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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암일기(棲巖日記)
- 1917년(정사)
- 윤2월(閏二月)
- 15일(무인)(十五日 戊寅)
서암일기(棲巖日記) / 1917년(정사) / 윤2월(閏二月)
15일(무인)
흐림. 조금 비가 오고 바람이 붐. 이학용(李學庸)이 왔다. 내가 지은 시를 외었다.
이 세상에 늦게 태어나 머리를 긁적이다가(晩生此世費搔頭)
낙엽진 차가운 성에 근심만 더하네(落木寒城更添愁)
장대한 뜻은 단서 없이 세월만 보내고(壯志無端經歲月)
충의한 마음은 뜻이 있어 춘추를 이야기 하네(忠肝有意談春秋)
송백은 비록 말라도 오히려 우뚝 서 있고(松柏雖枯猶特立)
강물은 만 번 꺾여도 결국 동쪽으로 흘러간다(江漢萬折竟東流)
제수와 유수의 흙탕물은 맑아질 곳 없으니(塵寰濟洧無澄處)
다만 누구를 기다려 주나라를 숭상하리(第待何人獨尊周)
〈또 읊다(次)〉
청명한 밤 눈 속에 머리 돌리고(晴明時夜雪回頭)
흉중에 쌓인 만고의 근심 다 쏟아낸다(寫盡胸中萬古愁)
사람이 어찌 은나라의 일월을주 21) 잊겠으며(人豈放忘殷日月)
누가 노나라의 춘추를 읽을 수 있겠는가(孰能容讀魯春秋
선왕이 거처했던 곳에서 마음이 찢어지니(先王啓處心若裂)
천지를 돌아봄에 눈물만 절로 흐르는구나(回首乾坤淚自流)
군신의 대의를 개미가 먼저 지키나니주 22)(君臣大義蟻先守)
원컨대 백성들은 모두 주나라를 존숭할지어다(願衆蒼生共尊周)
- 주석 21)은나라의 일월
- 고인의 시(詩)에도 "수양산 가운데 은나라의 해와 달이라.[首陽山中殷日月]"라고 하였으니, 아마도 은나라의 일월(日月)은 서구와 일본에 휩싸인 조선의 처지를 빗대어 이른 듯하다. 즉 천하가 서구 문명으로 바뀌어 가더라도 조선만이 유독 대명(大明)의 해와 달을 떠받들고 있다는 것이다.
- 주석 22)군신의 …… 지키나니
- 개미에게 군신(君臣)간의 의리가 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중용혹문(中庸或問)≫ 상권(上卷)에 "범과 승냥이에게 부자간의 친함이 있고, 벌과 개미에게 군신간의 의리가 있고, 승냥이와 수달이 조상에게 제사할 줄을 알고, 징경이에게 암수의 분별이 있는 것으로 말하자면, 그 형기가 한편으로 치우친 반면에 또 의리의 얻은 바를 보존한 것이 있다.[至於虎狼之父子, 蜂蟻之君臣, 豺獺之報本, 雎鳩之有別, 則其形氣之所偏, 又反有以存其義理之所得.]"라고 하였다.
十五日 戊寅
陰。少雨風。李學庸來。誦所作詩。
晩生此世費搔頭。 落木寒城更添愁。 壯志無端經歲月。 忠肝有意談春秋。 松柏雖枯猶特立。 江漢萬折竟東流。 塵寰濟洧無澄處。 第待何人獨尊周。
次晴明時夜雪回頭。 寫盡胸中萬古愁。 人豈放忘殷日月。 孰能容讀魯春秋。 先王啓處心若裂。 回首乾坤淚自流。 君臣大義蟻先守。 願衆蒼生共尊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