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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17년(정사) / 11월(十一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06.0012.TXT.0012
20일(기유)
눈이 옴. 전에 지은 〈태극설〉을 기록했다.

〈태극설〉
태극이란 것은 만리(萬理) 지극함의 총명(總名)으로, 때마다 그렇지 않음이 없고, 곳마다 그렇지 않음이 없으며, 물(物)마다 그렇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그렇게 되게 한 원인[所以然之故]'이다. 또 무극이라고 하면 무극에 태극이 있는 것이다. 태극의 이름은 희경(羲經, 주역)에서 처음 드러나 만화(萬化)의 근원이 되고 양의(兩儀)를 낳게 되니, 양의가 음양이고 음양이 바로 천지이다. 천지간에 만물이 또한 음양이 아님이 없고, 음양이 특별히 하늘에 모습을 드러내어 밝음과 어두움, 춥거나 더움, 가득 참이나 빔, 사라지거나 불어남이 있게 되고, 지위에 고하가 있고, 수(數)에 기우(奇偶)가 있고, 체(體)에 방원(方圓)이 있으며, 용(用)에 동정(動靜)이 있는 것이다. 한 번 동하고 한번 정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되고 절로 억만년에 세월에 이르도록 조화와 추뉴(樞紐, 요체)의 기틀이 된다. 하룡(河龍) 등과 낙수의 거북이 무늬에서 분명히 드러나니, 복희의 ≪역경≫과 우임금의 〈홍범〉이 모두 이로 인하여 꾸며진 것이다. 성인이 이로 인해 상(象)을 보고, 상을 봄에 기(氣)를 살피었고, 기를 살펴서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를 알았다. 소이연지고가 바로 이(理)이니, 이(理)라는 것은 문리(文理)와 조리(條理)의 이(理)이다. 하나이면서 만 가지로 다르고, 만 가지로 다르면서 하나이다. 하나라는 것은 바로 태극이다. 크게는 천지, 작게는 만물이 이 이(理)가 아님이 없다. 이(理)가 있으면 기가 있고, 기가 있으면 이가 있어서 선후도 없고, 이합(離合)도 없다. 있으면 모두 있고, 없으면 모두 없어서 혼연히 온전하게 갖추었다.
만약 이기로 경중을 따지면 이가 본래 중하고, 선후를 따지면 이가 본래 먼저이며, 본말을 따지면 이가 본이 된다. 그러나 진실로 경중과 선후, 본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행함에 이르러서는 다만 경중과 선후, 본말뿐만이 아니라 유무, 허실, 거세(巨細), 정조(精粗), 장단, 광협, 대소, 다과 등 천만 가지 형상이 있어서 천지 사이에 가득한 것은 분명히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그 소이연을 궁구하면 이 이가 관여한 바가 아님이 없으니, 이가 중하고 만화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말하기를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一陰一陽之謂道也]"라고 하였다.
도라는 것은 곧 이 이(理)가 만물에 유행하여 각자의 성명(性命)이 정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엔들 태극이 없을 것이며, 태극이 홀로 공중에 매달려서 공중의 사물이 지성스럽게 다하도록 할 수 있겠는가? 주자(周子)가 저술한 〈태극도〉나 주자(朱子)가 저술한 〈태극론〉은 모두 본원을 궁구하고 은미한 것을 드러내고 찾아낸 것으로, 별도로 태극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찌 이(理) 바깥에 기가 있고 기 바깥에 이가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율곡 선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알았던 자질과 탁월한 식견으로써 분석의 폐단을 힘써 바로잡아 도체(道體)가 하나인 것으로 돌이키게 하셨다. 그 말씀에 이르기를, "그것을 발하는 것은 기요, 발하게 하는 것은 이(理)이다. 기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발하게 할 것이 없으니, 선후도 없고 이합도 없다.[發之者氣也, 所以發者理也。非氣不能發, 非理無所發, 無先後無離合]" 라고 하셨다. 또 말씀하기를, "음이 정하고 양이 동하는 것은 시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가고 스스로 그치는 것은 그 기틀이 스스로 그러해서이다.[陰靜陽動, 非有使之, 自行自止, 其機自爾]"라고 하셨다. 이 말은 명백간이(明白簡易)하고 정정당당하여 성인이 다시 일어나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오늘날 선현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온축된 것이 선현의 글인데도 도리어 선현이 '주기(主氣)'를 했다고 서로 전하면서 말하길, "율곡 선생 또한 주기이다."라고 한다. 노사(蘆沙) 선생의 〈외필(猥筆)〉에 이르러서는 '음이 정하고 양이 동하는 것, 스스로 가고 스스로 그치는 것은 기기가 스스로 그러한 것이지 시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지적해내어서 말을 한 것이 지나치게 단정적이어서 후폐(後弊)가 없을 수 없다고 여긴다.
참으로 이말대로라면 음양동정과 행지(行止) 밖에 별도로 이(理)의 동정과 행지가 있는 것이니, 그 기틀이 저절로 그러한 것이겠는가? 단지 기만 가리킨다고 해서 이(理)가 어찌 간여하지 않겠는가? '시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非有使之]'라는 말을 쓸모없는 헛된 말로 만들어 버리니, 이(理)가 혼자 올연히 저쪽에 있으면서 이것을 부리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형이상인 것을 가리켜 도라 하고 형이하인 것을 가리켜 기라고 한다.[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고 했다. 이것은 이기가 나뉘는 곳으로, 사실은 형이상인 것은 기(器)가 없고, 형이하인 것은 도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음양이기 중의 소이연지고로 볼 것이니, 합쳐지면서도 나뉘고 나뉘면서도 합쳐지는 것이다.
이자(李子, 이황)는 〈이일잠(理一箴)〉에서 말씀하기를, "누가 그것을 주관하는가? 오호라, 태극이란 것은 합치면서 나뉘고, 나뉘면서도 합쳐지는 것이다.[孰其尸之? 嗚呼, 太極者, 分而合, 合而分者]"라고 했다. 그러나 이기는 서로 이합한 것이 아니어서 기가 없으면 이 이(理)도 없고, 이가 없으면 이 기도 없는 것이다. 좁고 천박한 소견주 124)으로는 마치려고 해도 할 수 없으니, 한스러운 것은 선진(先進) 제현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고 물어볼 수도 없는 것이다. 이에 대략 기록하여 고명한 견해를 기다린다.
주석 124)좁고 천박한 소견
한나라 동방삭(東方朔)의 〈답객난(答客難)〉에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바가지로 퍼서 바닷물을 재며, 풀줄기로 종을 치는 격이다.[以管窺天, 以蠡測海, 以筳撞鍾]"라는 말이 나온다.(≪문선(文選)≫ 권45)
二十日 己酉
雪。記前所述〈太極說〉。
太極說。
太極者。 萬理至極之總名。 以其無時不然。 無處不然。 無物不然。 所以然之故。又謂之無極。 則無極有太極。太極之名。 始著於羲經。 以爲萬化之原而生兩儀。 兩儀者陰陽也。 陰陽卽天地也。天地間萬物。 亦無非陰陽。 而陰陽特著象于天。 有明暗寒暑盈虛消息。 位有高下。 數有奇遇。 體有方圓。 用有動靜。 一動一靜。 互爲其根。 自爲亘萬古億萬年。 造化樞紐之機。昭著于河龍之背。 洛龜之文。 羲經禹範。 皆所因而文之也。聖人因之而見象。 見象而察氣。 察氣而知所以然故。所以然之故卽理也。 理也者。 文理條理之理。 一而萬殊。 萬殊而一者也。 一者卽太極也。大而天地。 小而萬物。 無非此理。 而有理則有氣。 有氣有理。 無先後無離合。 有則皆有。 無則皆無。 渾然全具。若以理氣爲輕重。 則理自重。 爲先後之則理自先。 爲本末則理爲本。 非眞有輕重先後本末也。然到於流行也。 非但輕重先後本末也。 有無虛實巨細精粗長短廣狹大小多寡。 千形萬象。 盈于天地間者。 莫非昭著。 故究其所以然。 則莫非此理所關。 則理爲重。 而爲萬化之原。 故孔子曰 "一陰一陽之謂道也。" 道也者。 卽此理流行 萬物各定性命者也。然則孰無太極。 而太極獨爲懸空。 空物諄諄然使之乎? 周子著〈太極圖〉。 朱子著〈太極論〉。 皆是窮原極本固著而索隱。 非別有太極之謂也。有何理外之氣。 氣外之理也? 吾東栗谷先生。 生知之資。 卓越之見。 力捄分析之弊以反道體之一。其言曰。 "發之者氣也。 所以發者理也。非氣不能發。 非理無所發。無先後無離合。" 又曰。 "陰靜陽動。 非有使之。 自行自止。 其機自爾。" 此言。 明白簡易。 正正當當。 而聖人復起不能易矣。如何今之學先賢之道者。 所蘊者先賢之文。 而反以先賢爲主氣傳相爲言曰。 "栗谷先生亦主氣。" 至於蘆沙先生〈猥筆〉。 指出 '陰靜陽動。 自行自止。 非有使之。 其機自爾'之言。 以爲說得太快。 不無後弊。信斯言也。 陰陽動靜行止外。 別有理之動靜行止者。 其機自爾也哉? 但以氣指而理獨不與焉? '非有使之'言。 爲無用之虛言。 理獨兀然在彼而使此乎? 子曰。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 此是理氣分界處。 其實非形上者無器而形下無道。 觀陰陽二氣中所以然之故。 而合而分。 分而合者也。李子〈理一箴〉曰。 "孰其尸之? 嗚呼太極者。 分而合。 合而分者。" 然理氣不相離合。 而無氣無此理。 無理無此氣也。以管見蠡測。 欲罷不能。 而恨未得親炙於先進諸賢面質。 而畧記以俟高明之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