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일기
  • 서암일기(棲巖日記)
  • 1919년(기미)
  • 7월(七月)
  • 26일(을사)(二十六日 乙巳)

서암일기(棲巖日記) / 1919년(기미) / 7월(七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08.0006.TXT.0002
26일(을사)
남원(南原) 진효(鎭斆)가 와서 광주(光州) 고광선(高光善)김종곤(金棕坤)에게 준 글을 전해주어서 이를 기록해 둔다.
대저 해파리는 눈이 없는 것으로, 부침(浮沈)과 동정(動靜)을 하나같이 새우떼의 인도(引導)에 따릅니다. 소길(璅蛣)주 25)은 창자가 없는 것으로, 호흡(呼吸)과 토납(吐納, 들이마시며 내뿜음)을 게(蟹)의 껍질에 일임합니다. 그러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눈이 없는 해파리도 아니요, 창자가 없는 소길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날마다 선성의 글을 보아 자기의 눈을 짓는 것이 해파리가 새우 눈을 통하는 것 같고, 날마다 선성의 말씀을 읽어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이 소길이 게의 창자를 통한 것과 같으니, 눈이 없다 해서 무슨 근심이며 창자가 없다 해서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마치 그 길가에 고인 빗물이 바다로 흘러가려 하지만 중간에 말라버리고, 노둔한 말을 타고서 빨리 달려주기를 바라나 중도에 피곤하면 이것은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것을 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 종곤(棕坤)씨께서는 혹시 사람이 보잘 것 없다 하여 말을 폐하지는 않겠지요?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광선(光善) 저는 나이가 육십을 넘어 병으로 세상 밖 운산(雲山)에 누워있으니, 오직 자잘한 고통의 한탄만 간절할 뿐입니다. 그런데 종곤씨가 간장(汗醬)을 가지고 방문하였으니 그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침내 눈을 비비고 지렁이 같은 글씨로 이와 같이 씁니다.
무(戊)년 7월 19일에 광선 씀.
주석 25)소길(璅蛣)
〈한서〉 지리지(漢書地理志)의 회계군 길기정(會稽郡銡埼亭) 주(注)에서, 사고(師古)가 이르기를, "길(蛣)은 길이 한 치, 너비 두 푼이며 한 마리의 작은 게가 그 배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이것인데, 쇄길(璅蛣) 또는 해경(海鏡)이라 한다."라고 했다.
二十六日 乙巳
南原鎭斆來傳。 光州高光善金棕坤書。 記之。
夫水母無目者也。 而浮沈動靜。 一遵衆鰕之導。璅蛣無腹者也。 而呼吸吐納。 一任蟹之甲。 則竊念。 吾輩非無目之水母。 无腹之璅蛣乎。然則日看先聖書。 作自己之目。 如水母之目鰕。 日讀先聖語。 充自己之腹。 如璅蛣之腹蟹。 則何患乎毋目。 亦何患乎无腹哉? 若謂其行潦之水。 願朝宗而中渴。 駑蹇之乘希逸足而中疲。 則是未免自畫者也。何殊之有? 惟吾棕坤。 倘不以人微而廢言歟。勉之哉。光善年踰六旬。 病臥于世外雲山。 只切微苦之歎。而棕坤甫汗醬來訪。 謬恩爲感。遂拭翳而蚯蚓如右云爾。七月十九日。光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