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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18년(무오) / 7월(七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07.0006.TXT.0001
2일
입추. 추천(秋川)의 사적을 기록한다.

공의 이름은 〈인명〉준철(俊哲)〈/인명〉이고, 자(字)는 치도(穉道)이며, 호(號)는 추천(秋川)으로, 〈지명〉하남(河南)〈/지명〉 부자 이천(伊川)과 승국충신 건천(巾川, 〈인명〉程廣〈/인명〉)의 후예이다. 연원이 있는 대성(大姓)으로, 사문의 망족(望族, 명망이 높은 집안)이다. 7세조 〈인명〉필영(必永)〈/인명〉이 〈지명〉광주(光州) 덕산(德山)〈/지명〉으로부터 비로소 〈지명〉담양(潭陽) 목면(木面) 대추리(大秋里)〈/지명〉주 15)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6세조는 〈인명〉만주(萬周)〈/인명〉이고, 5세조는 〈인명〉이복(履福)〈/인명〉이며, 고조는 〈인명〉경수(景洙)〈/인명〉인데, 타고난 재질이 영특하여 열두세 살 때 능히 시서(詩書)에 통달하였고, 부모 섬김을 지극히 효성스럽게 하였으며 상을 당해서는 여묘살이를 했다. 증조부 취옹(醉翁) 〈인명〉상권(尙權)〈/인명〉은 천성이 효순하여 부모를 지성으로 섬겼고, 온 고을이 추중(推重)하였다. 할아버지는 〈인명〉달승(達承)〈/인명〉이고, 아버지는 〈인명〉한평(漢平)〈/인명〉인데, 덕행을 쌓고 은거하니 가풍에서 유래한 것이다. 어머니는 추성(秋城) 국씨(鞠氏)이니, 또한 〈지명〉두문동(杜門洞)〈/지명〉 72현 중의 한 사람인 〈관직명〉사간(司諫)〈/관직명〉 〈인명〉유(襦)〈/인명〉의 후손 〈인명〉윤관(允觀)〈/인명〉의 딸로, 부녀의 덕과 행실이 높아서 능히 태교할 줄을 알았으며, 〈연도〉숭정후 4 기축년(1829)〈/연도〉 7월 9일에 공을 〈지명〉담양부(潭陽府) 지침리(祗砧里)〈/지명〉주 16)의 집에서 낳았다.
공은 타고난 자태가 순수하고 아름다웠으며, 영명 활달하고 노성하게 엄숙하여 바라본 사람은 저절로 공경심이 일어났다. 성품이 바르고 청명하며 간정하고 고결하여 악인(惡人)과는 함께 서 있지 않은 것이 마치 몸이 더러워질 듯이 했다.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는 늙을수록 더욱 독실해졌으며, 과거공부를 일삼지 않고 온전하게 위기지학(爲己之學)에 힘썼다. 이단(異端)을 멀리하고 바른 학문을 곧추세웠으며, 한결같이 천질(天秩)의 예(禮)로써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 경전을 안고 홀로 서 있는 것이 마치 세찬 물결 속에 있는 지주(砥柱)와 같았고 벽처럼 우뚝 선 기상이었다.
〈연도〉정축년(1877)〈/연도〉에 아버지의 상(喪)을 당했고, 〈연도〉정해년(1887)〈/연도〉에 어머니 상을 당했는데, 상례와 장례에서 예를 다했고, 한결같이 주자가례를 따르며 건천(巾川)의 뜻을 이었다. 삭망(朔望)으로 성묘를 하고, 춘추(春秋)로 옛집을 방문하여 취옹(醉翁)의 일을 서술하였는데, 효성이 지극한 것은 천성이 그래서인가, 가훈이 그래서인가? 현회(顯晦, 유명해지는 것과 은폐되는 것)에 개의치 않으며, 알아주지 않아도 성낸 기색이 없으니 군자인가, 군자로다. 항아리가 자주 비어도 걱정하지 않고, 자식을 기르지 못했어도 유감이 없으니, 명(命)을 알아서인가? 명을 아는 것이다. 배우자는 밀양 박씨 〈인명〉세은(世殷)〈/인명〉의 딸로 또한 아름다운 덕(德)이 있어 아내의 도리를 지킬 수 있었다. 후사가 없이 죽어서 아우 〈인명〉준혁(俊赫)〈/인명〉의 아들을 자식으로 삼았다.
만년에 〈지명〉평장동(平章洞)〈/지명〉 친산(親山) 아래의 〈지명〉역촌(驛村)〈/지명〉에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친묘(親墓)를 우러러 보니, 그 성효(誠孝)는 세상에서 필적할 사람이 드물다. 〈연도〉갑진년(1904)〈/연도〉 정월 초일일에 〈지명〉남산(南山)〈/지명〉의 본제(本第, 본가)에서 죽으니, 향년 76세였다.
평생 동안 지은 시문(詩文)과 수문록(隨聞錄) 등을 기록한 것은 대개 공의 여사(餘事)인데, 영포(令抱, 남의 손자를 존칭하는 말) 〈인명〉경호(璟灝)〈/인명〉가 모아가지고 와서 나에게 한마디의 말을 청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평소 친하게 지낸 정이 있는지라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듣고 본 것을 간략히 기록하여 아름다운 자취를 이어가길 권면한다.

〈망제(亡弟) 〈인명〉희중(希中)〈/인명〉을 제사하는 글〉
유세차(維歲次) 〈연도〉무오년〈/연도〉 7월 병술삭 25일 경술에, 형이 망제 〈인명〉희중〈/인명〉의 영령에게 고하노라.
아! 슬프도다.(嗚呼哀哉)
너는 나보다 뒤에 태어났는데,(爾後我生)
어찌 나보다 먼저 갔느냐.(胡先我逝)
목숨은 비록 정해져 있다지만,(命雖有定)
어찌 아우가 먼저 죽는단 말인가.(豈如弟厲)
한평생이 가난하여,(一生艱難)
살아갈 계책도 없었고,(生活無計)
세상의 도는 쇠미해져,(世衰道微)
또 가세까지 잃었구나.(又爲失勢)
죽음에 이르도록 변하지 않은 것은,(至死不變)
바름을 얻은 조예였는데,(得正造詣)
하루아침에 영결(永訣)하고,(一朝永訣)
저승과 이승이 서로 막히게 되었네.(幽明相滯)
보고 싶은 맘 비록 간절하지만,(欲見雖切)
한 번이라도 볼 길 전혀 없네.(無路一睇)
아, 슬프도다.(嗚呼痛哉)
지금 사람 중에는,(凡今之人)
형제만한 이 없으니,(莫如兄弟)
외모(外侮)를 누가 막아주고,(外侮誰禦)
곤경을 만나면 누가 구제해줄까.(遇險誰濟)
내 마음이 비통하여,(我心悲傷)
속절없이 상체(常棣)주 17)시만 읊조리네.(空詠常棣)
세월이 빠르게 흘러,(日月流邁)
어느덧 상제에 이르니,(奄及常制)
비창함을 이길 수 없어(不勝悲愴)
상제(上帝)에게 호소하려 하네.(欲訴上帝)
척령(할미새)이 언덕에 있고,(脊令在原)
기러기떼 물가에 있는데,(鴻鴈居汭)
나 홀로 쓸쓸히(我獨踽踽)
어디에서 박(匏)처럼 매여 살까.주 18)(居何匏繫)
마음이 목석이 아니니,(心非木石)
어찌 처창하지 않겠는가.(寧不愴悽)
통곡하며 길게 부르짖고서,(痛哭長呼)
눈물 흘리며 제에 임하니,(涕淚臨祭)
옛적에 화목함을 생각하네.(念昔旣翕)
담락하는 형제를,(湛樂弟兄)
지금은 볼 수 없으니,(至今不見)
애통하고 평안치 않도다.(哀慟不平)
도로에서 짐 짊어질 때,(擔負道路)
나의 짐을 네가 함께했었지.(我任爾幷)
함께 먹고 마심이 화락하였고,(飮食衎衎)
마른 밥에 나물국 먹어도,(糗飯藜羹)
가족이 함께 살며,(同居家門)
내 이랑을 네가 갈았지.(我畝爾耕)
병란을 함께 피하고,(共避兵亂)
위험도 함께 행한 것을,(危險共行)
절절이 생각하니,(節節思之)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如聞容聲)
너의 아들 〈인명〉철수〈/인명〉는,(爾子〈인명〉哲洙〈/인명〉)
점점 자라서 충영(充盈)해지고,(漸漸充盈)
〈인명〉나씨〈/인명〉댁에 시집간 딸과 〈인명〉유〈/인명〉서방도,(〈인명〉羅〈/인명〉女〈인명〉柳〈/인명〉婿)
같이 와서 맞이하는구나.(亦爲來迎)
이에 변변찮은 제물을 갖추어,(玆具菲薄)
질명(質明, 날이 샐 무렵)에 바치고,(以陳質明)
영혼에 바라노니,(靈祈祈)
내려와서 정성을 흠향하시라.(庶幾享誠)

소를 치면서 소치는 것 잊고서,(牧牛忘牧牛)
시냇가 논두렁에서 한가함을 틈타 잠든다.(澗畔借閒眠)
또 인간사를 멀리하니,(且遠人間事)
물소리만 꿈속을 감돈다.(水聲繞夢魂)
주석 15)대추리(大秋里)
담양군 구암면 대추리로, 현재 담양군 봉산면 대추리에 해당된다.
주석 16)지침리(祗砧里)
담양면 지침리로, 현재 담양군 담양읍 지침리이다.
주석 17)상체(常棣)
형제의 우애를 읊은 시로 《시경》 〈소아(小雅)〉에 들어있다.
주석 18)박처럼 매여 살까
'포계(匏繫)'는 무용지물을 뜻한다. 《논어》 〈양화(陽貨)〉에 "공자가 이르기를 '내 어찌 뒤웅박이겠느냐. 어찌 매달려 있기만 하고 먹지 못할쏘냐.[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初二日
立秋。記秋川事蹟。

公諱〈인명〉俊哲〈/인명〉。 字穉道。 號秋川。 〈지명〉河南〈/지명〉夫子伊川之后。 勝國忠臣巾川之裔也。以淵源之大姓。 斯文之望族。七世祖諱〈인명〉必永〈/인명〉。 自〈지명〉光州德山〈/지명〉。 始居〈지명〉潭陽木面大秋里〈/지명〉。六世祖諱〈인명〉萬周〈/인명〉。 五世祖諱〈인명〉履福〈/인명〉。 高祖諱〈인명〉景洙〈/인명〉。 天才英特。 十二三歲能通詩書。 事親至孝。 因喪居廬。曾祖醉翁諱〈인명〉尙權〈/인명〉。 天性純孝。 事親至誠。 一鄕推重。祖諱〈인명〉達承〈/인명〉。 考諱〈인명〉漢平〈/인명〉。 有陰德潛光。 而家風有素。妣秋城鞠氏。 亦〈지명〉杜門洞〈/지명〉七十二賢中〈관직명〉司諫〈/관직명〉〈인명〉襦〈/인명〉之后。 〈인명〉允觀〈/인명〉之女。 幽閑靜貞。 能知胎敎。 而〈연도〉崇禎四回己丑〈/연도〉七月九日。 生公于府中〈지명〉祗砧里〈/지명〉。第天姿粹美。 英達夙成儼然。 人望自然生敬。雅性淸明。 簡貞高潔。 不與惡人立若將浼焉。其於事親。 老而彌篤。 不事擧子業。 全務爲己學。遠異端扶正學。 一以天秩之禮爲己任。抱經獨立。 如頹波之砥柱。 壁立之氣像也。〈연도〉丁丑〈/연도〉丁外艱。 〈연도〉丁亥〈/연도〉丁內艱。 喪葬盡禮。 一遵朱子家禮。 繼巾川之志。朔望省楸。 春秋訪舊。 述醉翁之事。 純孝至誠。 天性以然歟。家訓以然歟。不以顯晦介意。 不爲不知慍色。 君子乎。 君子也。瓠婁空而不憂。 子不育而無憾。 知命歟知命也。配密陽朴氏〈인명〉世殷〈/인명〉之女。 亦有淑德。 能執婦道。卒以無嗣。 以弟〈인명〉俊赫〈/인명〉之子爲子。晩居〈지명〉平章洞〈/지명〉親山下〈지명〉驛村〈/지명〉。 朝夕瞻望親墓。 其誠孝世罕與儔。〈연도〉甲辰〈/연도〉正月初一日。 歸終于〈지명〉南山〈/지명〉本第。 享年七十六也。平生所著詩律文。 與所記隨聞錄等篇。 蓋公之餘事。 而令抱〈인명〉璟灝〈/인명〉蒐取。 以來請余一辭。余竊想。 平昔親厚之誼。 不敢辭。 略記聞見。 以勉趾美。

〈祭亡弟〈인명〉希中〈/인명〉文〉
維歲次。 〈연도〉戊午〈/연도〉七月丙戌朔。 二十五日庚戌。 兄告于亡弟〈인명〉希中〈/인명〉之靈。
嗚呼哀哉.爾後我生。胡先我逝.命雖有定。豈如弟厲.一生艱難。生活無計。世衰道微。又爲失勢.至死不變。得正造詣。一朝永訣。幽明相滯.欲見雖切。無路一睇.嗚呼痛哉.凡今之人。莫如兄弟。外侮誰禦。遇險誰濟.我心悲傷。空詠常棣.日月流邁。奄及常制。不勝悲愴。欲訴上帝.脊令在原。鴻鴈居汭。我獨踽踽。居何匏繫.心非木石。寧不愴悽.痛哭長呼。涕淚臨祭。念昔旣翕.湛樂弟兄。至今不見。哀慟不平.擔負道路。我任爾幷.飮食衎衎。糗飯藜羹。同居家門。我畝爾耕.共避兵亂。危險共行。節節思之。如聞容聲.爾子〈인명〉哲洙〈/인명〉。漸漸充盈。〈인명〉羅〈/인명〉女〈인명〉柳〈/인명〉婿。亦爲來迎.玆具菲薄。以陳質明。靈祈祈。庶幾享誠.

牧牛忘牧牛。澗畔借閒眠.且遠人間事。水聲繞夢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