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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29년(기사) / 4월(四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14.0004.TXT.0027
27일(경진)
-상장집서(上章執徐)-. 맑음. 일전에 술자리에서 써준 작별시를 기록한다.

〈삼가 후석 오준선주 56) 선생이 이별할 때 준 시에 차운하다〉(謹次後石先生贈別韻)
도를 꾀하며 벗을 우러러보지만,(謀道仰知舊)
용진산의 그윽한 곳에 이르기 어렵네.(難到湧珍幽)
삼산(三山)주 57)에서 계를 묻은 정의로 인해,(修契三山誼)
물가에서 이별하며 시를 주네.(贈別一水頭)
오늘날 윤리를 싫증내는 것 근심하며,(憂今斁倫理)
나에게 훈계하며 세상의 도에 신중하라네.(戒我愼世道)
다른 날 서로 만나길 약속하니,(他日相逢約)
서글픈 감회 끝이 없네.(悵懷正悠悠)

후석 오준선의 증별시이다.

〈서암재 옹과 이별하며 주다〉(贈別棲岩齋翁)
삼산에서 옛날에 짝이 되어 놀았는데,(三山舊遊伴)
용진산의 그윽함을 찾아 방문해주었네.(訪到湧珍幽)
나를 보고 웃으면서 이제 늙은이 되었다고 하는데,(笑我今黃耈)
그대를 보아도 또한 흰머리가 되었군.(看君亦白頭)
서암과 하는 말마다 흥미로운데,(滿說棲岩興)
세간에선 대부분 말하기 두려운 것이네.(世間多畏道)
두 늙은이 다시 이별을 애석해하니,(兩衰還惜別)
그리움은 갈수록 끝이 없으리.(懷思轉悠悠)
용진병생 오준선이 남을 시켜 씀.

전북 고창군 부안면 검곡리의 지포(芝圃) 김도병(金道炳) -자는 덕중- 에게 준 지포 원운시를 기록한다.

지초를 모종함에 어찌 다만 석전의 모래일거나.(蒔芝奚特石田沙)
구름 속 신령한 뿌리 찬란하게 비껴있네.(雲裏靈根燁燁斜)
인간 세상에서도 신선의 약 지을 만하니,(可作人間仙子藥)
천상의 벽도화를 구하지 않네.(不求天上碧桃花)
노래 전한 사호(四皓)주 58)는 낙지를 꺼려했고,(歌傳四皓嫌樂地)
술서로 십황(十黃) 얻은 이 장수가에 합당하네.(術得十黃合壽家)
동행(董杏)주 59)이 숲 이루기 어려운 일 아니니,(成林董杏非難事)
음덕이 우선하여 끝없는 복 얻으리.(蔭德爲先獲福遐)
주석 56)오준선(吳駿善, 1851~1931)
자는 덕행(德行), 호는 후석(後石), 본관은 나주이다. 오하규(吳夏圭)의 아들로 오항규(吳恒圭)에게 입양되었다. 기정진의 문인으로, 임헌회·송근수·최익현·송병선·송병순 등과도 폭넓게 종유하였다. 1917년에 용진산에 용진정사를 지어 후학을 가르쳤으며, 유집으로 《후석유고(後石遺稿)》가 있다.
주석 57)삼산(三山)
송사 기우만(奇宇萬)이 1896년에 은거하던 장성 삼성산의 삼산재(三山齋)를 말한다.
주석 58)사호(四皓)
상산사호(商山四皓), 즉 진(秦)나라 말기에 폭정(暴政)을 피해 상산(商山)에 숨어 살았던 네 명의 노인을 말하는데, 후세에 나이도 많고 덕도 높은 은사(隱士)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한고조 유방은 황제에 오른 뒤 상산사호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초청했으나 상산사호는 '자지가(紫芝歌)'를 부르며 거절했다고 한다.
주석 59)동행(董杏)
동봉(董奉)의 살구란 뜻인데, 행림(杏林)이란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삼국(三國) 시대 오(吳)나라 동봉이 여산(廬山)에 은거하면서 사람의 병을 치료해 주고 치료비 대신 중환자는 살구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 경환자는 살구나무 한 그루를 심도록 하였는데,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자 울창한 숲이 되었다. 이로 인해 후세 사람들이 행림을 양의(良醫)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였다.
二十七日 庚辰
【上章執徐】。陽。記日前所酬酌贈別韻。

〈謹次後石先生贈別韻〉
謀道仰知舊。難到湧珍幽.修契三山誼。贈別一水頭.憂今斁倫理。戒我愼世道.他日相逢約。悵懷正悠悠.

後石贈別詩。

〈贈別棲岩齋翁〉
三山舊遊伴。訪到湧珍幽.笑我今黃耈。看君亦白頭.滿說棲岩興。世間多畏道.兩衰還惜別。懷思轉悠悠.
湧珍病生 吳駿善 倩草

又記。 贈全北高敞郡富安面檢谷里金道炳字德中芝圃原韻。
蒔芝奚特石田沙.雲裏靈根燁燁斜.可作人間仙子藥。不求天上碧桃花.歌傳四皓嫌樂地。術得十黃合壽家.成林董杏非難事。蔭德爲先獲福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