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일기
  • 서암일기(棲巖日記)
  • 1917년(정사)
  • 4월(四月)
  • 12일(갑술)(十二日 甲戌)

서암일기(棲巖日記) / 1917년(정사) / 4월(四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06.0007.TXT.0012
12일(갑술)
흐림. ≪학포양선생문집(學圃梁先生文集)≫주 56)의 〈우부(愚賦)〉를 보고 기록한다.

하늘이 성품을 사람에게 주심이여(皇賦則而畀人)
어찌 성인에게는 후하고 우인에게는 박하게 했으랴(胡聖豊而愚嗇)
기품의 청탁으로 인연하여(緣氣稟之淸濁)
혼명(昏明)의 구별이 있는 것이라(有昏明之區別)
밝은이는 진실로 상지(上智)가 되니(明固造乎上智)
이 혼우(昏愚)함을 홀로 슬퍼하는구나(竊獨悲此昏愚)
조수의 발톱과 어금니도 없으면서(無鳥獸之爪牙)
성현과 같은 두로(頭顱)주 57)를 지녔구나(同□□之頭顱)
당우를 짓고 편히 살면서(構堂宇而安居)
곡식을 먹고주 58) 비단옷을 입는구나주 59)(知食粟而衣帛)
엄연한 구규(九竅)주 60)를 갖춘 형체를 지녀(儼九竅以成形)
하늘과 땅 사이에 명을 받고 서있구나(命兩間而中立)
그 타고난 덕이 같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非厥德之不若)
총명한 본 바탕을 잃는구나(喪聰明之良質)
시청과 언동으로부터(自視聽與言動)
행기와 접물에 이르기까지(曁行己與接物)
옳지 아니한 부류를 따라서 쫓으니(非義類焉是從)
인기(人紀)주 61)가 없어져도 걱정하지 않는구나(蔑人紀而不恤)
임금으로는 하나라 걸과 상나라 수요(君之夏桀商受)
신하로는 비렴과 악래주 62)가 그랬다(臣之飛廉惡來)
재앙이 있는데도 어리석음이 너무 심하여(愚已甚於禍稔)
집과 나라가 망해도 슬퍼하지 않았다(家國敗而莫哀)
아! 사람의 성품은 본래 착하여(嗟人性之本善)
이물(異物)처럼 치우치고 막히지 않는 것이다(異物類之偏塞)
- 아마 한 구절이 빠진 것 같다. -
혹시라도 사사로움 극복하고 반성을 한다면(儻克己而反求)
어리석어도 고명으로 나아가는 법(愚可進乎高明)
시(柴)주 63)는 어리석었어도 능히 효도를 하였고(柴由愚而克孝)
삼(參)주 64)은 노둔하였어도 덕을 이루었다(參由魯而德成)
저 영무자의 지우(智愚)와(彼智愚之寗武)
안자의 예우(睿愚)주 65)여(與睿愚之顔子)
참으로 우(愚)의 특출한 분으로서(信其愚之卓立)
고산을 우러르나주 66) 기대하기 어렵구나(仰高山而難企)
슬프다 나의 기질이 못났음이여(悵余質之淟涊)
학문이 누추하고 행실도 삐뚤어졌다(學凡陋而行乖)
군자에게 버림받아주 67)(爲君子之所棄)
소인의 무리될까 두렵도다(恐小人之同儕)
그러나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별하라주 68)는 교훈을(然學問思辨之訓)
가만히 자사의 글에서 복응하였다(竊服膺乎思書)
마땅히 백배의 공부를 하며 쉬지 않아(當百功而不措)
성(誠)을 간직하여 처음대로 회복하리라(庶存誠而復初)
어찌 자포자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여(詎同暴棄之愚)
벌레와 물고기처럼 될 수가 있겠는가주 69)(甘若蟲而若魚)
이처럼 마음이 굳지 못할까 염려하여(慮玆心之不固)
잠(箴)을 지어 나를 깨우치노라(因作箴而警余)

잠에 이른다(箴曰)
마음은 본시 비어있는 것(心兮本虛)
들어가고 나가고 방향이 없구나(出入無鄕)
어쩌다가 형체에 부려지면(一爲形役)
방자하고 미치고 하는구나(乃肆乃狂)
공자는 이를 잡아 간직하라주 70) 하셨고(孔稱操存)
맹자는 이를 해치면 성을 잃는다주 71)고 하셨다(孟稱梏亡)
경(敬)하여 이를 지키고(敬而守之)
성(誠)으로서 독실히 공부하라(誠以篤功)
그런 뒤에야 우(愚)를 깨고서(然後破愚)
부딪히는 곳마다 훤히 트이리라(觸處皆通)

-선생의 휘는 팽손(彭孫)으로, 기묘 명인이다. 정암선생(靜菴先生, 조광조)을 염빈(斂殯, 입관하여 안치하는 것)하였다. 시호는 혜강으로, 부지런히 베풀고 사사로움이 없는 것[施勤無私]을 '혜(惠)'라 하고, 연원이 두루 통하는 것을 '강(康)'이라 한다.-
주석 56)학포양선생문집(學圃梁先生文集)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의 문집인 ≪학포집(學圃集)≫을 말한다. 양팽손의 자는 대춘(大春)이고, 호는 학포(學圃), 본관은 제주(濟州)로, 능성(綾城)에서 태어났다. 1510년(중종 5)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생원시에 합격하고, 1516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했으며, 또 현량과(賢良科)에 발탁되었다. 1519년 10월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김정 등을 위해 소두(疏頭)로서 항소하였다. 이 일로 인해 삭직되어 고향인 능주로 돌아와, 중조산(中條山) 아래 쌍봉리(雙鳳里)에 작은 집을 지어 '학포당(學圃堂)'이라 이름하고 독서로 소일하였다. 1630년(인조 8) 김장생(金長生) 등의 청으로 능주 죽수서원(竹樹書院)에 배향되었으며, 1818년(순조 18) 순천의 용강서원(龍岡書院)에 추향되었다. 저서로는 ≪학포유집≫ 2책이 전한다. 시호는 혜강(惠康)이다.
주석 57)두로(頭顱)
백발의 쇠한 머리를 말한다.
주석 58)곡식을 먹고(食粟)
식속(食粟)은 별로 하는 일 없이 곡식만 축내는 인간이라는 뜻인데, 조교(曹交)가 맹자에게 "나도 문왕(文王)처럼 키가 큰데 어째서 문왕이 못 되고 곡식만 먹습니까?"라고 물은 데서 나온 말이다.(≪맹자≫ 〈고자 하(告子下)〉)
주석 59)곡식을 …… 입는구나
원문에는 '知食粟衣帛'이라고 되어 있으나 학포집에는 '知食粟而衣帛'라고 되어 있다.
주석 60)구규(九竅)
눈・코・입 등 인체(人體)의 모든 구멍으로 된 부분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주석 61)인기(人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주석 62)비렴과 악래
비렴(飛廉)・악래(惡來)는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간신(奸臣)이다.
주석 63)시(柴)
공자의 제자 고시(高柴)를 말한다. 자는 자고(子皐)이며, 어버이 상에 삼 년 동안 울고 웃지 않았다.(≪예기≫ 〈단궁 상(檀弓上)〉)
주석 64)삼(參)
공자의 제자 증삼(曾參)을 말한다. 자는 자여(子輿)이고 학문을 함에 성실하고 돈독하게 하여 마침내 공자의 학문을 전수했는데, ≪논어≫ 선진(先進)에 "증삼은 노둔하다.[參也魯]"고 한 말이 있다.
주석 65)영무자의 …… 예우(睿愚)
유종원(柳宗元)의 〈우계시서(愚溪詩序)〉에 의하면 "공자가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다.' 했으니, 그는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은 체했던 사람이요, 또 공자가 안자(顔子)를 일러 '내가 안회와 종일토록 말을 했으되, 어기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 같다.' 했으니, 안자는 총명하면서도 어리석은 체했던 사람이라, 이 두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지금 나는 도가 있는 세상을 만나서 도리에 어긋나고 일에 거슬렸다. 그러므로 모든 어리석은 이 중에 나만큼 어리석은 이는 없는 것이다.[甯武子邦無道則愚, 智而爲愚者也. 顔子終日不違如愚, 睿而爲愚者也. 皆不得爲眞愚. 今余遭有道, 而違於理, 悖於事. 故凡爲愚者莫我若也.]"라고 하였다.(≪유하동집(柳河東集)≫)
주석 66)고산을 우러르나
≪시경(詩經)≫ 〈소아(小雅)·차할(車舝)〉의 "높은 뫼를 우러르며 큰길을 따라간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석 67)군자에게 버림받아
원문에는 '爲君子所棄'라고 되어 있으나 학포집에는 '爲君子之所棄'라고 되어 있다.
주석 68)배우고 …… 분별하라[學問思辨]
≪중용장구≫의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분별해야 한다.[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라는 말을 줄인 것이다.
주석 69)벌레와 …… 있겠는가
원문에는 '甘若蟲若魚'라고 되어 있으나 학포집에는 '甘若蟲而若魚'라고 되어 있다.
주석 70)이를 잡아 간직하라[操存]
조즉존(操則存)의 준말로, 마음을 다스려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말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공자(孔子)께서 이르기를 '잡고 있으면 보존되고, 놓아 버리면 없어지며,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고, 어디로 향할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하셨다."라고 한 데서 나왔다.
주석 71)이를 …… 잃는다[梏亡]
물욕의 구속을 받아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나오는 말로, "사람에게 있는 것인들 어찌 인의의 마음이 없겠는가. …… 낮과 밤에 자라나는 것과 새벽녘의 기운이 그 호오가 남들과 서로 가까운 것이 얼마 되지 않는데, 낮에 하는 소행이 이것을 제어하여 사라지게 한다.[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라고 하였다. 새벽녘 사물과 접하지 않아 기운이 청명할 때에 발현되는 미약한 양심(良心)이 낮에 행하는 불선한 행위에 의해 없어진다는 말이다.
十二日 甲戌
陰。看 ≪學圃梁先生文集≫ 〈愚賦〉。 記之。
皇賦則而畀人。 胡聖豊而愚嗇。 緣氣稟之淸濁。 有昏明之區別。 明固造乎上智。 竊獨悲此昏愚。 無鳥獸之爪牙。 同□□之頭顱。 構堂宇而安居。 知食粟而衣帛。 儼九竅以成形。 命兩間而中立。 非厥德之不若。 喪聰明之良質。 自視聽與言動。 曁行己與接物。 非義類焉是從。 蔑人紀而不恤。 君之夏桀商受。 臣之飛廉惡來。 愚已甚於禍稔。 家國敗而莫哀。 嗟人性之本善。 異物類之偏塞。 【恐脫一句】。 儻克己而反求。 愚可進乎高明。 柴由愚而克孝。 參由魯而德成。 彼智愚之寗武。 與睿愚之顔子。 信其愚之卓立。 仰高山而難企。 悵余質之淟涊。 學凡陋而行乖。 爲君子之所棄。 恐小人之同儕。 然學問思辨之訓。 竊服膺乎思書。 當百功而不措。 庶存誠而復初。 詎同暴棄之愚。 甘若蟲而若魚。 慮玆心之不固。 因作箴而警余。 箴曰。 心兮本虛。 出入無鄕。 一爲形役。 乃肆乃狂。 孔稱操存。 孟稱梏亡。 敬而守之。 誠以篤功。 然後破愚。 觸處皆通。
【先生諱彭孫。 己卯名人。斂殯靜菴先生。諡惠康。 施勤無私曰惠。 淵源流通曰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