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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29년(기사) / 3월(三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14.0003.TXT.0024
24일(무신)
-저옹군탄(著雍涒灘)-. 광주(光州) 서창면(西倉面)의 봉산정사(鳳山精舍)에 갔다.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 선생, 안강현령(安康縣令)의 손자 대석(大錫)윤석(允錫), 안강현령이 마침 방축 안에 있었다. 삼산(三山) 이계종(李啓琮)씨, 남평(南平)야산(夜山) 이홍수(李洪洙), 금구동(金龜洞)문정기(文正基)가 와서 참여하였다.

들은 것을 기록한다.
옛적 포증(包拯)주 31)합비(合肥) 사람인데, 본군의 수령으로 왔다. 조금도 법을 굽혀서 고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로 아부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세속에서 서로 비방하니, 공이 이에 시를 지어 자신의 뜻을 보여 주었다. 그 중에 일련(一聯)에 이르기를 , "곧은 가지는 마침내 동량(棟樑)이 될 수 있고, 진실로 강한 것은 갈고리로 만들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 정도를 지키고 굽히지 않음이 이와 같다.
책을 보면 곧 잊어버리지만, 마치 성긴 체에 물을 걸러 아직 습기는 남아 있는 같다.
음덕은 마치 귀가 우는 것과 같아서 남은 알지 못하는데 자기 홀로 그것을 아는 것과 같다. -수나라 이사겸(李士謙)주 32)-
주석 31)포증(包拯, 999~1062)
송 인종(宋仁宗) 때 사람으로 자는 희인(希仁), 시호는 효숙(孝肅)이다. 벼슬은 천장각 대제(天章閣待制)ㆍ개봉지부(開封知府)ㆍ추밀부사(樞密副使)ㆍ예부 시랑(禮部侍郞)을 지냈다. 강직하기로 유명하였다.(《송사(宋史)》 권316 〈포증열전(包拯列傳)〉)
주석 32)이사겸(李士謙)
자는 자약(子約)으로, 수나라 조군(趙郡) 평극(平棘) 사람이다. 선행을 즐기고 베풀기를 좋아하였다. 위 글은 《수서(隋書)》 열전(列傳) 42, 이사겸전에 나온다.
二十四日 戊申
【著雍涒灘】。作光州西倉面鳳山精舍之行。 弦窩先生光善氏。 安康令大錫允錫安倅。 適有防築內。三山啓琮氏。 南平夜山李洪洙金龜洞文正基來參。

記所聞。
包拯合肥人。 出守本郡。不肯少屈法。 以阿鄕曲之好。故流俗相謗議。 公乃爲詩。 以見意。其間一聯云 "直幹終爲棟。 眞剛不作鉤。" 其守正不回。 如此。
看書旋忘。 如疏篩漉水。 猶有濕氣。
陰德。 如耳鳴。 人不知。 而已獨知之。【隋李士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