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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암일기(棲巖日記)
- 1928년(무진)
- 6월(六月)
- 14일(신미)(十四日 辛未)
서암일기(棲巖日記) / 1928년(무진) / 6월(六月)
14일(신미)
-중광협흡(重光協洽)-. 맑음. 두보(杜甫)가 소혜(蘇徯)에게 준 시주 114)를 보았다.
유계주 115)가 이미 평정되었음에도,(幽薊已削平)
거친 변방에선 더욱더 활 쏘아대네.(荒徼尙彎弓)
이 사람이 벗어나 왔으니,(斯人脫身來)
어찌 우리의 도가 동쪽으로 옮겨 가지 않으랴.주 116)(豈非吾道東)
이라는 구절이다. 각주에 " '사인(斯人)'이란 혜(徯)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는 도적의 반란을 벗어나 촉(蜀)으로 왔다. 정현(鄭玄)주 117)이 마융(馬融)에게서 배우다가 하직하고 돌아가자, 융이 말하기를 '정(鄭) 생(生)이 이제 가니, 우리의 도가 동쪽으로 옮겨 가는구나.'라고 했다."라는 내용이 있다.
- 주석 114)두보(杜甫)가 소혜(蘇徯)에게 준 시
- 두보(杜甫)가 사천성(四川省) 동쪽 기주(夔州)의 깊은 산골에 유배되어 있을 때 친구의 아들인 소혜가 유배되어 그곳에 와서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어 이를 보다 못한 두보가 〈군불견간소혜(君不見簡蘇徯)〉라는 시를 지어 보내게 되었다. 이 시에서 '장부개관사시정(丈夫蓋棺事始定)'을 줄여 '개관사정(蓋棺事定)'이 유래되었는데, 그 사람의 평가는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평가된다는 뜻과 함께, 평소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도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뜻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 주석 115)유계(幽薊)
- 유주(幽州)와 계주(薊州)인데, 역대 왕조들의 흥망성쇠를 두고 이른 말이다.
- 주석 116)어찌 …… 않으랴
- 후한(後漢)의 정현(鄭玄)이 학업을 완성하고 돌아갈 때 그 스승 마융(馬融)이 말한 '우리의 도가 동쪽으로 옮겨 가는구나.[吾道東矣]'를 인용한 것이다.
- 주석 117)정현(鄭玄, 127~200)
- 후한(後漢)의 학자로, 자(字)가 강성(康成)이다. 마융(馬融)이 가장 아끼던 제자로서 환제(桓帝) 때 상서(尙書) 벼슬을 하였으나, 십상시(十常侍)의 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서주(徐州)에 숨어 살았다. 유비(劉備)는 탁군(涿郡)에 있을 때 정현을 스승으로 섬겼으므로 서주(西周)를 차지한 뒤에도 자주 찾아 교시를 받았다.
十四日 辛未
【重光協洽】。陽。看杜律贈蘇徯。
幽薊已削平。荒徼尙彎弓.斯人脫身來。豈非吾道東.
之句。註 "斯人指徯。 脫寇亂而來蜀也。鄭玄學於馬融다가 辭歸。 融曰。 '鄭生今去。 吾道東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