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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8년(무진)
  • 5월(五月)
  • 12일(경자)(十二日 庚子)

서암일기(棲巖日記) / 1928년(무진) / 5월(五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13.0006.TXT.0012
12일(경자)
-상장곤돈(上章困敦)-. 흐리고 비. 둔재(遯齋) 정(鄭) 선생(先生) 문집을 보았다.

선생의 휘는 여해(汝諧)이고, 자는 중화(仲和)이며,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신라와 고려 때부터 저명하여 그 성(姓)이 《고려사(高麗史)》ㆍ《여지승람》ㆍ《동국통감(東國通鑑)》등에 보이는데, 가로대 평장사(平章事)는 휘가 도정(道正)이니, 바로 공의 비조이다. 전하여 중엽에 휘 현우(賢佑)가 있는데 중현대부(中顯大夫) 전객령(典客令)이고, 휘 인귀(仁貴)는 우리 태종조의 원종공신(原從功臣)이며 호조참판(戶曹參判)이시니, 공에게는 고조와 증조가 된다. 휘 유주(由周)창덕궁 참봉이며, 휘 지영(之英)통훈대부 행흥양현감(通訓大夫行興陽縣監)으로 호는 고정(鼓亭)인데, 공의 조부와 부친이다.
천순 경진년(1460, 세조6)에 현감공의 다섯 형제가 함께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 때문에 오고정(五鼓亭)을 세우고 호로 삼았다. 어머니인 숙인(淑人) 신평송씨(新平宋氏)승지(承旨) 송침(宋鍼)의 따님인데, 황명 경태 원년(1450년, 세종 32)경오년 12월 17일에 선생을 낳았다.
일두(一蠹)선생은 바로 선생의 4종형인데, 선생에게 뜻이 학문하는 데에 있음을 알고서 글로서 권면하기를, "《역(易)》에 이르기를 '어려서 바른 도리로 기르는 것이 성인을 이루는 공이다[蒙以養正, 聖功也]'주 86)라고 하였고, 《예기(禮記)》에서는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룰 수 없다[玉不琢, 不成器]주 87)'라고 하였는데, 어찌 궁벽한 시골에 칩거하면서 사우의 도움을 구하지 않을 것인가?"라고 하였다. 선생이 깊이 느끼고 깨달아 드디어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의 문하에 나아가 배웠는데, 맨 먼저 《중용》을 수업하고 깊은 뜻을 얻어 들었다. 이어서 동문인 한훤당, 일두, 추강 등 여러 선생들과 조용히 강마하여 발명한 바가 많았다. 중종 경인년(1530, 중종 25) 3월 19일에 돌아가시니, 능주(綾州) 이곡(耳谷)의 임좌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시(詩)
〈벽란정에서 짓다〉(題碧瀾亭)
-삭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벽란정에 올라서, 사암 유숙의 〈백구〉시에 차운하다-
이 벽란정이 좋다는 소리 듣고,(聞此碧瀾好)
와보려는 생각 품은 지 몇 년이던가.(馳懷曾幾年)
이제 사람은 가고 백구만 있어서,(人去白鷗在)
옛 난간 앞에서 날아다니고 있구나.(浮浮古檻前)

〈병중에 시대를 한탄하며 짓다〉(病中傷時作)
시운이 어찌 그리도 참혹하여,(氣運何憯忒)
간사한 얼자들이 임금의 총명을 가렸네.(奸孼弊聰明)
천년동안 현인 없음이주 88) 애통하니,(千載云亡慟)
누가 알랴 때맞추어 나를 낳음을.(誰知適我生)

〈수옹(睡翁)주 89)두류산에서 노닌 시에 차운하다〉(次睡翁遊頭流山韻)
한 몸에 도리어 강과 유 갖춰져 있으니,(一身還有備剛柔)
고요함 속에서 건곤은 몇 년이 흘렀나.(靜裏乾坤度幾秋)
천년된 증점의 비파를 속인들이 노래하니,(點瑟千年兼俗詠)
온종일 올라와서 풍류를 다하네.(登臨竟日盡風流)

〈한훤당(寒暄堂)주 90)의 합천정사 시에 차운하다〉(次寒暄堂陜川精舍韻)
그대가 집 지었다는 말 듣고 문 앞까지 갔다 돌아오니,(聞君結構造門還)
천리 길의 영서(靈犀)주 91)가 한 점으로 차갑네.(千里靈犀一點寒)
비로소 산중에서 기쁘게 산다는 것 알았으니,(始覺山中歡動靜)
합천의 푸른 물에 또 청산이로다.(陜川綠水又靑山)

〈주자의 무이구곡시에 차운하다〉(次朱夫子武夷九曲韻)
무이산 골짜기마다 신선들이 점유하였으니,(武夷曲曲擅仙靈)
누가 이 사이에서 흥취 맑음을 알랴.(誰識玆間意味淸)
청산에서 찬물 내리니 마음 씻기에 좋아라,(靑山下寒洗心好)
때때로 한가로이 뱃노래 소리도 들어보세.(有時閒聽棹歌聲)

1곡(其一)
일곡이라 가볍게 학해선 띄우니,(一曲輕揚學海船)
끊임없는 진맥들 맑은 시내로 쏟아지네.(源源眞脈注晴川)
올라와 온종일 노닐 뜻 끝이 없는데,(登臨竟日無窮意)
첩첩한 산 사이로 저녁연기 피어나네.(萬疊山間起夕烟)

2곡(其二)
이곡이라 둘러보니 기이한 봉우리들이라,(二曲回看奇絶峰)
시내에 임한 옥녀봉은 춘색을 다했네.(臨溪玉女盡春容)
좋게 한바탕 웃고 머리에 꽃을 꽂으니,(好然一笑簪花立)
빽빽한 푸른 병풍 몇 겹이 둘러있네.(簇簇蒼屛列幾重)

3곡(其三)
삼곡이라 푸른 물결에 한 조각의 배를 타고,(三曲滄浪一葉船)
또 백발이 되도록 여생을 보내려네.(且將白髮送餘年)
세상의 영욕을 다시 어찌 말하랴.(世間榮辱復何道)
상전벽해 아득하니 정히 가련하구나.(桑海蒼茫正可憐)

4곡(其四)
사곡이라 연기와 바람은 암석에 잠겨있고,(四曲風烟鎖石巖)
바위에 핀 꽃은 각양각색 늘어지길 다했네.(巖花各色盡㲯毿)
도체는 더욱 높아 쳐다보는 사람 없으니,(彌高道體無人仰)
종일토록 소요하며 석담을 굽어보네.(永日逍遙俯石潭)

5곡(其五)
오곡이라 봄이 깊어 꽃이 만발한 곳에,(五曲春深花滿處)
사사로움 없는 한 기운이 온 숲에 붙어있네.(無私一氣着千林)
초야에서의 참 낙을 누가 알 수 있을 건가.(林間眞樂誰能識)
천지조화의 마음을 체득할 뿐이네.(體得乾坤造化心)

6곡(其六)
육곡이라 시냇물은 푸른 물굽이로 쏟아지고,(六曲溪流注碧灣)
사립문은 서 있지만 낮에도 잠겨있네.(柴扉雖設晝常關)
그칠 곳에서 그치니 몸에는 욕됨이 없고,(止吾所止身無辱)
분수에 만족하고 기미를 아니 스스로 한가롭네.(安分知幾自得閒)

7곡(其七)
칠곡이라 빈 배로 푸른 여울 올라가니,(七曲虛舟上碧灘)
온갖 광경을 비 온 뒤에 보게 되네.(十分光景雨餘看)
억지로 읊조리니 병골은 시로 인해 여위어 가고,(苦吟病骨緣詩瘦)
빗겨 부는 바람은 늦추위 가져올까 두렵네.(却怕斜風供晩寒)

8곡(其八)
팔곡이라 고루암이 눈에 들어와 펼쳐지니,(八曲鼓樓入眼開)
다시 짚신을 고쳐 신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네.(更穿芒屩首重廻)
시정(詩情)은 물가로 갔다 산에 오르고,(詩情臨水登山去)
봄소식을 꽃과 버들가지에서 물어보네.(春信尋花問柳來)

9곡(其九)
구곡이라 깊숙이 찾아드니 눈앞이 탁 트이고,(九曲深深眼豁然)
나뉘어진 물줄기는 만 갈래 앞내로 쏟아지네.(分流萬派瀉前川)
누가 다시 어부의 자취를 물으면,(誰能更問漁郞蹟)
웃으며 무릉도원에 별천지 있다고 말하리.(笑道桃源別有天)

〈맑은 밤에 회포를 읊음〉(淸夜述懷)
영대가 소쇄하여 먼지 없이 깨끗한데,(靈臺瀟灑淨無塵)
또 중천에 뜬 달빛조차 새롭구나.(又値中天月色新)
야기가 청명해야 참 생각 드러나니,(夜氣淸明眞想露)
맹자의 교훈 가슴에 새기어 항상 따르리.(服膺鄒訓戒恒遵)

〈점필재선생이 본현에 도착하다〉(佔畢齋先生巡到本縣)
감당나무주 92)의 가을 빛은 능주를 비추고,(甘棠秋色映綾陽)
온화한 인풍은 사방을 울리도다.(藹藹仁風動四方)
어떤 방법으로 여망을 흡족시킬 수 있을까,(何術能令輿望洽)
사랑하기를 자식처럼, 다친 사람 돌보듯 해야 하리.(愛之如子視如傷)

〈동봉승(東峯僧)에게 주다〉 서문을 아우름.
열경(悅卿, 김시습의 자)이시여, 우리가 서로 작별한 지 지금 어언 몇 년입니까? 시사(時事)를 슬퍼하고 분개하여 청산(靑山)의 승려 무리에 자취를 의탁하고, 떠돌며 살다가 일생을 마치려 마음먹고, 세월이 어떤 시절인지, 세도(世道)가 어떤 상황인지를 모두 잊었으니, 열경의 입장에서는 쾌활(快活)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다만 창생들은 어느 곳을 향해 바라볼 것이며, 후학들은 어떤 사람을 구하여 귀의하겠습니까?
이곳에서 해인사 동봉암(東峰庵)까지는 반천리나 되는 먼 거리인데도 은혜롭게 찾아와 주셔서 여러 날 동안 맑은 대화를 나누었으니, 그것은 이처럼 내버려진 한 사람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얼마나 권권(眷眷)해 하는지, 작별에 임하여 주위를 배회하면서 더욱 아쉬운 정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운림(雲林)주 93)에서 다시 얼굴을 대할 날이 있을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시 한 수를 지어 박한 전별 선물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졸렬함을 더하자니 부끄럽습니다.

운수(雲水)주 94)로 정을 잊고 몇 년 세월 보냈던가,(雲水忘情閱幾秋)
객창에서 밤마다 부구(浮邱, 신선)를 꿈꾸리라.(客窓夜夜夢浮邱)
그대를 인해 아득히 동봉(東峰)의 달을 생각하리니,(憑君遙憶東峯月)
병든 늙은이 만곡(萬曲)의 시름을 알리기 위함이네.(爲報病夫萬曲愁)
주석 86)어려서 …… 공이다
《주역》 몽괘(蒙卦) 단사(彖辭)에 보인다.
주석 87)옥을 …… 이룰 수 없다
《예기》 〈학기(學記)〉에 "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玉不琢不成器, 人不學不知道]"라고 하였다.
주석 88)현인 없음이
《시경》 〈첨앙(瞻卬)〉에 "현인이 죽으니, 나라가 병들었네.[人之云亡, 邦國殄瘁.]"라고 구절을 인용해 말한 것이다.
주석 89)수옹(睡翁)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호이다.
주석 90)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을 말함. 자는 대유(大猷), 호는 한훤당(寒暄堂)ㆍ사옹(蓑翁),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로 김일손, 김전, 남곤, 정여창 등과 동문이었다.
주석 91)영서(靈犀)
영묘(靈妙)한 무소뿔을 말한다. 무소뿔은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어 양방이 서로 관통하는 것에서, 두 사람의 의사(意思)가 서로 투합됨을 비유할 때 쓴다.
주석 92)감당나무
주 무왕(周武王) 때 소공(召公)이 서백(西伯)으로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므로, 백성들이 그를 추모한 나머지 그가 잠시 그늘 아래 쉬었던 감당나무를 기념하여 잘 가꾸며 보존하는 한편, 이를 노래로 지어 불렀다는 고사가 있다.
주석 93)운림(雲林)
구름이 끼어 있는 숲인데, 처사(處士)가 은둔(隱遁)하고 있는 곳을 말한다.
주석 94)운수(雲水)
구름 따라 물 따라 떠돌아다니는 행각승(行脚僧)이란 말이다.
十二日 庚子
【上章困敦】。陰雨。看遯齋先生文集。

先生諱汝諧。 字仲和。 系出河東。自羅麗爲著。 姓其見於《麗史》ㆍ《輿覽》ㆍ《東國通鑑》者曰。 平章事道正。 卽公之鼻祖也。傳之中葉。 有諱賢佑中顯大夫典客令。諱仁貴。 我太宗朝原從功臣 戶曹參判。 於公爲高祖。 曾祖也。諱由周昌德宮參奉。諱之英通訓大夫 行興陽縣監。 號鼓亭。 公之若祖若考也。以天順庚辰。 縣監公五昆季。 同榜登第。是以。 立五鼓亭。 因以號焉。妣淑人新平宋氏承旨女。 生先生于皇明景泰元年庚午十月二十七日一蠹先生。 卽先生之四從兄也。知先生有志爲學。 以書勉之曰。 "《易》曰。 '蒙以養正。 聖功也。' 《禮》曰。 '玉不琢。 不成器'。 豈可自蟄窮鄕。 而不求師友之助乎?" 先生得深自感悟。 遂從學于佔畢齋先生之門。首授中庸。 得聞奧旨。 因與同門人寒暄一蠹秋江諸先生。 從容講磨。 多所發明。中廟庚寅三月十九日卒。 葬于綾州耳谷壬坐之原。

題碧瀾亭
朔州歸路登碧瀾亭。 次思菴白鷗詩】
聞此碧瀾好。馳懷曾幾年.人去白鷗在。浮浮古檻前.

〈病中傷時作〉
氣運何憯忒。奸孼弊聰明.千載云亡慟。誰知適我生.

〈次睡翁遊頭流山韻〉
一身還有備剛柔。靜裏乾坤度幾秋.點瑟千年兼俗詠。登臨竟日盡風流.

〈次寒暄堂陜川精舍韻〉
聞君結構造門還。千里靈犀一點寒.始覺山中歡動靜。陜川綠水又靑山.

〈次朱夫子武夷九曲韻〉
武夷曲曲擅仙靈。誰識玆間意味淸.靑山下寒洗心好。有時閒聽棹歌聲.

其一
一曲輕揚學海船。源源眞脈注晴川.登臨竟日無窮意。萬疊山間起夕烟.

其二
二曲回看奇絶峰。臨溪玉女盡春容.好然一笑簪花立。簇簇蒼屛列幾重.

其三
三曲滄浪一葉船。且將白髮送餘年.世間榮辱復何道.桑海蒼茫正可憐.

其四
四曲風烟鎖石巖。巖花各色盡㲯毿.彌高道體無人仰。永日逍遙俯石潭.

其五
五曲春深花滿處。無私一氣着千林.林間眞樂誰能識.體得乾坤造化心.

其六
六曲溪流注碧灣。柴扉雖設晝常關.止吾所止身無辱。安分知幾自得閒.

其七
七曲虛舟上碧灘。十分光景雨餘看.苦吟病骨緣詩瘦。却怕斜風供晩寒.

其八
八曲鼓樓入眼開。更穿芒屩首重廻.詩情臨水登山去。春信尋花問柳來.

其九
九曲深深眼豁然。分流萬派瀉前川.誰能更問漁郞蹟。笑道桃源別有天.

〈淸夜述懷〉
靈臺瀟灑淨無塵。又値中天月色新.夜氣淸明眞想露。服膺鄒訓戒恒遵.

〈佔畢齋先生巡到本縣〉
甘棠秋色映綾陽。藹藹仁風動四方.何術能令輿望洽。愛之如子視如傷.

贈東峯僧。竝小序。
悅卿乎。 吾輩相別。 今幾何年耶? 傷憤時事。 托跡靑山白衲之徒。 傲遊浮沒。 以終其身。 都忘年華之爲何時。 世道爲何狀。 在悅卿非不快活。 而但蒼生之望向何地。 後學之求歸於何人? 此去海印寺東峯菴。 爲半千里之遠。 而惠然來顧。 以做累日淸話。 其所以不忘此一棄人。又何其眷眷也。 臨別徘徊。 尤不勝情。未何處雲林復有奉面之日耶? 謹賦一絶以代薄贐。 拙滋可慙。

雲水忘情閱幾秋。客窓夜夜夢浮邱.憑君遙憶東峯月。爲報病夫萬曲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