慄不可久留。下而坐廣石臺。列坐行酒。歌詩一絶。其眞想逸趣。宛然如安期赤松逍遥唯諾於青雲紫霞之間。因畫飯療飢。乃循山而右。至石門。門之內有石室。紅蘿丹薜。縈繞其外。便若一朶花房。石室之西。皆積石漲。漫石間有徑如濟渡處。步步下足皆平石。由石徑去。得舊寺遺址。積貼巨石以爲堦級。似非人力所造。周垣繞墻。依然尙在。而苔久石古。無跡可據。徘徊移時。悲愴旋至。嗚呼自開闢以來。已有此山。其間必有仙翁釋子。經營排鋪。全盛自誇於一時。而烟消雲空。又不知其閱此幾番滄桑也。行里許。石徑忽斷。問於樵夫。至木麥磧磧中萬石。立立如佛。上絕頂。有天皇峰地皇峯。眼界豁然湖省羣山。累累如培塿。東盡方丈。北至雞龍。西南皆大海。如紅雲連天。此山是一方之宗也。而眼界之遠。猶尙如此。況高於一國高於天下者乎。人之器識高下。體德厚薄。見此可以有感矣。下北麓。至立石。石皆四隅六隅。或八隅十二隅。準以平之。繩以直之。竪之如柱。積之如麻。柱上加柱。麻頭緝麻。高者千仞。卑不下百尺。或繞如屛障。或列如樹柵。或層如階梯。信天下絕妙處也。大抵此山不生荆棘。不産蟲蛇石不尖側。峯不偏斜。凡天地間正氣所鍾。類皆如此。過立石。別治良。下宿澄心寺。翌日。歷覽寺刹以成半日之遊。至和顺隨寬汝入舟巖書室。翌日卽二十三日也。至校村登萬化樓。小憩。至萬淵寺。屋宇毀頹。草莽漲天。至禪定菴點心。暢咏久之。暮至荷洞書室。曺仁煥曺東煥曺秉吉曺永煥皆來相見。達夜講討。雞鳴而寢。翌日。至綾邸。登映碧亭。見江水漲滿。山光搖檻。風詠數餉。至陰江。沽一壺酒。上束錦峯。夕陽在山。風光宜人。一觴一詠。盡歡而去。夫瑞石固南方勝區。諸友皆一鄉善士。與平生好友。遊平生所願遊。況日吉辰良。天朗氣清。行無濡滯之患。道無揭厲之勞。行道雍容進退有節繁而不雜。和而不流。于于而去。悠悠而來。願諸友歸各勉焉。使碩德重望。如此山之世皆仰止。則不惟吾儕今日之遊。永有辭焉。一區瑞石。亦將增光於南荒海曲之間。而不應長寂寂也。

十五人來一路登。烏城落日入林蒸。夜投羅漢山前店。團討悠悠更剪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