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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19년(기미) / 9월(九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08.0007.TXT.0001
17일(을축)
맑음. 장동(獐洞)에 사는 이희채(李熙采)가 내방하여 춘부(椿府)의 편액인 죽천재기(竹泉齋記)를 청하였다. 그러므로 기록한다.
〈죽천재기(竹泉齋記)〉
호남(湖南)담양(潭陽)에 거사 이근옥(李根沃)공이 있는데, 평생을 대나무와 샘을 좋아하여 '죽천(竹泉)'이란 이름으로 집에 편액하였다. 집의 사면으로 보이는 물사(物事)가 많지 않은 것이 아니니, 오동나무에 비친 깨끗한 달빛, 버드나무에 부는 맑은 바람, 하얀 바위와 붉은 벼랑, 산의 구름과 시냇물 등 모두가 수양을 돕는 도구들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도 어찌 다만 이 양물(兩物)만을 편애한 것은 과연 어떠해서인 것인가?
대저 대나무와 샘이란 물건은 청청한 높은 절개가 변하지 않고, 사시(四時)가 일관되게 끊임없이 솟아나고 흘러 구덩이를 가득 채우고 사해(四海)에 도달하니, 진덕수업(進德修業)의 공부를 타물(他物)과 비견할 수 없다. 《파경(葩經)》주 26)에 이르기를 "푸른 대가 아름답고 무성하도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위 무공(衛武公)이 스스로 도학을 닦은 것을 찬미한 것이다.주 27) 맹자가 "근원이 있는 샘물은 용솟아 흐른다."주 28)라고 하였으니, 후학에게 공부가 단계를 밟아 성취되는 것을 열어준 것으로, 그 뜻을 상상할 수 있다.
대저 이 주인옹(主人翁)은 이 양물을 사랑하여 항상 수양에 도움이 되고 일심이 환해져서 자수하여 위 무공이 되기를 기약하였고, 진학한 것은 추(鄒)의 아성(亞聖, 맹자)을 배운 것이었다. 그가 성덕(成德)하여 군자의 절개를 세울 수 있었으니, 또한 도학(道學)의 근원을 아는 것이로다.
도유협흡(屠維協洽, 기미(己未)년)주 29) 가을 9월 17일에 영윤(令胤) 희채가 나에게 기문(記文) 써주길 청하기에 감히 나무꾼의 문체로 이와 같이 정을 묘사하였다. 이어서 시를 지었다.

주인옹(主人翁)이 사랑한 물건 많지 않아(主翁愛物不爲多)
푸른 대나무와 근원이 있는 샘물에 초가 한 채뿐이네(綠竹源泉草一家)
성긴 그림자와 함께 초저녁 달이 나란히 나타나고(踈影齊頭初夜月)
차가운 물 흐르는 곳에 봄꽃이 다시 피었네(寒流淙處復春花)
의관이 대대로 이어진 것은 시례(詩禮)로 인함이니(衣冠繼世因詩禮)
충효(忠孝)의 여풍(餘風)이 아직도 노래되네(忠孝餘風尙詠歌)
자손들은 토구(菟裘)주 30)의 업을 지키리니(子孫能守菟裘業)
계승하고 복응(服膺)하여 잃지 않는 것이 어떠한가(承以服膺勿失何)
주석 26)파경(葩經)
《시경》을 가리킨다.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서 "《시경》은 바르고 꽃봉오리와 같다.[詩正而葩]"라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주석 27)위 무공(衛武公)이 …… 것이다
《시경》 〈위풍(衛風)·기욱(淇奧)〉에, "저 기수가의 언덕을 보니, 푸른 대가 아름답고 무성하도다. 문채 빛나는 우리 님이여, 짐승의 골각(骨角)을 끊고 갈듯, 옥석(玉石)을 쪼고 갈듯 하도다.[瞻彼淇奧, 綠竹猗猗。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이 시는 본디 위 무공(衛武公)의 높은 학문과 덕행을 칭찬하여 노래한 것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곧 학문과 덕행을 절차탁마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석 28)맹자가 …… 흐른다
서자(徐子)가 맹자에게, 공자가 자주 물을 칭탄(稱歎)한 데 대하여 묻자, 맹자가 이르기를 "근원 있는 샘물이 콸콸 솟아 나와서 밤낮을 쉬지 않고 흘러 구덩이를 채운 다음에야 나가서 사해에 이르나니, 근본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은 것이라, 이것을 취하신 것이다.[源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맹자》 〈이루 하(離婁下)〉). 군자가 단계를 밟아 부단히 노력해야 도(道)에 이를 수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주석 29)도유협흡(屠維協洽)
도유와 협흡은 고간지(古干支)로, 도유는 기(己)이고 협흡은 미(未)로, 여기서는 1919년이다.
주석 30)토구(菟裘)
토구(菟裘)는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있던 지명인데, 뒷날 은거지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노나라 은공(隱公)이 환공(桓公)에게 자리를 물려주고서 "내 장차 토구 땅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늙으리라."라고 하였다.(《춘추좌씨전》 은공11년)
十七日 乙丑
陽。獐洞李熙采來訪。 請其椿府扁。 其竹泉齋記。故記之。
竹泉齋記
。 有居士根沃。生平愛竹與泉。 以竹泉扁其第。第之四面。 所管領物事。 靡不爲多。 梧桐霽月。 楊柳光風。 白石丹崖。 山雲溪河。 皆可爲助養之具矣。奚特偏愛此兩物者。 果何如哉? 夫竹泉之爲物。 靑靑高節。 不變而貫四時。 混混逝流。 盈科而達四海。 進修之功。 不可以他物比肩也。《葩經》云。 "綠竹猗猗"。 贊衛武公之道學自修。孟子曰。 "源泉混混"。 開來學者之工程階梯。 則其意可想也已。大抵斯翁。 愛此兩物。 常常助養。 而一心瑩然自修期衛武公。進學學鄒亞聖歟。 其於成德。 能立君子之節。 亦知道學之源矣夫。
屠維協洽。秋九月。十七日。令胤熙采請余爲記。 敢以蕘辭寫情如右。繼以詩曰。
主翁愛物不爲多。 綠竹源泉草一家。 踈影齊頭初夜月。 寒流淙處復春花。 衣冠繼世因詩禮。 忠孝餘風尙詠歌。 子孫能守菟裘業。 承以服膺勿失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