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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28년(무진) / 7월(七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13.0008.TXT.0029
29일(을묘)
-전몽단알(旃蒙單閼)-. 맑음.

지송욱(池松旭)이 저술한 《척독대방(尺牘大方)》주 121)의 '난진(亂眞)의 설'에 대해 변론하다. 《물리학》에서 "물리학의 구분은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예컨대 금ㆍ돌ㆍ나무의 견고한 것과 물ㆍ술ㆍ기름ㆍ수은의 종류와 바람과 안개ㆍ증기의 움직이는 것이 이것이다. 고체가 변하여 액체와 기체가 되고, 기체가 변하여 액체와 고체가 되어, 모두 인공(人工)을 따라 변화하나, 이것은 화학과 경제학으로 서로 표리가 되어 신학문 중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바라건대 함께 업으로 여기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자답(自答)하건대, 동양 선비가 강구하는 것은 형이상자(形而上者)요, 서인(西人) 철학자가 강구하는 것은 형이하자(形而下者)라. 형이상자는 리(理)이니 형체가 없어서 알기 어렵고, 형이하자는 기(氣)이니 물질에 붙어있어 모두 실제 증험함이 있다. 만일 폐하고 강구하지 않는다면 도덕인의(道德仁義)를 전할 수가 없으리니, 마땅히 배워야[負笈] 할 것이며, 이에 우선 공경히 엎드립니다."라고 하였다. -지송욱의 말 마침-

오호라! 예전에 듣건대 노자는 유무(有無)를 둘로 여겼다고 하는데, 송욱의 이와 같은 설은 이와 유사하니, 주부자의 이른바 '크게 진실을 어지럽힌 자'이다. 그 어세를 보면 동방의 학문을 동양의 학문이라고 칭했고, 서양의 학문을 서인의 철학이라고 칭하였으니, 이는 서학을 위주로 한 것이다.

또 이른바 '훈도를 축하한다'는 것을 변론하다
시우(時雨)주 122)와 풍춘(風春)주 123)의 화평은 성문의 지극한 공인데, 끌어다가 격설지인(鴂舌之人)주 124)을 윤색하였으니, 실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다.

〈이른바 '유학가는 벗을 보내며'를 또 변론한다〉(又辨所謂送友遊學)
천하의 사람들이 어찌 다 밭가는 일 할 수 있으랴.(天下何能耕且爲)
결연이 책을 싸서 멀리 스승을 찾아가네.(決然負笈遠從師)
봉상(蓬桑)의 처음 뜻주 125) 끝내 이룰 수 있고,(蓬桑初志終能遂)
붕새와 준마는 앞 길에 절로 기약이 있네.(鵬驥前程自有期)
늙은 노파는 응당 마철오(磨鐵杵)주 126)를 알고,(老嫗應知磨鐵杵)
염처(豔妻)주 127)는 단기(斷機)주 128)하는 데 실 허비하지 않네.(豔妻不費斷機絲)
세상에는 학교가 지금 많이 세워지니,(環球黌舍今林立)
대학 치평의 도가 여기에 달려 있으리.(大學治平道在斯)

아, 도를 어지럽히고 사람을 그릇되게 하는 것이 이와 같이 심하단 말인가? 송욱(松旭)은 실로 만 대의 죄인이다.
주석 121)척독대방(尺牘大方)
1916년(大正 4)에 지송욱(池松旭)이 척독을 쓰기 위한 교본으로 출판한 것이다. 지송욱은 조선말 1887년, 서울에 최초로 서점 겸 출판사 신구서림(新舊書林)을 연 출판계의 선구자이다.
주석 122)시우(時雨)
제때에 내려 만물을 화육(化育)하는 비라는 뜻으로, 《맹자》 〈진심 상(盡心上)〉의 '시우화지(時雨化之)'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석 123)풍춘(風春)
봄에 부는 따스한 바람을 의미한다.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이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을 데리고 기수에 가서 목욕을 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쏘인 뒤에 노래하며 돌아오겠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자신의 뜻을 밝히자, 공자가 감탄하며 허여한 내용이 《논어》 〈선진(先進)〉에 나온다.
주석 124)격설지인(鴂舌之人)
야만인이 지껄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맹자》에, "남만(南蠻) 격설(鴂舌)의 사람"이란 말이 있다. 여기서는 외국 사람을 얕잡아 일컫는 말이다.
주석 125)봉상(蓬桑)의 처음 뜻
상봉지지(桑蓬之志)로, 유년 시절에 사방을 경륜하려는 큰 뜻을 품은 것을 말한다. 옛날에 남자 아이가 출생하면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갈대풀로 화살을 만들어[桑弧蓬矢] 천지 사방에 쏘았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예기》 〈내칙(內則)〉)
주석 126)마철오(磨鐵杵)
철저마침(鐵杵磨鍼)의 고사이다. 이백은 젊었을 때, 사천성(四川省)의 상이산(象耳山)에서 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싫증이 나서 포기해 버렸다. 하산하는 길에 작은 시내를 지나가다 한 할머니가 쇠로 된 절구공이를 갈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할머니는 쇠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려고 한다고 하자, 이 말을 듣고 이백은 느낀 바가 있어 오던 길을 되돌아가 학문에 정진하였다.
주석 127)염처(艶妻)
아름다운 처인데, 포사(褒姒)라고도 하고 달기(妲己)라고도 한다. 《시경》 〈소아(小雅)·시월지교(十月之交)〉에 "염처가 기세를 부리며 그대로 있도다.[艶妻煽方處]"라는 구절이 있다.
주석 128)단기(斷機)
무슨 일이고 중도에서 폐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옛적에 맹자의 어머니가 베를 짜다가 아들이 공부하다 중단하고 돌아온 것을 보고, 짜던 베를 끊어버리며 네가 공부를 중도에 그만 둔다는 것이 이와 같다고 경계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맹자는 큰 유학자가 된 것이다.
二十九日 乙卯
【旃蒙單閼】。陽。

池松旭所著《尺牘大方》亂眞之說。 "《物理學》。 物理學區別이 有三種ᄒᆞ니 如金ㆍ石ㆍ木之堅과 水ㆍ酒ㆍ油ㆍ水銀之類와 風煙蒸氣之動이 是也라. 固變爲液氣고 氣變爲液固야 皆隨人工而變化나 此與化學經濟學으로 相爲表裏而新學中에 最爲切要者也라. 望須同業이 如何오? 自答東洋之士의 講究 形而上者也오。 西人之哲의 講究 形而下者也라. 形而上者理也니 無形而難知오. 形而下者 氣也니 寓於物質에 皆有實驗이라. 若廢而不講이면 道德仁義 無所傳焉리니。 當負笈이며 先此虔覆노니다."【松旭言終】

嗚呼! 昔聞老子。 以有無爲二。 松旭若此之說。 似是。 而朱夫子。 所謂大亂眞者也。觀其語勢。 則以東方之學。 稱東洋之學。 以西洋之學。 稱西人之哲。 此是主西學者也。

又辨所謂賀訓導。
時雨風春之和。 聖門之極工。 引以潤色鴂舌之人。 實斯文亂賊也。

〈又辨所謂送友遊學〉
天下何能耕且爲.決然負笈遠從師.蓬桑初志終能遂。鵬驥前程自有期.老嫗應知磨鐵杵。豔妻不費斷機絲.環球黌舍今林立。大學治平道在斯.

嗚呼。 亂道誤人。 若是之甚也哉? 松旭實萬歲之罪人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