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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암일기(棲巖日記)
  • 1922년(임술)
  • 4월(四月)
  • 1일(을축)(初一日 乙丑)

서암일기(棲巖日記) / 1922년(임술) / 4월(四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11.0003.TXT.0001
1일(을축)
삼가 광주(光州) 매월리(梅月里)주 6)의 월계재 시에 차운하였다.

〈월계재 시〉(月溪齋韻)
본시 내향(內鄕)주 7)인 이 고을에 복거하니,(本以內鄕卜是州)
달빛 머금은 시냇물은 물소리도 그윽하네.(月涵溪水水聲幽)
마음 써서 티끌 없이 맑은 곳 얻었으니,(治心期得無塵霽)
덕을 쌓으며 쉼 없이 흐르는 물을 보려네.(進德將看不息流)
도를 도모해 주나라 법도 전할 수 있고,(謀道能傳周法度)
기미를 보아 노나라 춘추 읽을 수 있네.(見機可讀魯春秋)
청명한 이곳에서 공부하기 좋아라.淸明玆地工夫好
지극한 이치는 끊임없어 닿는 물건마다 거두네.(至理源源觸物收)

〈'망야정에서의 작은 술자리'시에 차운함〉 - 초닷새날 -(次望野亭小酌【初五日】)
때에 합당하면 만사(萬事)가 각기 그러하니,(當時萬事各其然)
물고기 뛰고 솔개 나는 것 다 천연이라네.(魚躍鳶飛摠是天)
물가 찾고 산에 오르는 오늘의 정취,(臨水登山今日趣)
꽃 찾아 버들 따라 앞 시내에서 배우네.주 8)(訪花隨柳學前川)
관자와 동자 몇 사람과 함께 즐기니,(冠三童五同相樂)
백발노인과 젊은이가 상하로 이어지네.(白髮靑衿上下連)
여러 친구들 혹시 내 뜻을 아는가,(諸友倘知余志否)
유유자적한 오늘, 하루를 1년처럼 보내세나.(優遊此日日如年)

〈성왕(聖王)이 만이(蠻夷)를 제어하는 상도(常道)〉
성왕이 금수(禽獸)를 기름에 더불어 약속을 맺지도 않고, 공격하며 정벌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들과 약속을 하면 비용이 들면서도 기만을 당하고, 그들을 공격하면 군대를 수고롭게 하고 도적을 불러온다. 그 땅은 경작해 먹고 살 수 없으며, 그 백성은 신하로 기를 수도 없다. 이 때문에 밖에 두고 안으로 들이지 않으며, 멀리하고 가까이 하지 않는다. 정교(政敎)가 그 사람들에게 미치지 않고, 역법[正朔]주 9)이 그 나라에 더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오면 징치(懲治)하고 제어하며, (그들이) 가면 대비하고 지켜야 한다. 그들이 의(義)를 사모하고 공물을 바치면 맞아들여서 예양(禮讓)으로써 응접해서 기미(羈縻)주 10)가 끊어지지 않게 한다. -《주역》에서 기(羈)라고 하고 미(縻)라고 하는 것은 사이(四夷)를 제어하는 것을 말한다. 반고(班固)가 지은 〈한실재기(漢室齋記)〉반고의 주에 보인다.-

김(金) 추사(秋史)의 연경(燕京)에 사람을 보내며 서문〉
강남(江南)금릉(金陵, 남경), 연북(燕北, 연경)장성(長城), 이는 우리 명나라의 두 서울이다. 금릉이 폐허가 된 것을 나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연북장성이 초라해졌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다만 대장부가 한쪽 변방에서 태어나 중국을 유람하니, 또한 하나의 상쾌한 일이다. 그대가 이번에 가면 심양(潯陽)삼절도(三節島) 아래를 지나갈 터인데, 만약 꿈에서라도 삼학사(三學士)주 11)의 영령을 만나면, '그대는 지금 어찌하여 가는가?'라고 물으실 것이니, 과연 무슨 말로 답하리오? 이번 행차에서는 황하물이 맑게 쏟아지는 것을 알아보고 오게나. 나는 병든 귀머거리가 되어 만리 길 가는 데 함께 할 수도 없고, 도성문 전별연에서 함께 마시지도 못하니, 애석하도다!

간들간들 강가의 나무는 멀리 정주 12)을 머금고,(裊裊江樹遠含情)
봉황산 아래 구름은 만 리에 펼쳐 있으리.(鳳凰山下雲萬里)

또 한 편의 시를 주었다.

나에게 십년을 연마한 보검이 있어,(我有寶劒磨十年)
용의 빛 두우성 사이로 곧장 솟아오르네.주 13)(龍光直射斗牛躔)
은근히 주노니 그대 어디에 쓰려나?(慇懃持贈君何用)
가서 가을바람 부는 역수가주 14)에 걸어 놓으라.(去掛秋風易水邊)

〈아이 가르치는 시운으로 인해 우연히 짓다〉(因學兒韻偶成)
내가 세상에 처해 살면서 나를 잊었으니,(以吾處世却忘吾)
심신 일체가 성인의 가르침 배우는 것이네.(一切心神學聖謨)
옥을 숨겨 감춰두어 누가 값을 기다릴까?주 15)(蘊玉藏之誰待價)
잘 지닌 사람 있다면 매양 술을 사리라.(有人護則每酒沽)
밝은 낮 세 길의 나무로 바람 소리 듣고,(白晝聞風三丈木)
맑은 밤 열 길 오동나무에서 달을 맞는다.(淸宵迎月十尋梧)
인간의 만사의 경륜도 여기에 있으니,(人間萬事經綸在)
범응곡당함이 병을 거꾸로 세우는 것 같으리.주 16)(泛應曲當若建壺)

〈청화주 17)의 작은 술자리〉(淸和小酌)
때는 사월이라 순양주 18)의 때이니,(時當四月卽純陽)
꽃향기와 풀 향기도 다 해간다네.(已矣花香又草芳)
바람에 흩어진 버들개지 흰 눈처럼 날리고,(風散柳綿飛白雪)
물 위에 뜬 연잎 방당을 매웠네.(水添荷葉綴方塘)
시정의 깊고 옅음 말로 다하기 어렵나니,(詩情深淺言難盡)
술빚주 19)의 많고 적음을 어찌 헤아리랴.(酒債小多意豈量)
붕우를 불러 손잡고 즐기나니,(喚友招朋攜手樂)
언덕은 영원하고 도심은 유장하네.(在阿永矣道心長)

〈다음날 또 읊다〉(翌日又吟)
청화한 날 산정에서 한잔 술 마시니,(淸和一酌在山亭)
여흥은 도도하여 다시 언덕 오르네.(餘興陶陶更上皐)
고요히 들으니 솔바람은 차가운 옛 곡조요,(靜聽松風寒古調)
머리를 돌려보니 보리 물결은 파도가 되었구나.(回看麥浪作波濤)
내오는 안주는 개천에서 잡은 생선회요,(供肴獵得川魚膾)
꾀한 술은 시골 주막에서 불러온 막걸리라.(謀酒喚來野店醪)
때때로 향연하며 즐김은 수를 기대하는 뜻이니,주 20)(宴樂以時需待意)
옆 사람은 알지 못하고 시호(詩豪)라 말하는구려.(傍人不識謂詩豪)

〈양성재의 곡왕치 시를 보고 느낌이 있어〉주 21)(感養性齋哭王峙韻)
창오주 22)의 산색은 오랫동안 아득한데,(蒼梧山色久茫茫)
양성의 진충(盡忠)은 이 고을에서 드러났지.(養性盡忠著此鄕)
고을 남쪽 대곡(大谷)용두산 정상에,(鄕南大谷龍豆上)
우뚝한 고개 있어 곡왕이라 부른다네.(有峙崢嶸號哭王)

〈또 이어서 찬하기를〉(又縱而贊曰)
치지와 역행을 함에(致知力行)
복숭아로 비유하고 복숭아로 완성했네.(桃譬桃終)
오성(五性)주 23)을 함양(涵養)하며,(涵養五性)
정성을 다하고 중용 취하였지.(竭誠取中)
인(仁)에 의지하고 거경(居敬)하여,(依仁居敬)
집에서는 효도하고 나라엔 충성했네.(家孝國忠)
이에 월산사(月山祠)에 배향하니,(腏享月山)
천지인(天地人)이 공평하구나.(天地人公)

〈양성재 행장 발문>
-고려태사 삼중대광 통합삼한익찬공신(高麗太師三重大匡統合三韓翊贊功臣)인 이도(李棹)전의(全義)에서 살았으므로 전의를 본적으로 하였다.-
공의 성(姓)은 이씨(李氏)로 선계(先系)는 전의(全義)에서 나왔다. 꿈에 규성(奎星, 문장(文章)을 맡은 별)을 보고 임신하였으므로 소명이 규석(奎錫)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뛰어났으며, 덕성이 순후(淳厚)하고 중립하여 치우치지 않았으므로 호정(浩亭) -고려 정사공신(靖社功臣) 하륜(河崙)의 호- 이 보고 기이하게 여겨 관식(寬植)이라 명명(命名)하였다. 양성(養性)은 그의 호로, 종숙부(從叔父) 양정공(良靖公)주 24) -청백리(淸白吏) 이화(李樺)- 이 지어준 것이다.
일찍이 여러 아이와 함께 복숭아를 먹고 망치로 씨의 껍질을 깨뜨려서 그 인(仁, 과실(果實) 씨의 흰 알맹이)을 보고 "중심(中心)이 인(仁)이 되니, 마음 바깥의 껍데기[殼, 복숭아 씨앗의 딱딱한 부분]는 의(義)이다. 껍데기의 바깥은 살[膚, 복숭아의 과육]로 예(禮)이고, 과육의 바깥은 껍질[皮]로 지(智)이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으로 보면 사단(四端)중 인의 체[仁之體]가 가장 깊고 절실한 것을 알고서 이와 같이 말한 것이지, 인(仁)은 내면에 속하고 의(義)는 외면에 속한다는 설[仁內義外之說]주 25)이 아니다. 이는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동일한 성품이지만 이름만 다르다는 것을 징험(徵驗)하여 체득한 것이다.
정자(程子)는 곡식의 종자로써 인을 비유주 26)하였으니, 이와는 또한 다르다. 다른 의예지(義禮智)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근사록(近思錄)》에서 말하기를 "인은 자애하고 온화하다는 의미가 있고, 의는 참열(慘烈)하고 강단(剛斷)하다는 의미 있으며, 예는 선저(宣著, 드러냄)하고 발휘(發揮)한다는 의미가 있고, 지는 수렴(收斂)하여 흔적이 없다는 의미가 있다. -본래 사덕(四德)주 27)이 있으므로 이 네 가지의 질(質)이 있다. 그 질로 인하여 그 성품을 알 수 있다.- 이로서 보건대, 사덕을 비유한 것이 형체와 소리가 없는 것을 징험하여 발(發)한 것이니, 천년을 가도 나올 수 없는 격언이다.
나이 8세에 이르러 삼종조(三從祖) 효정공(孝靖公)주 28)에게 소학을 배웠다. 효정공 -휘는 정간(貞幹)- 은 뛰어나게 남다른 효행이 있었다. 태조대왕이 '가정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 8글자를 손수 써서 내려주시니, 이 8자는 천지가 다하고 만고가 다하도록 위와 아래로 통하는 도인데, 이 8자로서 수업하였다. 또 이어서 수신의 대법으로 삼아서 본원을 함양하고 덕기를 성취하였다. 그 뒤 숙부 양정공(良靖公)으로부터 대학을 청강하여 성의장(誠意章)에 곡진하게 뜻을 다하니, 신독(愼獨)의 공부가 치밀해졌다. 정자가 말하기를 "천덕(天德)과 왕도(王道)는 단지 신독에 달려 있다."라고 하였으니, 신독하되 궁리(窮理)하며, 궁리하되 근독(謹獨)하니, 뜻이 정밀해지고 인(仁)이 성숙됨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또한 독실하게 행하고 실로 형체대로 실천하는 군자(君子)이다.
《역》에 이르기를 "행동을 살펴보아 길흉(吉凶)을 상고하되, 주선한 것이 완벽하면 크게 길하리라.[視履考祥 其旋元吉]"주 29)라고 하였는데, 공은 한가로이 거처할 때 엄숙하였고 사람을 접대할 때에 온화하였다. 당시 동료들이 높이 받들고 덕(德)을 우러렀고, 위로는 태조가 불러 크게 쓰일 것을 기약함이 있었다. 정종 2년 경진년에 인천군주(仁川郡主)와 결혼하였는데, 당시 나이 17세였다. 그 후부터 나라에는 충성하고, 집안에는 효도를 다하였다. 대궐을 출입함에 있어서는 잘못을 바로잡고 보좌함이 많았고, 추성(秋城, 담양)을 다스릴 때는 교화하여 백성을 새롭게 하였다. 이는 대개 공이 천리(天理)를 따라 실천한 것이 성학 속에서 나와 그 요령을 얻은 것이고, 태조대왕이 효정공에게 내려주신 8자 어서(御書)의 힘에 의지한 것이다. 고어(古語, 정이의 말임)에 이르기를 "제왕의 학문은 그 요체를 얻기에 힘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실로 그 요체를 얻은 것이다.
공자는 《효경(孝經)》에서 말씀하시기를, "선왕(先王)은 지극한 덕과 긴요한 도를 지니고서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따랐으므로 백성들이 화목하게 되어 상하에 원망하는 자가 없어졌다."주 30)[先王有至德要道, 以順天下, 民用和睦, 上下無怨。]"라고 하였고, 또 말씀하기를 "대저 효는 덕의 근본이고, 교화가 말미암은 바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말씀하기를 "대저 효는 하늘의 떳떳한 법칙이고, 땅의 도리이며, 사람이 본받아서 행하는 길이다"주 31)라고 하셨다. 《주역(周易)》의〈문언(文言)〉에서는 '건괘(乾卦)의 구이(九二)는 인(仁)을 말하고, 곤괘(坤卦)의 육이(六二)는 경(敬)을 말한다.'고 했다. 이것은 실로 사람이 사람이 되는 요체이고, 천하 만세에 태평을 열어주는 도이니, 어찌 다만 이씨(李氏)의 가법에서만 전적으로 아름답겠는가?
영찬(永粲)은 경전과 제자백가를 대략 섭렵하였는데, 공(公)의 행장을 읽고는 8 글자[八字]의 어서(御書)를 가슴에 새기고 산지가 오래되었다. 공의 후손 희채(凞采)가 나에게 한마디 말을 기록해주기를 청하였다. 나는 재주가 둔하고 기질이 질박하여, 저서(著書)에 능하지 못하고 문사(文辭)를 터득하지 못했는데, 다시 공의 행장을 살펴보니 세계(世系)와 벌열(閥閱)이 밝게 실려 있기 때문에 대략 그 대강을 엮어서 발문(跋文)으로 삼는다.
주석 6)광주 매월리
현재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으로, 여기에 광산김씨 집성촌이 있다.
주석 7)내향(內鄕)
친가가 있는 고을을 말한다.
주석 8)꽃 …… 배우네
송나라 정명도(程明道)의 시에서 인용한 것이다. 송나라 정명도는 시 〈춘일우성(春日偶成)〉에서 "옅은 구름에 살랑 바람 부는 정오 무렵, 꽃 찾아 버들 따라 앞 시내를 왔노라.[雲淡風經近午天, 訪花隨柳過前川]"라고 하였다.
주석 9)정삭(正朔)
옛날 중국의 제왕이 새로 반포하는 역법(曆法)을 가리킨다.
주석 10)기미(羈縻)
굴레와 고삐라는 뜻으로, 속박(束縛)하거나 견제(牽制)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주석 11)삼학사(三學士)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고 주전론(主戰論)을 주창한 척화신(斥和臣)으로 그들에게 끌려가 끝끝내 굴하지 않고 죽임을 당한 홍익한(洪翼漢)ㆍ윤집(尹集)ㆍ오달제(吳達濟)를 가리킨다.
주석 12)간들간들 …… 정
송지문(宋之問)이 두심언(杜審言)과 이별하며 지은 〈별두심언(別杜審言)〉 에 '병들어 누워 인사도 못 하는데, 아 그대 만 리 길 떠나시는가. 하수 다리에서 전송도 못 하다니, 강가의 나무에 멀리 정을 머금네.[臥病人事絶, 嗟君萬里行。河橋不相送, 江樹遠含情.]'라는 구절이 실려 있다.
주석 13)용의 …… 솟아오르네
용천(龍泉)과 태아(太阿)라는 두 보검이 땅속에 묻힌 채 자기(紫氣)를 하늘의 두우성 사이에 내쏘고 있다가 마침내는 발굴되기에 이르렀다는 전설이 있다.(《진서(晉書)》 권36 〈장화열전(張華列傳)〉)
주석 14)역수(易水)
중국 하북성(河北省)에 있는 강 이름이다. 형가(荊軻)가 태자 단(太子丹)과 작별한 곳이다. 옛날 중국의 연(燕)나라와 조(趙)나라 땅에는 백절불굴의 기개를 지니고 비분강개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히 연나라 태자 단(丹)을 위해 진시황(秦始皇)을 죽이려고 자객(刺客)인 형가(荊軻)가 떠나면서 역수 가에서 축(筑)의 명인인 고점리(高漸離)의 반주에 맞추어 "바람결 쓸쓸해라 역수 물 차가운데, 장사 한번 떠나가면 다시 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라는 노래를 불렀다.(《戰國策 燕策3》)
주석 15)옥을 …… 기다릴까
공자의 제자 자공이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다고 할 때, 이것을 상자 속에 그냥 보관해 두어야 합니까, 아니면 좋은 값을 받고 팔아야 합니까?[有美玉於斯, 韞櫝而藏諸, 求善賈而沽諸?]" 하고 묻자, 공자가 "팔아야지, 팔아야 되고말고. 나 역시 제값을 주고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沽之哉, 沽之哉. 我待賈者也.]"라고 대답하였다.(《논어(論語)》 〈자한(子罕)〉)
주석 16)범응곡당함이 …… 같으리
범응곡당(泛應曲當)은 '널리 응하고 세세히 들어맞는다.'라는 의미로, 《논어》 〈이인(里仁)〉에서 공자는 증삼에게 "삼아! 우리의 도는 한 가지 이치로써 만 가지 일을 꿰뚫고 있다.[參乎, 吾道一以貫之.]"라고 한 구절을 주자가 주석하여 '성인의 마음은 한 가지 이치이면서 널리 응하고 세세히 들어맞는다.[聖人之心, 渾然一理而泛應曲當.]'라고 해석하였다. 건호(建壺)는 건령(建瓴)과 같은 말이니, 물병의 물을 거꾸로 쏟는다는 말로 기운이 몹시 세차 막힘이 없다는 뜻이다. 한나라 전긍(田肯)이 고조에게 용병의 유리한 형세에 대해 진언을 하면서, 마치 '지붕 꼭대기에 앉아 물병을 거꾸로 들고 아래로 쏟을 때처럼[居高屋之上建瓴水]' 막힘이 없을 것이라는 뜻으로 비유한 고사가 《사기》 권8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온다.
주석 17)청화(淸和)
음력 4월의 이칭이다.
주석 18)순양(純陽)
음력 4월을 가리킨다. 《주역》의 괘를 12개월에 배치했을 때 11월은 맨 아래에서 양(陽)이 처음 생긴 복괘(復卦)에 해당하고, 12월은 양이 둘인 임괘(臨卦)에 해당하고, 1월은 양이 셋인 태괘(泰卦)에 해당하고, 2월은 양이 넷인 대장괘(大壯卦)에 해당하고, 3월은 양이 다섯인 쾌괘(夬卦)에 해당하고, 4월은 6효가 모두 양인 건괘(乾卦)에 해당한다.
주석 19)술빛[酒債]
두보(杜甫)의 시 〈곡강(曲江)〉에 "술빚은 늘상 가는 곳마다 있거니와, 인생의 칠십은 예로부터 드물다네.[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라고 하였다.
주석 20)때때로 …… 뜻이니
《주역》 〈수괘(需卦)〉 상사(象辭)에 "구름이 오르는 것이 수이니, 군자가 이것을 인하여 음식을 먹으며 향연을 즐긴다.[雲上於天需, 君子以飮食宴樂.]"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석 21)양성재(養性齋)
양성재는 이관식(李寬植, 1384~1436)의 호이다. 자는 덕후(德厚),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정종(定宗)의 일곱째 딸인 인천공주(仁川公主)와 혼인했다. 감호관(監護官)과 용인현감을 거쳐 1406년 담양부사로 부임하였는데 치적과 선정을 많이 쌓고 청렴하여 백성들의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1426년 인천옹주가 세상을 떠나자 담양 용두산(龍頭山)으로 들어가 학문을 닦으며 지냈다. 매년 정종의 제삿날에 용두산에 올라 북향하고 곡읍하니, 고을 사람들이 이 산을 곡왕치(哭王峙)라 하였다. 1668년(현종 9) 월산사에 배향되었다.
주석 22)창오(蒼梧)
순(舜) 임금이 남순(南巡)하던 도중에 죽은 곳이다.
주석 23)오성(五性)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의 다섯 가지 성(性)을 말한다.
주석 24)양정공(良靖公)
이화(李樺, ? ~1459)의 시호이다. 이화의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대호군ㆍ충청도수군처치사(水軍處置使)ㆍ검판중추원사(檢判中樞院事) 등을 역임하였다.
주석 25)인(仁)은 …… 설[仁內義外之說]
고자는 일찍이 묵자(墨子)의 가르침을 받고 맹자에게 와서 수업하기도 하였는데,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대해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을 주장하여 토론을 벌였으며, 인(仁)은 내면에 속하고 의(義)는 외면에 속한다는 이른바 인내의외설(仁內義外說)을 제기하기도 하였다.(《孟子 告子上》)
주석 26)정자(程子)가 …… 비유
어떤 사람이 "인과 마음이 어떻게 다릅니까?" 하고 물으니,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답하기를 "마음은 비유하자면 곡식의 종자[穀種]와 같다. 생겨나는 성(性)은 곧 인(仁)이고, 양기(陽氣)가 발하는 곳은 곧 정(情)이다."[伊川曰, 心譬如穀種, 生之性便是仁, 陽氣發處乃情也。]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近思錄集註 卷1》)
주석 27)사덕(四德)
사람의 본성(本性)에 간직되어 있는 네 가지 덕으로,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이다. 사람은 원래 천도(天道)의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을 받아서 이 네 가지 본성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周易 乾卦 卦辭》
주석 28)효정공(孝靖公)
이정간(李貞幹, 1360 ~ 1439)의 시호이다. 자는 고부(固夫)이고,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아버지는 원종공신 이구직(李丘直)이다. 아버지의 음덕으로 벼슬에 올라, 사헌부집의를 거쳐 1405년(태종 5) 강화부사가 되었다. 그뒤 내외의 관직을 역임하고 세종 때 강원도관찰사에 이르러 사임하고, 향리에 은거하면서 노모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주석 29)행동을 …… 길하리라
《주역》 이괘(履卦) 상구(上九)의 효사이다.
주석 30)선왕은 …… 없어졌다
《효경(孝經)》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 나온다.
주석 31)대저 효는 …… 길이다
《효경(孝經)》 〈삼재(三才)〉에 나온다.
初一日 乙丑
謹次光州梅月里

〈月溪齋韻〉
本以內鄕卜是州。月涵溪水水聲幽。治心期得無塵霽。進德將看不息流。謀道能傳周法度。見機可讀魯春秋。至理源源觸物收。

〈次望野亭小酌【初五日】〉
當時萬事各其然。魚躍鳶飛摠是天。臨水登山今日趣。訪花隨柳學前川。冠三童五同相樂。白髮靑衿上下連。諸友倘知余志否。優遊此日日如年。

〈聖王制御蠻夷之常道〉
聖王禽獸畜之。 不與約誓。 不就攻伐。約之。 則費賂而見欺。 攻之。 則勞師而招寇。其地不可耕而食也。 其民不可臣而畜也。是以。 外而不內。 䟽而不戚。政敎不及其人。 正朔不加其國。來則懲 而御之。 去則備而守之。其慕義而貢獻。 則接之。 以禮讓羈縻不絶。【《易》曰羈曰縻言。 制於四夷。見〈漢室齋記〉班固註。】

秋史送人燕京序〉
江南金陵燕北長城。 是我皇明朝兩。 而金陵墟矣。 余欲無言。 燕北長城陋矣。 復何云哉。但大丈夫生於偏邦。 遊於中國。 亦一快事。 而君今行矣。 過潯陽三節島下。 如夢遇三學士靈。 問君今何之。 果何辭答耶? 今行認得黃河水淸瀉而來也。顧此病聾。 未與計萬里行。 未與飮都門餞。 惜哉!

裊裊江樹遠含情。鳳凰山下雲萬里。

又贈一編詩。
我有寶劒磨十年。龍光直射斗牛躔。慇懃持贈君何用。去掛秋風易水邊。

〈因學兒韻偶成〉
以吾處世却忘吾。一切心神學聖謨。蘊玉藏之誰待價。有人護則每酒沽。白晝聞風三丈木。淸宵迎月十尋梧。人間萬事經綸在。泛應曲當若建壺。

〈淸和小酌〉
時當四月卽純陽。已矣花香又草芳。風散柳綿飛白雪。水添荷葉綴方塘。詩情深淺言難盡。酒債小多意豈量。喚友招朋攜手樂。在阿永矣道心長。

〈翌日又吟〉
淸和一酌在山亭。餘興陶陶更上皐。靜聽松風寒古調。回看麥浪作波濤。供肴獵得川魚膾。謀酒喚來野店醪。宴樂以時需待意。傍人不識謂詩豪。

〈感養性齋哭王峙韻〉
蒼梧山色久茫茫。養性盡忠著此鄕。鄕南大谷龍豆上。有峙崢嶸號哭王

〈又縱而贊曰〉
致知力行。桃譬桃終。涵養五性。竭誠取中。依仁居敬。家孝國忠。腏享月山。天地人公。

〈養性齋行狀跋〉
【高麗太師三重大匡統合三韓翊贊功臣。 全義。 故因籍焉。】
公姓李氏。 系出全義。夢奎星而娠。 故小名奎錫。幼而頴悟。 德性淳厚。 中立不倚。 故浩亭【麗朝靖社功臣河崙號】見而異之。 命名寬植。養性乃其號。 從叔良靖公【淸白吏】所授也。嘗與羣兒啖桃。 引鎚破殼。 而視其仁曰。 "中心爲仁。 則心外殼義也。 殼外膚禮也。 膚外皮智也。" 觀此則知四端中仁之體。 最深切如此之言。 非仁內義外之說也。乃體驗仁義禮智。 同一性而名異者也。程子以穀種譬仁。 則是亦非。 更無他義禮智也。《近思錄》云。 仁有慈愛溫和底意思。 義有慘烈剛斷底意思。 禮有宣著發揮底意思。 智有收斂無痕跡底意思。【本有四德。 故有此四質。因其質而知其性善。】以此觀譬喻四德之。 無形聲之驗而發。 千載未發之格言也。年及八歲。 受小學於三從祖孝靖公。孝靖公【諱貞幹】有卓異之孝行。太祖大王賜以手書。 '家傳忠孝。 世守仁敬'八字。 此八字。 窮天地。 亘萬古。 徹上徹下之大道。 以此八字受業。又從以修身大法。 涵養本源。 德器成就。厥後從叔良靖公。 聽講大學。 眷眷致意於誠意章。 則愼獨之功密矣。 程子曰。 "天德王道。 只在謹獨"。 謹獨而窮理。 窮理而謹獨。 義精仁熟。 豈可量乎? 且篤行實踐形之君子也。《易》曰。 '視履考祥。 其旋元吉。' 公之燕居也嚴。 待人也溫。 時有儕輩之推宗而仰德。 上有太祖之召。 期以大用。至於定宗臨御二年庚辰。 尙仁川郡主。 時年十七矣。自後於國盡忠。 於家極孝。出入禁闥。 多有補闕拾遺。 使爲秋城。 風化新民。盖公之循蹈天理。 自聖學中出來而得其要。 賴太祖大王。 賜孝靖公八字御書之力也。古語云。 '帝王之學。 務得其要'。 此實得其要也。孔子於《孝經》曰。 "先王有至德要道。 以順天下。 民用和穆。 上下無惡。" 又曰。 "夫孝。 德之本。 敎之所由生。" 又曰。 "夫孝。 天之經。 地之義。 民之行。" 於《易》〈文言〉。 '乾九二言仁。 坤六二言敬。' 此實人之所以爲人之要。 天下萬世開太平之道。 豈獨全美於李氏之家法也哉? 永粲略涉經傳諸子。 奉讀公之行狀。 得見八字御書。 眷眷服膺者。 久矣。公之後孫凞采。 請余一言記之。余才鈍質朴。 著書不能。 文辭不得。 更審公之行狀。 則世系與閥閱昭載。 故略以梗槩。 構以爲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