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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16년(병진) / 10월(十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05.0010.TXT.0027
27일(계해)
맑음. 오늘은 소설(小雪)이다. ≪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중 〈일재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기록한다.

기(奇)군에게 준 편지에는 감히 이의를 달 수 없습니다만, 대개 이(理)와 기(氣)가 혼합하여 천지 사이에 가득한 것은 그 가운데서 나오지 않음이 없고, 각기 갖추지 않음이 없으니, 태극이 음양을 떠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도(道)와 기(器)의 나뉩에는 한계가 없지 아니하니, 태극과 음양은 아마도 일물(一物)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자가 "태극이 음양을 탄 것은 사람이 말을 탄 것과 같다.[太極之乘陰陽, 如人之乘馬]"라고 하였으니, 결코 사람으로써 말이라 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병이 중하여 다하지 못합니다.
遺奇君之柬, 不敢議爲, 蓋理氣混合, 盈天地之間者, 無不自其中出, 而無不各具, 不可謂太極之離乎陰陽也。然道器之分, 不能無界限, 則太極陰陽, 恐不可謂一物也。朱子曰 '太極之乘陰陽, 如人之乘馬' 則決不可以人爲馬也。病重不盡。

고요한 밤에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던 중 희적(羲迪)이 묻기를, "노사선생이 율곡선생의 글에서 '양이 동하고 음이 정하는 것은 시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기기(氣機)가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주 96) 소이연(所以然)한 것이 이(理)이다.[陽動陰靜, 非有使之, 其機自爾. 所以然者理也]'는 한 단락을 의론하여 말하기를 '만약 그 기기가 스스로 그러한 것이라면 소이연(所以然) 세 글자는 퇴축(退逐)시키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응답하여 말하기를 "노사선생의 말은 아마도 이와 기를 양물(兩物)로 판별하여, 이가 여기에 있으면, 기는 저기에 있고, 이가 갑에 있으면, 기는 을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 말을 한 것이다. '양이 동하고 음이 정하는 것은 시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기기(氣機)가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은 기이고,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 그렇게 되게 한 까닭)는 이인데, 소이연 세 글자를 어찌 퇴축시킬 것인가? 이기는 본래 하나이며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다. 이가 있으면 기가 있고, 기가 있으면 이가 있으니, 있으면 함께 있고 없으면 함께 없으며, 선후도 없고 이합(離合)도 없다. 기는 자취가 있으나 이는 형체가 없다. 형체가 없으므로 무성무취(無聲無臭)하다. 충막무짐(冲漠無朕)하고 신묘불측(神妙不測)한 것이 바로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이다. 또 공중에 매달려 있는 물건이 아니고, 항상 기를 타고 행하니, (이것이) 곧 소이연이다. 소이연을 어찌 퇴축시키겠는가? 만일 소이연지고가 아니라면 그 기기가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은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이겠는가? 율곡 선생은 진실로 나면서부터 알고 있는[生而知之]주 97) 성인으로, 소견이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아 도를 봄이 분명하다. 간추려서 말하면, 발하는 것은 기이고 발하게 하는 소이(所以)는 이이니, 기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발할 것이 없으며, 선후가 없고 이합도 없다. 이와 같은 말은 비록 성인이 다시 나와도 바꿀 수 없다."라고 하였다.
주석 96)음이 …… 그러한 것이다
일기 원문에는 '陽動陰靜, 非有使之, 其機自爾'라 쓰여 있는데, 율곡전서에는 '陽動陰靜, 其機自爾, 非有使之'라고 되어 있다.
주석 97)나면서부터 알고 있는[生而知之]
≪논어≫ 〈술이(述而)〉에 "나는 나면서부터 저절로 잘 알게 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서 배운 사람이다.[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二十七日 癸亥
陽。是日小雪也。看 ≪河西先生集≫ 〈與一齋書〉記之。

靜夜閒談羲迪問 "蘆沙先生議栗谷先生文 '陽動陰靜。 非有使之。 其機自爾。 所以然者理也' 一段曰 '若其機自爾。 則所以然三字。 不得不退逐' 何如也?" 余應之曰 "蘆沙先生之言。 疑是以理氣。 辦爲兩物。 理在此而氣在彼。 理在甲而氣在乙。 故有是說焉。'陽動陰靜。 非有使之。 其機自爾'者氣也。 所以然之故理也。 所以然三字。 何以退逐乎? 理氣本是一而二。 二而一者也。有是理則有是氣。 有是氣則有是理。 有則俱有。 無則俱無。 無先後無離合。氣有適而理無形。無形故無聲無臭。 冲漠無朕。 神妙不測者。 卽所以然之故。又非懸空之物。 常爲乘氣而行。 卽所以然。 所以然何如退逐乎? 若非所以然之故。 其機自爾者。 孰使之然耶? 栗谷先生。 眞生知之聖也。 所見如明鏡止水。 見道分明。略曰。 發之者氣也。 所以發者理也。 非氣不能發。 非理無所發。 無先後。 無離合。如此之言。 雖聖人復起。 不能易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