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일기
  • 서암일기(棲巖日記)
  • 1927년(정묘)
  • 12월(十二月)
  • 2일(계사)(初二日 癸巳)

서암일기(棲巖日記) / 1927년(정묘) / 12월(十二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12.0002.TXT.0002
2일(계사)
-소양대황락(昭陽大荒落)-. 흐림. 몇몇의 동연(同硏, 동창)과 강학한 뒤에 각자 글을 짓기로 했다. 천(天)을 논제로 해서 선성(先聖)들이 천에 대하여 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문왕은 말하기를, "건(乾)은 원(元)하고 형(亨)하며 이(利)하고 정(貞)하다."고 했다. 공자는 말하기를, "위대하도다,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여기에서 비로소 나오나니."라고 했다. 자사는 말하기를, "천도(天道)는 한마디 말로 할 수 있으니, 성(誠)을 다할 따름이다."고 했다. 정자(程子)는 "대저 하늘을 오로지 하여 말하면 도(道)이다. 나누어 말하면 주재의 입장에서는 제(帝)라 하고, 형체의 입장에서는 천(天), 성정(性情)의 입장에서는 건(乾)이라 말하며, 신묘하게 운용하는 입장에서는 신(神)이라 하고, 공력을 들여 운용(功用)하는 입장에서는 귀신(鬼神)이라 한다.[夫天專言之, 則道也, 分而言之, 則以主宰謂之帝, 以形體謂之天, 以性情謂之乾, 妙用謂之神, 功用謂之鬼神。]"주 12)고 하였다. 주자는 '천이 곧 이[天卽理]'라고 하였고, 《시경》에서는 '높이 계신 저 하늘[於皇上帝]'이라고 했으며, 《중용》에서는 말장(末章)에서 또 이르기를 '상천의 일은 소리도 냄새도 없다.[上天之載, 無聲無臭]'라고 하였다.
한 동자(童子)가 갑자기 묻기를, "그렇다면 뇌정(雷霆)의 소리는 하늘의 소리가 아닙니까?"라고 하기에, 내가 잘 답하지 못하고 문득 동중서(董仲舒)가 말한 "천을 잘 말하는 자는 반드시 사람에게 징험할 수 있어야 한다. 천도(天道)는 형체가 없어 알기 어렵지만, 인사(人事)는 흔적이 있어 알기 쉽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생각했다.
성인에게서 징험해 보면 높디높고[巍巍蕩蕩] 심원하여 그치지 않아[於穆不已]주 13) 무성무취(無聲無臭)를 본받을 만하다. 무성과 유성은 분명히 밝히기 어렵지만, 가까이 몸에서 취해 보면, 마음이 허령(虛靈)하여 평단(平旦)주 14)에 물(物)과 접하지 않았을 때는 담연허정(湛然虛靜)하고 확연대공(廓然大公)하여 거의 대월상제(對越上帝)주 15)의 상태에 가깝고, 또한 무성무취의 상태이지만 홀연히 일과 물을 접응하면 음성과 웃는 얼굴주 16)이 없을 수 없게 된다. 이로써 미루어 궁구해 보면, 상천(上天)의 일은 소리가 없는 형이상(形而上)의 도(道)이고, 뇌정의 소리는 형이하(形而下)의 기(器)이다. 정자는 형체를 가지고 하늘이라 했으니, 형체가 있으면 기가 있고, 기가 있으면 소리가 있다. 뇌정의 소리는 음양의 기와 박진(薄震, 요동치는 소리)의 소리인 것이다. 소리가 없다는 것이 도리어 소리가 있음을 이로써 가히 증험할 수 있으니, 오묘하도다!
사람 또한 하늘이 낳은 물(物)로서, 대개의 사람이 말한 '모두 천기(天機)가 저절로 발동한 것'이니, 어찌 행하는 것으로 하늘에 증험해볼 수 있는 것이 불가하겠는가? 하늘에는 원(元)의 도가 있어서 봄이 되니, 온화하며 자애로운 의사(意思)가 있는 것으로, 사람이 가지는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유사한 것이다. 또 하늘에는 형(亨)의 도가 있어 여름이 되니, 선저(宣著)하고 발휘(發揮)하려는 의사가 있는 것으로, 사람에게 있는 공경지심(恭敬之心)과 유사이다. 또 이(利)의 도가 있어서 가을이 되니, 참열(慘烈)하고 강단(强斷)한 의사가 있는 것으로, 사람에게 있는 수오지심(羞惡之心)과 유사하다. 정(貞)의 도가 있어 겨울이 되니, 수렴하고 흔적을 없애려는 의사가 있는 것으로, 사람에게 있는 시비지심(是非之心)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하늘이 만물(萬物)과 만사(萬事)를 낼 때 모두 하늘이 그렇게 되도록 만드신 것이다. 크구나, 하늘이여! 누가 이를 주관하는가? 오호라, 태극이로다!
주석 12)대저 …… 한다
《주역》 〈건괘 괘사(卦辭)〉의 정전(程傳)에 나온 말이다.
주석 13)심원하여 그치지 않아[於穆不已]
《시경》 〈주송(周頌)〉 유천지명편(維天之命篇)에, "하늘의 명이 아, 심원하여 그치지 않는다.[維天之命, 於穆不已.]"라고 하였는데,
주석 14)평단(平旦)
새벽의 청명한 기운을 의미한 말로, 유가(儒家)에서 주장하는 이른바 야기(夜氣)를 말한다. 야기는 밤사이에 생겨나는 천지의 맑은 기운으로, 유가에서는 이를 흔히 사람의 양심에 비겨서 중하게 여기는데,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우산지목(牛山之木)의 비유로 자세히 나온다. 이 시에서 태양은 양심을, 바람과 구름은 번뇌를 상징한다.
주석 15)대월상제(對越上帝)
상제를 마주한 듯 경건한 자세를 말함. 주자의 〈경재잠(敬齋箴)〉에 "그 의관을 바르게 하고 그 시선을 존엄하게 하며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거처하고 상제를 마주한 듯 경건한 자세를 가져라.[正其衣冠, 尊其瞻視, 潛心以居, 對越上帝.]"라고 하였다.
주석 16)음성 …… 얼굴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공손함과 검소함을 어찌 음성이나 웃는 얼굴로 꾸며서 할 수 있겠는가.[恭儉, 豈可以聲音笑貌爲哉.]"라고 하였다.
初二日 癸巳
【昭陽大荒落】。陰。與二三同硏。 講學之餘。 各爲作文。以天爲論題。 陳先聖言天之辭。文王曰。 "乾元亨利貞。" 孔子曰。 "大哉。 乾元! 萬物資始。" 子思曰。 "天道。 可以一言。 而盡誠而已。" 程子曰。 "夫天專言之。 則道也。 分而言之。 則以主宰謂之帝。 以形體謂之天。 以性情謂之乾。 以妙用謂之神。 以功用謂之鬼神。" 朱子曰 '天卽理也'。 《詩》曰 '於皇上帝'。 《中庸》末章。 又曰 '上天之載。 無聲無臭'。一童子。 猝然問曰 "然則雷霆之聲。 非天之聲歟?"。 余未能答。 而輒思子云。 "善言天者。 必徵於人。 天道無形而難知。 人事有迹而易知故也"之言。以聖人徵之。 巍巍蕩蕩。 於穆不已。 可法無聲無臭。無聲有聲。 難得分明。 近取諸身。 則心之虛靈平旦。 未與物接之時。 湛然虛靜。 廓然大公。 庶幾對越上帝。亦無聲無臭。 忽然應事接物。 則不無聲音笑貌。以此推究。 則上天之載。 無聲。 形而上之道也。 雷霆之聲。 形而下之器也。程子以形體謂之天。 有形則有氣。 有氣則有聲。 雷霆之聲。 陰陽之氣。 薄震之聲也。無聲還有聲。 於此可驗。妙哉! 人亦天生之物也。 凡所云爲皆天機自動。 安不可以所爲驗得於天乎? 天有元之道爲春。 則有溫和慈愛底意思。 而人之惻隱之心似之。有亨之道而爲夏。 則有宣著發揮意思。 而人之恭敬之心似之。有利之道而爲秋。 則有慘烈强斷意思。 而人之羞惡之心似之。有貞之道而爲冬。 則有收斂無痕跡意思。 而人之是非之心似之。然則天生萬物萬事。 皆天之所使。大哉。 天乎! 孰其尸之? 嗚呼。 太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