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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암일기(棲巖日記)
- 1928년(무진)
- 4월(四月)
- 21일(기묘)(二十一日 己卯)
서암일기(棲巖日記) / 1928년(무진) / 4월(四月)
21일(기묘)
-도유단알(屠維單閼)-. 맑음. 태조대왕(太祖大王)이 포은선생(圃隱先生)을 쳐서 죽인 일에 대해 조정에서 시비를 분별하라고 하자, 신이 애오라지 답하였다.주 60)
주나라에서는 백이의 청절을 포용해,(聖周容得伯夷淸)
해치지 않고 수양산에서 굶어죽게 하였지.(餓死首陽不死兵)
그러나 그날 선죽교에서는,주 61)(善竹橋過當日事)
정 선생을 모신 이 아무도 없었네.(無人扶去鄭先生)
- 주석 60)태조대왕(太祖大王)이 …… 답하였다
- 연안 이씨 가승보에 이석형(李石亨, 1415~1477)이 지은 시로 나온다. 세조 2년에 전라도관찰사로 있던 이석형(李石亨)이 익산을 순시하던 중 사육신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착잡한 심경을 중국 고사를 빌어 〈이녀죽(二女竹)과 대부송(大夫松))〉이라는 시 한 수를 지었는데, 이 시 때문에 이석형은 고변을 당하여 세조 앞에 끌려와서 국문을 받게 되었다. 세조는 "경은 정몽주가 고려에서는 어떤 사람이고 우리 조선에서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석형은 왕이 하문한 것을 시로써 올리겠다 하고 이 시로 답하였다 한다.
- 주석 61)그러나 그날 선죽교에서는
- 1916년 3월 27일 일기에는 '善竹橋過當日事'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는 '善竹橋當日事'로 '過'자가 빠져 있다.
二十一日 己卯
【屠維單閼】。陽。太祖大王加兵圃隱先生。 辨是非於廷。 臣聊以答之。
聖周容得伯夷淸。餓死首陽不死兵.善竹橋過當日事。無人扶去鄭先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