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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28년(무진) / 6월(六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13.0007.TXT.0014
14일(신미)
-중광협흡(重光協洽)-. 맑음. 두보(杜甫)소혜(蘇徯)에게 준 시주 114)를 보았다.

유계주 115)가 이미 평정되었음에도,(幽薊已削平)
거친 변방에선 더욱더 활 쏘아대네.(荒徼尙彎弓)
이 사람이 벗어나 왔으니,(斯人脫身來)
어찌 우리의 도가 동쪽으로 옮겨 가지 않으랴.주 116)(豈非吾道東)

이라는 구절이다. 각주에 " '사인(斯人)'이란 혜(徯)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는 도적의 반란을 벗어나 촉(蜀)으로 왔다. 정현(鄭玄)주 117)마융(馬融)에게서 배우다가 하직하고 돌아가자, 이 말하기를 '정(鄭) 생(生)이 이제 가니, 우리의 도가 동쪽으로 옮겨 가는구나.'라고 했다."라는 내용이 있다.
주석 114)두보(杜甫)가 소혜(蘇徯)에게 준 시
두보(杜甫)가 사천성(四川省) 동쪽 기주(夔州)의 깊은 산골에 유배되어 있을 때 친구의 아들인 소혜가 유배되어 그곳에 와서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어 이를 보다 못한 두보가 〈군불견간소혜(君不見簡蘇徯)〉라는 시를 지어 보내게 되었다. 이 시에서 '장부개관사시정(丈夫蓋棺事始定)'을 줄여 '개관사정(蓋棺事定)'이 유래되었는데, 그 사람의 평가는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평가된다는 뜻과 함께, 평소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도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뜻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주석 115)유계(幽薊)
유주(幽州)와 계주(薊州)인데, 역대 왕조들의 흥망성쇠를 두고 이른 말이다.
주석 116)어찌 …… 않으랴
후한(後漢)의 정현(鄭玄)이 학업을 완성하고 돌아갈 때 그 스승 마융(馬融)이 말한 '우리의 도가 동쪽으로 옮겨 가는구나.[吾道東矣]'를 인용한 것이다.
주석 117)정현(鄭玄, 127~200)
후한(後漢)의 학자로, 자(字)가 강성(康成)이다. 마융(馬融)이 가장 아끼던 제자로서 환제(桓帝) 때 상서(尙書) 벼슬을 하였으나, 십상시(十常侍)의 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서주(徐州)에 숨어 살았다. 유비(劉備)는 탁군(涿郡)에 있을 때 정현을 스승으로 섬겼으므로 서주(西周)를 차지한 뒤에도 자주 찾아 교시를 받았다.
十四日 辛未
【重光協洽】。陽。看杜律贈蘇徯。

幽薊已削平。荒徼尙彎弓.斯人脫身來。豈非吾道東.

之句。註 "斯人指。 脫寇亂而來蜀也。鄭玄學於馬融다가 辭歸。 曰。 '生今去。 吾道東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