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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28년(무진) / 4월(四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13.0005.TXT.0018
18일(병자)
-유조곤돈(柔兆困敦)-. 맑음. 《두율(杜律)》주 50)에서 '감회를 써서 친우에게 올린 시' 몇 구를 보고 기록해 둔다.

옷자락을 잡아당겨 위(魏)의 문제(文帝)를 경계하니,주 51)(牽裾警魏帝)
천록각에서 투신하여주 52) 유흠(劉歆)주 53)처럼 될 뻔하였구나.(投閣爲劉歆)

- 위나라 사람 신비(辛毗)가 나아가 간언을 하였는데, 문제(文帝)가 노하여 일어나자 신비가 옷자락을 잡아당겨 간하였다. 양(楊) 자운(子雲)의 말이 유흠(劉歆)의 죄에 연루되어 그를 잡으려 하니 천록각(天祿閣) 아래로 투신하였다.주 54)-

십년을 민산(岷山)주 55)에서 갈포옷 입고,(十暑岷山葛)
삼년 동안 초호(楚戶)의 다듬이 소리 들었네.(三霜楚戶砧)

-이것은 두보(杜甫)가 십년간 민산(岷山)에 살면서 갈옷을 입었고, 삼년동안 초나라에 살면서 다듬이 소리를 들은 것을 말한다.-

몇 개의 쌀알 먹는 것에 응당 불과한데,() 應過數粒食
사지금(四知金)주 56)을 가까이 할 수 있으랴.()得近四知金

-장화(張華)의 〈초료부(鷦鷯賦)〉에 "매양 먹을 때면 몇 개의 쌀알에 불과한데, 왕밀(王密)이 금을 보내니 양진(楊震)이 물리쳤다는 내용이 있다."주 57) -

비틀비틀 엎어지며 한단의 걸음걸이 배우지만,(蹉跎飜學步)
참된 친구 있어 감격스럽네.(感激在知音)

-《장자(莊子)》에 "수릉(壽陵) 땅의 여자(餘子)가 한단(邯鄲)에 가서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 본래의 자기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려 엉금엉금 기어 올 수밖에 없었다."주 58)는 이야기가 있다. 지음은 지기(知己)를 말한다. -

천리 밖에서 남이 우물물 마실까 두려워하고,(畏人千里井)
풍속을 물어 구주잠을 지었네.(問俗九州箴)

-옛날 어떤 사람이 떠나기에 앞서 말 먹이고 남은 풀을 우물에 쏟아버렸다. 다시 와서 이 우물의 물을 마시자 잔초(殘草)가 목구멍을 찔러 죽게 되었다. 양웅(楊雄)주 59)이 구주잠(九州箴)을 지었고 두보가 이를 인용한 것이다.-
주석 50)두율(杜律)
당(唐)나라의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칠언율시를 모아놓은 책이다.
주석 51)옷자락을 …… 경계하니
위(魏)나라의 시중(侍中) 신비(辛毗)가 간언을 듣지 않고 내전으로 들어가려는 위 문제(魏文帝)의 옷자락을 끌어당겨 간한 고사(《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신비전(辛毗傳)〉)를 비유한 것이다.
주석 52)천록각에서 투신하여
한(漢) 나라 양자운(揚子雲, 양웅(揚雄))이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하며 숨어 살면서. "적막(寂寞)으로 덕을 지킨다."고 자칭하더니. 뒤에 왕망(王莽)에게 벼슬하다가 죄에 걸려 체포를 당하게 되자 높은 누각에서 몸을 던져 떨어졌다. 사람들이. "적막(寂寞)은 투각(投閣)이로다."라고 하였다.
주석 53)유흠(劉歆, 기원전 53?~25)
유흠의 자는 자준(子駿)이었으나, 나중에 이름을 수(秀). 자를 영숙(穎叔)으로 고쳤다. 아버지 유향(劉向)과 궁정의 장서(藏書)를 정리하고 육예(六藝)의 군서(群書)를 7종으로 분류하여 최초의 서적 목록인 《칠략(七略)》을 저술하였다. 후에 왕망(王莽)이 한왕조(漢王朝)를 찬탈하자 국사(國師)가 되어 국정에 협력하였으나. 만년에 왕망의 포악함에 반대하여 모반을 기도하다가 자살하였다.
주석 54)양자운이 …… 투신하였다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고사인데,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에는 유흠이 아니라 유분(劉棻)과 관련된 고사로 기록되어 있다. 즉 '양웅이 천록각(天祿閣)에서 책을 교정하고 있을 때 유분(劉棻)이 양웅에게 기이한 글자를 배운 일이 있었다. 후에 유분이 왕망(王莽)에게 죄를 받게 되었을 때 양웅이 이에 함께 연좌되어 옥리가 양웅을 잡으러 가자 양웅이 죄를 면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천록각 위에서 뛰어내려 거의 죽을 뻔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주석 55)민산(岷山)
중국 촉 지방에 위치한 산이다. 사물의 시초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강이 처음 민산에서 시작될 때 그 근원은 잔에 넘칠 만큼이다.[江始出於岷山, 其源可以濫觴]"란 말이 있다.(《공자가어(孔子家語)》 〈삼서(三恕)〉)
주석 56)사지금(四知金)
후한(後漢) 때의 학자 양진(楊震)이 일찍이 동래 태수(東萊太守)로 부임하던 도중 창읍(昌邑)에 이르렀을 때, 일찍이 양진에게서 무재(茂才)로 천거를 받았던 창읍 영(昌邑令) 왕밀(王密)이 밤중에 양진을 찾아가서 금(金) 10근을 바치자, 양진이 말하기를, "그대의 친구인 나는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故人知君, 君不知故人, 何也?]"라고 하니, 왕밀이 말하기를, "밤이라 아무도 알 자가 없습니다."라고 하므로, 양진이 말하기를,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알거니, 어찌 알 자가 없다고 하는가.[天知神知我知子知, 何謂無知?]"라고 하고 금을 물리쳤던 데서 온 말이다.
주석 57)장화(張華)의 …… 있다
진(晉)나라 장화(張華)의 〈초료부(鷦鷯賦)〉에 "숲 속에 둥지를 틀어도 하나의 가지에 불과하고. 매양 먹을 때면 몇 개의 쌀알에 불과하다.[巢林不過一枝, 每食不過數粒]"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전서(晉書)》 권36 〈장화열전(張華列傳)〉)
주석 58)수릉(壽陵) …… 없었다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나오는 '한단학보(邯鄲學步)'의 이야기를 인용한 것이다.
주석 59)양웅(楊雄, 기원전 53~18))
한(漢)나라 성도(成都) 사람으로, 자는 자운(子雲)이다. 문장으로 이름이 났으며, 《태현경》과 《법언》 등의 저서를 남겼다.(《한서(漢書)》 권87 〈양웅전(楊雄傳)〉)
十八日 丙子
【柔兆困敦】。陽。看《杜律》書懷呈親友詩數句。 記之。

牽裾警魏帝。投閣爲劉歆.

【魏人辛毗進諫。 文帝怒起。 牽裾而諫。子雲辭連劉歆之罪。 有欲捕之。 投天祿閣而下。】

十暑岷山葛。三霜楚戶砧.

【此言十年在而着葛。 三年在楚而聞砧。】

張華〈鷦鷯賦〉。 "每食不過數粒。 沃王密遣金。 楊震却。"】

蹉跎飜學步。感激在知音.

【《莊子》 壽陵餘子學步於邯鄲。 失其古步。 匍匐而還。知音卽知己。】

畏人千里井。問俗九州箴.

【古有人臨行。 瀉馬殘草於井中。 復來飮此井。 爲殘草所刺喉而死。楊雄作九州箴。 引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