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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거 감회【6수】(齋居感懷【六首】)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 / 시(詩)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1.0002.TXT.0011
재거 감회【6수】
천지가 한번 열린 뒤에 (乾坤一以闢)
성인들이 계승하고 개도하여 밝혔네 (聖聖繼開明)
주나라 쇠약하여 황극주 9)이 실추되자 (周衰皇極墜)
하늘이 중니를 내리셨네 (天降仲尼生)
진채주 10)에서 날이 저물었으니 (陳蔡日云暮)
수레를 돌려 옛길로 돌아왔네 (回車返舊程)
산정하고 조술하여 성현의 법도 보존하여 (删述存聖軌)
만고에 태양처럼 밝게 드러내었네 (萬古太陽呈)

사물주 11)로 심법을 전하고 (四勿傳心法)
팔조목주 12)으로 학규를 보였네 (八條示學規)
무성주 13)에서 노년을 마치려 할 때 (武城終老日)
바름을 얻었으니 다시 무엇을 하랴 (得正復何爲)
성손주 14)이 이어서 나셨으니 (聖孫來繼作)
도를 근심하여 『중용』을 지을 때 (憂道著書時)
치우치지 않고 바뀌지 않는 이치주 15)를 (不偏不易理)
손바닥 가리키듯 쉽게 사람들이 알도록 하였네 (指掌要人知)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초빙을 받아 유세하러 다녔지만주 16) (齊梁遊聘路)
때를 만나지 못했으니 다시 어디로 가랴 (不遇復何之)
우리에게 넓고 편안한 집을 열어 주었으니주 17) (開我廣安宅)
호연하여 끝이 없네 (浩然無岸涯)

바른길이 이미 덤불로 막혔으니 (正路已榛塞)
현능한 사람 견문에 빠졌네주 18) (賢才溺見聞)
누가 성악설을 전파하였나 (誰傳性惡說)
사람들 아름답고 신기한 문장 저술하네 (人著美新文)
비록 칭찬할 만한 것이 있더라도 (雖有可稱者)
어그러진 것은 본원에 있네 (所差在本源)
가상한 용문자주 19)는 (可愛龍門子)
우뚝히 혼탁한 시속에서 벗어났으나 (勃然出俗昏)
집을 짓는 것은 아이의 일이 아닌데 (竪屋非兒事)
어떻게 함부로 잘난 체하는가 (如何妄自尊)
창려주 20)는 저술이 많으니 (昌黎多著述)
간간이 전현의 말을 확대하여 넓혔네 (間間擴前言)
문인의 들뜨고 방만한 습속 (文人浮放習)
공에게 남아 있는 것 애석하네 (可惜於公存)

용릉주 21)에는 봄날 낮이 고요하니 (舂陵春晝靜)
태극도주 22)를 새로 완성하였네 (太極圖新成)
쓸쓸한 천년 뒤에 (寥落千秋下)
성인을 이어 후학을 인도한 공 가볍지 않네 (繼開功不輕)
이정주 23)은 학문을 성취하여 (二程登肄業)
전수한 것이 성명에 있었네 (傳受在誠明)
혼연히 원기가 모이니 (渾然元氣會)
진실로 그 베풂이 넓었네 (允矣厥施宏)
혁혁한 유작과 양시주 24)의 무리는 (赫赫游楊輩)
귀의하여 모두 명성이 났네 (得歸倂有聲)
동남쪽 도를 창도한 곳에서 (東南倡道地)
나종언주 25)은 영걸 중에 뛰어났네 (羅氏出群英)
빛을 감추자 남들은 알지 못하였는데 (潛輝人不識)
오직 연평 이동주 26)만 알았네 (惟有李延平)
은거한 지 사십 년 (屛居四十載)
빙월주 27)은 광채를 드러내었네 (氷月露光精)

민 땅주 28) 냇물 검포주 29)에서 나왔으니 (閩溪出劍浦)
낙수와 사수주 30)가 근원일세 (洛泗是其源)
태극의 심오한 이치를 발휘하고 (發揮太極蘊)
여러 사람의 말을 모아 절충하였네 (集折諸家言)
인간의 틀을 보존하게 하여 (爲存人樣子)
우리를 짐승에서 벗어나게 하였네 (俾我免鷄豚)
태산이 갑자기 무너지니주 31) (泰山忽已壞)
은미한 뜻 다시 가라앉아 어두워지려 했는데 (微義復沈昏)
황간과 채원정주 32) 등의 제자들 (黃蔡二三子)
사도를 존숭할 수 있게 하였네 (能令師道尊)
심의의 부탁주 33)을 저버리지 않으니 (不負深衣托)
어떤 집안의 자손에게 전하랴 (傳之何氏孫)
진실하고 각고면려한 말을 (眞實刻苦語)
가슴에 새겨 늘 보존하였네 (佩服常存存)
긴 휘파람주 34) 우리들의 일이 아니니 (長嘯非吾事)
왕백주 35)은 늦게 문하에 나아갔네 (王公晚及門)

왕공의 문하에 길보주 36)가 있으니 (王門有吉父)
금화산에서 도를 창도하였네 (倡道金華山)
어찌 모두 선하게 하려는 뜻주 37) 없으랴 (豈無兼善志)
허형과 오징주 38)의 반열을 따르지 않았네 (不逐許吳班)
정성스럽게 전한 의발이 (眷眷傳衣鉢)
백운 처사주 39)에게 돌아갔네 (白雲處士還)
여러 공이 힘써 준 덕택에 (賴此諸公力)
오랑캐조차 공자와 안자를 알았네 (虜人解孔顏)
어찌 알았으랴 육씨주 40)의 화가 (寧知陸氏禍)
명나라 연간에 더욱 심해질 줄을 (轉劇皇明間)
오직 경헌주 41)이 있어 (惟有敬軒子)
우뚝이 속태를 벗었네 (挺然出俗寰)
요어 두세 편주 42)은 (要語數三編)
읽으면 완악함을 깨뜨릴 수 있네 (讀之可砭頑)
주석 9)황극(皇極)
기자(箕子)가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천하를 경륜하는 법으로 제시한 아홉 가지 법[九疇] 가운데 다섯 번째 항목으로, 임금이 중도를 지키고 서서 천하 백성의 표준이 되는 것을 말한다.『書經 洪範』
주석 10)진채(陳蔡)
진과 채는 공자가 천하를 주유(周遊)하던 시절 온갖 고난을 겪었던 지역이다.
주석 11)사물(四勿)
안연(顔淵)이 공자에게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가 "극기복례(克己復禮)가 바로 인이다."라고 대답하면서, 구체적인 조목으로 제시한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에서 나온 말이다. 『論語 顔淵』
주석 12)팔조목(八條目)
공자의 제자 증자가 지었다는 『대학장구』의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를 말한다.
주석 13)무성(武城)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고을로,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무성의 읍재(邑宰)가 되어 백성들에게 예악을 가르친 일이 있다.
주석 14)성손(聖孫)
자사(子思)를 가리킨다. 자사는 공자의 손자로, 『중용』을 지었다.
주석 15)치우치지……이치
정이천(程伊川)은 중용을 해석하기를 "치우치지 않음을 중이라 하고 바뀌지 않음을 용이라 하니, 중은 천하의 바른 도이고 용은 천하의 정해진 이치이다.[不偏之謂中, 不易之謂庸. 中者, 天下之正道; 庸者, 天下之定理.]"라고 하였다.
주석 16)제나라와……다녔지만
맹자(孟子)는 전국 시대 양 혜왕(梁惠王)과 제 선왕(齊宣王)의 초빙을 받아 일정한 책임이 없는 객경의 신분으로 제나라와 위나라를 왕래하였다. 『孟子 梁惠王, 公孫丑』
주석 17)넓고 편안한 집
인(仁)을 뜻하는 말로,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고 의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편안한 집을 비워 두고 살지 않고 바른 길을 버려두고 따르지 않으니, 슬프다.[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 曠安宅而不居, 舍正路而不由, 哀哉.]"라고 하였다.
주석 18)현능한……빠졌네
어질고 재주 있는 선비들이 견문(見聞)에 빠져서 세속을 따라 일상적인 것만을 고수한다는 말이다.
주석 19)용문자(龍門子)
수(隋)나라 때 경학가 왕통(王通, 584 ~617)을 이른다. 자는 중엄(仲淹)이고 강주(絳州) 용문(龍門) 사람이다. 촉군 사호서좌(蜀郡司戶書佐), 촉왕 시독(蜀王侍讀) 등을 역임하였다. 육경(六經)의 효용을 중시하였으며, 그 체재를 본떠 여러 저술을 남겼으나 모두 전해지지 않고, 『논어』를 모방하여 지은 『중설(中說)』만 남아 있다.
주석 20)창려(昌黎)
당(唐)나라의 문장가 한유(韓愈, 768~824)의 호이다.
주석 21)용릉(舂陵)
중국 호남성 영원현(寧遠縣)에 있는 지명인데, 북송(北宋)의 철학자인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가 이곳에 살았다.
주석 22)태극도(太極圖)
주돈이(周敦頤)가 우주의 근본과 만물 발전의 이치를 표현한 도형이다. 이를 해설한 것이 태극도설(太極圖說)인데, 송대(宋代) 철학(哲學)의 중요한 근간이 된다.
주석 23)이정(二程)
송나라 때의 학자 정호(程顥, 1032~1085), 정이(程頤, 1033~1107) 형제를 말한다. 정호의 자는 백순(伯淳), 호는 명도(明道)이고, 정이의 자는 정숙(正叔), 호는 이천(伊川)이다. 당시에 형제가 도학군자로 칭송을 받았다.
주석 24)유작(游酢)과 양시(楊時)
북송(北宋)의 유학자인 정이(程頤)의 제자이다. 유작의 자는 정부(定夫), 호는 광평(廣平), 시호는 문숙(文肅)이며 건양(建陽) 사람이다. 양시의 자는 중립(中立), 호는 구산(龜山), 시호는 문정(文靖)이며 검남(劍南) 사람이다.
주석 25)나종언(羅從彦)
북송(北宋)의 유학자이다. 자는 중소(仲素), 시호는 문질(文質)이다. 복건성(福建省) 남검(南劍) 출신으로, 동향의 선배 구산(龜山) 양시(楊時)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흔히 예장선생(豫章先生)이라 일컬어진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로는 나부산(羅浮山)에 들어가 온종일 단정히 앉아 학문에 정진하여 마침내 구산 문하의 일인자가 되었다. 정자(程子)의 학문이 바로 양시를 거쳐 나종언에게 전해지고 다시 연평(延平) 이동(李侗)을 거쳐 주자(朱子)에게로 이어져 이학(理學)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주석 26)연평(延平) 이동(李侗)
중국 송(宋)나라 유학자이다. 자는 원중(願中), 시호는 문정(文靖)이며, 남검(南劍) 사람이다. 나종언(羅從彦)이 양시(楊時)에게 낙학(洛學)을 전수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종언에게 가서 배워 양시, 나종언과 함께 '남검 삼선생(南劍三先生)'으로 칭해진다.
주석 27)빙월(氷月)
빙호추월(氷壺秋月)의 줄인 말로, 고결한 인품을 형용하는 말이다. 남송(南宋)의 등적(鄧迪)이 주자의 스승인 이동(李侗)의 인품을 말하면서 "마치 얼음으로 된 호로병에 밝은 가을 달이 담겨 있는 것처럼 티 없이 맑고 깨끗하니, 우리들이 미칠 수 없다." 하였다. 『宋史 李侗列傳』
주석 28)민 땅
민중(閩中)을 가리킨다. 민중은 주희(朱熹)가 강학하던 곳으로, 주희나 주자학(朱子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주석 29)검포(劍浦)
이동(李侗)이 남검주(南劍州) 검포(劒浦) 사람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석 30)낙수(洛水)와 사수(泗水)
낙수는 낙양 근처에 있는 강 이름이다.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는 낙양(洛陽) 사람이다. 이곳에서 두 형제가 성리학을 공부하고 가르쳤다. 사수는 노(魯)나라 곡부(曲阜)에 흐르는 강이다. 이곳은 공자(孔子)의 고향으로 공자가 이 지역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으므로 유교 학문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주석 31)태산이 갑자기 무너지니
현인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주자가 죽었다는 의미이다.
주석 32)황간(黃榦)과 채원정(蔡元定)
모두 주희(朱熹)의 제자이다. 황간은 자가 직경(直卿), 호가 면재(勉齋), 시호가 문숙(文肅)이며 민현(閩縣) 사람이다. 채원정은 자가 계통(季通), 호가 서산(西山), 시호가 문절(文節)이며 건양(建陽) 사람이다.
주석 33)심의(深衣)의 부탁
수제자로서 도통(道統)을 전해 받았다는 뜻이다. 주자가 병이 들어 위독해졌을 때 심의와 저서(著書)를 제자인 면재(勉齋) 황간(黃榦)에게 주면서 "내 도(道)의 부탁이 여기에 있다. 이제 나는 아무런 유감이 없다." 하였다. 『朱子大全 附錄 卷6 年譜副本庚申』
주석 34)긴 휘파람
은자가 부는 휘파람이란 뜻으로, 은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왕유(王維)의 시 「죽리관(竹里館)」에 "깊은 대숲에 홀로 앉아, 거문고를 타다가 길게 휘파람 부네.[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라고 하였다.
주석 35)왕백(王栢)
1197~1274. 남송(南宋) 때 경학가로 자는 회지(會之) 또는 백회(伯會), 호는 노재(魯齋), 시호는 문헌(文憲)이며 금화(金華) 사람이다. 왕백은 하기(何基)에게서 배웠고 하기는 주자의 제자인 면재(勉齋) 황간(黃榦)에게서 배워 주자의 학문을 계승하였다. 주자가 죽기 3년 전에 왕백이 태어났으므로 이렇게 말한 듯하다.
주석 36)길보(吉甫)
송말원초의 학자인 김이상(金履祥)의 자이다. 김이상은 만년에 인산(仁山)에 은거하였다. 하기(何基)와 왕백(王柏)에게 정주학을 배워 주자의 학통을 이었다. 송나라가 멸망하자 벼슬하지 않고 금화산(金華山)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주석 37)모두……뜻
『맹자』「진심 상(盡心上)」에 "옛사람은 뜻을 이루면 백성에게 은택을 입히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자신을 수양하여 세상에 드러난다. 궁하면 홀로 자신을 선하게 하고 영달하면 천하를 모두 선하게 한다[古之人, 得志, 澤加於民, 不得志, 修身見於世. 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라고 하였다.
주석 38)허형(許衡)과 오징(吳澄)
허형은 원나라 초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자는 중평(仲平), 호는 노재(魯齋),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원나라 초기의 학계에 주자학(朱子學)의 기초를 닦았으며 주자와 육구연(陸九淵)의 학문을 조화시키려 노력했고, 공담(空談)만을 일삼는 이학(理學)을 비판하였다. 오징은 원나라 초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자는 유청(幼淸), 호는 초려(草慮)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주자의 사전제자(四傳弟子)로, 이학(理學)을 위주로 하면서 심학(心學)을 아울러 취하여 주륙이가(朱陸二家)의 사상을 조화시켰다.
주석 39)백운 처사(白雲處士)
허겸(許謙)으로, 자는 익지(益之)이다. 자호가 백운산인(白雲山人)이었으므로 사람들이 백운 선생이라고 불렀다. 김이상(金履祥)에게 배웠다. 동양(東陽)의 팔화산(八華山)에서 40년 동안 강학하였다. 하기(何基)·왕백(王柏)·김이상 등과 함께 금화(金華) 주자학의 중요한 전승자로, 금화 사선생(金華四先生)이라고 불렸다.
주석 40)육씨(陸氏)
육구연(陸九淵)을 이른다. 육구연은 남송의 유학자로, 호는 존재(存齋) 또는 상산(象山)이고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동시대 주희(朱熹)의 학설을 비판하면서 후에 양명학(陽明學)으로 발전하는 육학(陸學)을 정립하였다.
주석 41)경헌(敬軒)
명나라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설선(薛瑄, 1389~1464)의 호이다. 자는 덕온(德溫), 시호는 문청(文淸)으로 성조(成祖) 영락(永樂) 19년(1420) 향시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벼슬이 예부우시랑(禮部右侍郞) 겸 한림원학사(翰林院學士)에 이르렀다. 평생 독실하게 주자의 학문을 연구하여 명대 성리학의 종장(宗匠)으로 일컬어진다.
주석 42)요어(要語) 두세 편
명나라의 이학가(理學家) 설선(薛瑄)의 저술인 『독서록(讀書錄)』을 가리킨다. 총 2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가 평소 몸소 실천하면서 마음으로 터득한 것을 기록한 책으로, 주로 이기(理氣)와 성리(性理) 문제를 다루었다. 명나라 초기 정주학의 대표적인 저술이다.『明史 儒林列傳』
齋居感懷【六首】
乾坤一以闢。聖聖繼開明。周衰皇極墜。天降仲尼生。陳蔡日云暮。回車返舊程。删述存聖軌。萬古太陽呈。

四勿傳心法。八條示學規。武城終老日。得正復何爲。聖孫來繼作。憂道著書時。不偏不易理。指掌要人知。齊梁遊聘路。不遇復何之。開我廣安宅。浩然無岸涯。

正路已榛塞。賢才溺見聞。誰傳性惡說。人著美新文。雖有可稱者。所差在本源。可愛龍門子。勃然出俗昏。竪屋非兒事。如何妄自尊。昌黎多著述。間間擴前言。文人浮放習。可惜於公存。

舂陵春晝靜。太極圖新成。寥落千秋下。繼開功不輕。二程登肄業。傳受在誠明。渾然元氣會。允矣厥施宏。赫赫游楊輩。得歸倂有聲。東南倡道地。羅氏出羣英。潛輝人不識。惟有李延平。屛居四十載。冰月露光精。

閩溪出劒浦。洛泗是其源。發揮太極蘊。集折諸家言。爲存人樣子。俾我免雞豚。泰山忽已壞。微義復沉昏。黃蔡二三子。能令師道尊。不負深衣托。傳之何氏孫。眞實刻苦語。佩服常存存。長嘯非吾事。王公晚及門。

王門有吉父。倡道金華山。豈無兼善志。不逐許吳班。眷眷傳衣鉢。白雲處士還。賴此諸公力。虜人解孔顏。寧知陸氏禍。轉劇皇明間。惟有敬軒子。挺然出俗寰。要語數三編。讀之可砭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