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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27년(정묘) / 12월(十二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12.0002.TXT.0004
4일(을미)
-전몽협흡(旃蒙協洽)-. 흐림. 어떤 사람이 '사자언지(四子言志)'주 17)에 대해 물어서 답하였다.
대개 사자(四子, 자로증점염유공서화)가 각각 그 뜻을 말했으니, 집주(集註)와 여러 학자들의 설이 조목조목 마다 논리를 전개하고 밝게 드러내었으니, 다시는 여온(餘蘊, 미진(未盡)함)이 없다. 그러나 말이 심오하여 천견(淺見)이나 박식(博識)도 쉽게 헤아릴 수 없어서 그 형체나 소리와 같이 징험하기에 이르기는 어려웠다.
간절히 생각해보니, 삼자(三子, 자로염유공서화)의 말은 아래로 인사(人事)를 배운다는 의미가 많고, 증점(曾點)의 말은 유독 위로 하늘의 이치를 터득하려고 했다는 의미가 많다. 그러나 이치가 있으면 일이 있고[有理則有事], 일이 있으면 이치가 있다[有事則有理]. 다만 표리(表裏)ㆍ정조(精粗)ㆍ본말(本末)ㆍ체용(體用)의 구별이 있을 뿐이다. 쇄소응대(灑掃應對)주 18)에서 애경(愛敬)ㆍ효제(孝悌)ㆍ충신(忠信)에 이르기까지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하며, 형은 형다워야 하고, 동생은 동생다워야 하며,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남편은 남편답고, 아내는 아내다워야 한다. 늙은이는 편안하게 해 주고, 젊은이는 감싸 주며, 붕우에게는 미덥게 해줘야 하는 등의 일 일체 모두에 이 이치가 깃들지 않은 것이 없다.
성문(聖門)의 강학(講學)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천덕(天德)과 왕도(王道)는 단지 근독(謹獨)에 있다."고 하였다. 근독 공부에 어찌 귀천(貴賤)의 다름이 있겠는가? 다만 그것을 행함에 그 지위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데, 범인(凡人)의 자질은 같지 않고 학력(學力)도 고르지 않다. 삼자(三子)의 말은 사위(事爲)의 말단에 대한 자질구레한 것만 말했으나, 증점(曾點)만은 천리(天理)의 유행에 유연(悠然)하였으니, 그 기상이 같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가 깊이 허여하였다.
후세 군자들도 각기 소견으로서 찬미하였는데, 유독 주자는 말씀하기를, "바야흐로 봉황이 천길 날아오르는 기상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그 일용(日用)의 일에 모두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하는 뜻이 없다. 천지만물과 더불어 상하(上下)가 함께 흘러서 각기 그 방소(方所)를 얻는다."라고 하였다. 정자는 말하기를, "성인의 뜻과 같으니 곧 요순의 기상이다."라고 했다. 대저 그 뜻의 보존된 것이 일찍이 조금이라도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아서, 담담하게 장차 몸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인욕이 깨끗이 없어지고 천리가 유행하여 천지를 위치지어 주고, 만물을 길러주는 기상을 누가 우러러 사모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일을 행하는 사이에 제재할 바를 알지 못하고 힘쓰기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면, 노장(老莊)에 멋대로 흘러갈까 두렵다. 학자는 마땅히 인사(人事)상에서 천리를 살피고 순서대로 점차 앞으로 나아가고 오래오래 익숙하게 한다면, 이 장의 묘미를 묵묵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석 17)사자언지(四子言志)
네 명(자로, 증점, 염유, 공서화)에게 각 자신의 뜻을 말하라고 한 《논어》 〈선진〉 26장을 말한다.
주석 18)쇄소응대(灑掃應對)
땅바닥에 물을 뿌려 쓸고서 빈객을 접대하는 것으로, 유가(儒家)에서 교육하고 학습하는 기본 내용 중의 하나이다.
初四日 乙未
【旃蒙協洽】。 陰。答或問'四子言志'。
盖四子各言其志。 集註與諸家說。 逐條發明。 更無餘蘊。言之深奧。 以淺見博識。 未易窺測。 難以致形聲之驗矣。切想。 三子下學人事底意味多。 獨上達天理底意味多。然有理則有事。 有事則有理。但表裏ㆍ精粗ㆍ本末ㆍ體用之別。自灑掃應對。 至於愛敬ㆍ孝悌ㆍ忠信。 父父子子。 兄兄弟弟。 君君臣臣。 夫夫婦婦。老者安之。 少者懷之。 朋友信之。事一切無非是理所寓也。 聖門講學。 不出此理。程子曰。 "天德。 王道。 只在謹獨。" 謹獨工夫。 安有貴賤之殊乎? 但行之不出其位矣。 凡人之資質不同。 學力不齊。三子之言規規於事爲之末。 之言悠然於天理之流行。 其氣像不侔矣。故夫子深許之。後之君子。 各以所見。 贊美之。獨朱夫子曰。 "方鳳凰翔于千仞底氣像"。又曰。 "其日用之事都無舍己爲人之意。與天地萬物。 上下同流。 各得其所。" 程子以爲。 與聖人之志同。 便是堯舜氣像。大抵其志之所存。 未嘗少出其位。 澹然若將終身。 人欲淨盡。 天理流行。 位天地。 育萬物之氣像。 孰不仰慕哉? 然不知所以裁之於事爲之間。 不屑用力。 則恐橫流於老莊矣。學者。 當於人事上。 察乎天理。 循序漸進。 久久成熟。 可以黙契此章之妙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