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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일(병신)(二十八日 丙申)

서암일기(棲巖日記) / 1916년(병진) / 5월(五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05.0005.TXT.0028
28일(병신)
갬. ≪미능재집(未能齋集)≫주 19)의 행적을 보았다.

선생의 휘(諱)는 상중(尙重), 자(字)는 여후(汝厚), 삭녕(朔寧) 최씨이다. 고려 평장사(平章事) 유가(瑜價)의 후예로, 본조(本朝)에 들어와서는 영의정(領議政) 영성부원군(寧城府院君) 시호(諡號) 문정공(文靖公) 항(恒)의 6세손이자 좌승지(左承旨)로 증직된 영(穎)의 아들이다. 선생은 자품(資禀)이 순수하고 아름다웠으며, 영특하고 숙성(夙成)하였다. 16세에 미암 유희춘 선생의 유배지에 찾아가 종유(從遊)하였는데, 처음에 ≪대학≫ 경 1장과 소주(小註)를 주니 하루 만에 그것을 암송하였다. 미암이 매우 감탄하여 말하기를, "최씨 가문을 창대하게 할 사람은 필시 이 사람이리라."라고 하였다.
〈대책(對策)〉주 20)이 있어 기록한다.

〈책문〉
문 : 천지 사이에 형체가 있는 것은 보기 쉽고 형체가 없는 것은 알기 어렵다. 알기 어려운 무형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쉽게 볼 수 있는 유형에서 구해야 한다. 무형한 것은 어떤 것이며, 유형한 것은 어떤 물건인가?
태극도(太極圖)는 성현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알기 어려운 것을 알게 하고자 한 것인데, 공자는 일찍이 안연이나 증자와 말할 때 이 뜻에 이른 적이 없는 것은 왜 그런가? 주자(周子)가 이미 말을 낸 후에 이르러서도 정자(程子)는 문인들에게 수업하지 않은 것은 무슨 뜻인가? 공자는 일찍이 말하지 않았고 정자는 수업하지 않았다면, 초학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은데, 주자(朱子)가 특별히 ≪근사록(近思錄)≫의 서두에다 편차한 것은 또 무슨 뜻인가?
이미 '만물에는 각각 하나의 태극이 갖추어져 있다[萬物各具一太極]'고 말하였으니, 마땅히 형체가 있는 곳에서는 볼 수 있을 것인데, 선유(先儒)는 또 '태극은 형체를 감춘 사물주 21)로서 방향과 처소가 없고 그림자도 소리도 없는 것[太極是藏頭物事, 無方所無影響]'이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태극의 묘함은 끝내 살펴볼 수가 없는 것인가?
천지 만물이 생기기 전에는 이 극(極)이 어디에 깃들어 있으며, 이미 천지 만물이 생긴 후에는 이 극을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공자는 '역에는 태극이 있다[易有太極]'고 말하였고, 주자(周子)는 '무극이면서 태극이다[無極而太極]'고 하였는데, 역에서는 있다고 하고 태극에서는 없다고 하니, 성현들이 그 말을 다르게 한 것은 왜인가? 주자(朱子)는 '유(有)자를 태(太)자로 해석함은 옳지 않다'고 했고, 또 '무극이면서 태극이라고 한 것은 다만 형체는 없으나 이치는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고 하였는데, 이미 '이치가 있다'고 했으면서 어째서 옳지 않게 유(有)자를 해석하는가? 만일 무(無)라고 여긴다면 '태극'이라고 이름 한 것은 어떤 물건인가? 동정(動靜)하게 하고 음양을 낳게 하는 것은 또 무슨 물건인가? 이른바 '만물이 생겨나기 전에 생겨나고 만물이 이미 생겨난 후에 갖추게 된다[生於萬物未生之前, 具於萬物旣生之後]'는 것은 또 어떤 곳에 붙어서 생겨나고 갖추게 되는가?
소옹(邵翁)의 말은 '무극의 전[無極之前]'을 이른 것이니, 무극의 전은 어떤 곳을 말하며, 다시 어떤 물건이라 말할만한 것이 있을 것인가? 장생(莊生, 장자)은 무극(無極)의 위에 한 층을 더하였는데, 선유는 소옹이 말한 '무극의 전'과는 다르다고 여겼으니, 무슨 견해인가? 선유는 '사람마다 각각 태극을 갖추었고 물건마다 각각 하나의 태극을 갖추었다'고 말했으니, 걸왕과 도척에게서도 태극을 볼 수 있고, 나무와 돌에서도 또한 태극을 볼 수 있다는 것인가?
태극이 만물에 갖추어져 있음을 알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어디에서부터 찾아 들어가야 할 것이며, 태극이 나의 마음에 갖추어지게 하려는 자가 무극(無極)으로 함께 돌아가고자 한다면, 또한 마땅히 어디에서부터 착수해야 되는가? 형체가 있는 것에서 형체가 없는 것을 미루어보고, 쉽게 볼 수 있는 것에서 알기 어려운 것을 공부해가려는 것은 반드시 그 요체가 있을 것이니, 원컨대 제생들의 말을 듣고자 한다.

답 : 조정에서 인재를 취하려고 춘위(春圍)주 22)를 크게 천명하고, 집사선생께서 이에 하문하시며 특별히 무극과 태극의 이치를 들고 선현들의 말이 다른 것을 참고하여 제생들이 의심할 수 있는 논의를 보고자 하였습니다. 저는 귀가 있어도 도를 듣지 못하여 십년 동안 산란하였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여 일실(一室)이 갈팡질팡하였으니, 어찌 두터운 바람에 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도가 있는 것에 나아가 나의 의혹을 푸는 것이 학자의 뜻입니다. 이미 정중한 물음을 받았으니 감히 경솔함을 숨기고 대답하겠습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충막무짐(沖漠無朕)주 23)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소리와 냄새가 없는 것이니, 이(理)가 미묘한 것에 감추어진 것입니다. 두루 흐르고 통하여 감에 볼 수 있는 형상이 있는 것은 기가 만물에 드러난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이(理)는 천지가 아직 갈라지기 이전에 갖추어져서 태극의 체(體)가 성립하게 되고, 기(氣)는 품물(品物, 만물)이 이미 형상화 된 후에 유행하여 태극의 용(用)이 운행하게 되었으니, 심원하고 미묘하여 보기 어려운 것은 태극의 체가 아니겠습니까? 분명히 들어나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태극의 용이 아니겠습니까?
그 체를 말하면 형체가 없어서 알기 어려운 묘(妙)가 있고, 그 용을 말하면 분명하여 알기 쉬운 자취[跡]가 있습니다. 용(用)의 분명히 드러난 것은 알기 쉽고, 체의 미묘한 것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오직 성인만이 형체가 없는 이치를 볼 수 있고, 드러나지 않은 체를 알 수 있습니다.
무릇 천지가 천지가 되는 까닭이나, 인물이 인물이 되는 까닭, 일월이 밝게 되는 까닭, 강수와 한수가 흐르게 되는 까닭을 모두 자세히 깨달아서 묵묵히 계합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덕은 천과 합치하고, 마음은 이치와 하나가 되어서, 형체가 없고 보기 어려운 미묘함이 방촌(方寸, 마음) 가운데에서 밝고 환합니다.
뒷날의 현자들은 이러한 이(理)가 허무와 적멸에 빠질 것을 두려워하셔서, 입언(立言)하여 그 깊은 속을 드러내었고, 이 이가 일물(一物)로 빠질까 두려워하여 글을 지어 그 온축한 것을 발하였습니다. 비록 천만가지 말이 서로 같지 않더라도 이 이치의 미묘한 내용을 밝히지 않음이 없습니다. 진실로 조짐과 근저, 요령을 미루어 밝힌 자가 아니라면 그 어찌 이 일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러하나 도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와서 인심에 갖추어졌으니, 크게는 밖이 없고, 작게는 안이 없이 혼연히 하나의 태극입니다. 쉽사리 볼 수 있는 사물로 인하여 보기 어려운 이치를 궁구하여 신령스런 근원이 미발(未發)의 전에 어둡게 하지 않고, 묘용이 이발(已發)한 뒤에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을, 대저 어찌 마음을 벗어나 달리 구할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묻는 바에 따라 조목조목 대답해보겠습니다.
위대하도다. 태극의 미묘함이여! 막막하고 아득한 가운데에 갖추어져 일용 사물 사이에 나타나니, 실로 음양의 근저(根柢)이며, 조화의 추뉴(樞紐)입니다. 천년 동안 도가 없어지고 성학이 전해지지 않아서 주염계가 〈태극도〉를 그린 것이 이 때문에 지은 것입니다. 깊은 속을 드러내고, 미묘함을 밝힌 것이 손바닥 가리키듯 하였으니, 당세 학자들이 지극한 이치의 소재를 알게 된 것이 마치 잠자는 자를 일깨우는 것과 같이 하였으니, 어찌 천민(天民)중에 선각자가 아닙니까?
'그 양단을 두드린다'주 24)와 '숨김이 없다'주 25)는 것은 부자의 말씀인데, 일찍이 그 뜻을 들어서 안자와 증자에게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명의 이치는 실로 성인이 드물게 말씀하신 것인데, 자공 무리도 오히려 얻어 들었다면 안자와 증자와 같은 아성(亞聖)은 반드시 '예[唯]'나 '일이관지(一以貫之)'나 '기뻐하지 않음이 없을' 때 묵묵히 이해함이 있을 것입니다.
주염계의 〈태극도〉와 〈통서〉가 이미 나오자 두 정씨(程氏)가 뵙고 친절한 가르침을 받았으나 문인들에게 주지 않은 것은 이(理)의 정미함은 갑자기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전(易傳)≫ 한 책에서 자세히 말하였으니, 두 정씨가 태극에 대해서 발명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윽하고 깊은 이치와 높고 미묘한 본체는 초학자에게 갑자기 말할 수 없는 것인데, 회암(晦菴, 주자)이 ≪근사록≫의 첫머리에 편집한 것은 학자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일을 버리고 고원한 일에 힘쓰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표준과 적확함을 기약하는 것으로 삼아 작은 성취에 안주하거나 빠른 효과에 국한되지 않게 하고자 함입니다. 태극의 이치가 비록 만물에 깃들어 있지만, 진실로 덩그러니 있는 한 물건처럼 가리킬 수 있는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암이 '장두물사'라고 말하고 '공허적멸'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엿보아 살필 수 없는 것입니다.
천지가 갈라지기 전에 태극의 체가 이미 갖추어졌고, 천지가 이미 갈라진 뒤에 태극의 용이 이내 행해지니, 이른바 '체'란 이 이(理)일 뿐이고, 이른바 '용'은 이 기(氣)일 뿐입니다. '역에 태극이 있다.[易有太極]'라는 것은 공자의 말이고, '무극이면서 태극이다.[無極而太極]'라는 것은 주자(周子)의 말이니, '있다'라고 한 것은 음양이 변화하는 가운데 저절로 지극한 이치가 있는 것이고, '없다'라고 한 것은 방소(方所)도 없고 정체(定體)도 없어서 형기(形氣)에 구애될 수 없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전성(前聖)과 후성(後聖)의 말에 각각 주장한 바가 있으나 또한 같지 않음이 없습니다. '유' 자를 가지고 '태' 자로 해석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회암의 설이며, '형체가 없으나 이치는 있다'고 한 것 또한 회암의 설입니다. '유극(有極)'이라고 하지 않고 반드시 '태극'이라고 한 것은, 만약 '유극'이라고 하면 반드시 비길 만한 사물이 있게 되니, 이 '극'자는 형체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치가 있다'고 한 것은 지극한 이치가 있어 실로 그 가운데에 붙어 있기에 '허무하여 형상이 없는 것[虛無罔象]'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무극'이라 하고서 또 '태극'이라고 한 것은 바로 지극히 은미하고 지극히 큰 체를 형용하기 위한 것이지, 집 위에 집을 짓는 의론이 아닙니다.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고 고요하여 음을 낳으니, 한 번의 움직임과 한 번의 고요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된다.[動而生陽, 靜而生陰, 一動一靜, 互爲其根.]'는 것이 태극 자연의 오묘함이 아니겠습니까? 만물이 생기기 전에 체가 갖추어졌고, 만물이 이미 생겨서 용이 행해지니, 붙어서 그 공용(功用)을 베푸는 것은 이와 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선천(先天)의 의론을 꺼내 무극의 이전을 설명한 사람은 소강절(邵康節)이니, 그가 이른바 '몸은 천지가 생겨난 뒤에 있으나 마음은 천지가 생기기 전에 있었네.[身在天地後, 心在天地前.]'주 26)라는 것은 대개 태극의 지극히 오묘한 이치가 이미 청탁(淸濁)이 나누어지기 전에 있었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 이치가 통행하는 것으로 말하면 도(道)라 하고, 그 이치가 지극한 것으로 말하면 태극이라 하는데, 장주(莊周)는 이에 도 자를 태극의 위에 더하여 스스로를 높이려고 했으니, 특히 도가 곧 태극이고 태극이 곧 도라는 것을 모른 것입니다. 그 설의 착오는 공격하지 않아도 절로 무너질 것이니, 어찌 소자의 설과 같은지 여부를 논하겠습니까? 천지간에 많고 많은 것이 모두 균등하게 이 이치를 얻었으니, 어질다고 해서 넉넉하거나 어리석다고 해서 인색한 것은 아닙니다. 초목에는 초목의 이치가 있고 금석(金石)에는 금석의 이치가 있으니, 비록 걸척(桀跖)의 포악함과 목석의 하찮은 것이라도 태극의 이치를 똑같이 받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에는 어둡고 밝음이 있고, 품부 받은 것에는 치우침과 온전함이 있으니, 절로 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 태극은 하나의 음양일 뿐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일 뿐이라, 천지 사이에 유행하는 것은 있지 않은 곳이 없고, 그러하지 않은 물건이 없습니다. 방향과 위치를 말할 수 없고, 그림자와 소리를 일컬을 수 없으니, 학자는 이것을 구함에 장차 어떻게 힘을 쓰겠습니까? 대개 또한 이 마음에서 구할 뿐입니다.
적연부동(寂然不動)하여 희로애락이 미발(未發)한 것은 이 마음의 체여서 태극의 묘가 여기에 있습니다. 감이수통(感而遂通)하여 희로애락이 기발(旣發)한 것은 이 마음의 용이어서 태극의 묘가 여기에서 행해집니다. 이발한 것은 형체가 있지만 미발한 것은 형체가 없습니다. 이발한 것은 알 수 있지만 미발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학자는 여기에서 깊이 체인하고 묵묵히 알아야 합니다. 형체가 있는 것으로 인해서 형체가 없는 것을 미루어 가고, 알 수 있는 것으로 인해서 알 수 없는 것을 미루어 간다면, 거의 융회관통(融會貫通)하여 태극의 묘를 구할 수 있을 것이고, 심극(心極) 또한 세워질 것입니다.
대저 이와 같이 한다면 일신(一身)으로써 천지의 운행을 체인하고, 일심(一心)으로써 조화의 근원을 궁구하여 만 가지 선이 다 구비되고 많은 이치가 다 밝아져서 끝없는 오묘함에 통연(洞然)할 것이니, 알기 어렵고 보기 어렵다는 근심을 다시 염려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엮은 글을 장차 마치려고 함에 또한 바칠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미 이 마음으로써 입극(立極)의 근본을 삼고 이 마음의 요체를 밝히는 것이 또한 어찌 학문의 방도에서 벗어나겠습니까? 진실로 궁격(窮格)의 힘을 더하고 성을 밝히는 공부를 다 하여 나의 일심으로 하여금 만 가지 이치의 본연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면, 무극과 태극의 체가 이미 내 마음에 세워지고, 무극과 태극의 용이 일용과 동정 사이에서 유행할 것입니다.
비록 그렇더라도 그것을 선창하지 않으면 누가 화답하겠습니까? '그 극이 있는 곳에 모이고 그 극이 있는 곳으로 돌아올 것이다[會其有極, 歸其有極]'주 27)를 주상전하에게 깊이 바랍니다. 삼가 바라건대 집사께서 올려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삼가 대답합니다.
주석 19)미능재집(未能齋集)
최상중(崔尙重, 1551~1604)의 문집. 최상중의 자는 여후(汝厚)‚ 호는 미능재(未能齋)로, 유희춘(柳希春)의 문인이다. 1576년(선조 9)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589년(선조 22) 증광문과시(增廣文科試)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한 뒤‚ 검열・장령・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602년(선조 35) 사간을 끝으로 관직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權慄)의 종사관으로서 5~6년 동안 그를 보필하였으며‚ 호남을 왕래하면서는 굶주림에 지친 백성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남원의 노봉서원(露峰書院)에 제향되었다.
주석 20)대책(對策)
시정(時政) 또는 경의(經義)에 관한 과거(科擧) 문제의 답안을 말한다.
주석 21)형체를 감춘 사물[藏頭物事]
형체가 드러나지 않는 개념적인 것을 말한다. 원문에서는 '장두(莊頭)'로 쓰여 있다.
주석 22)춘위(春圍)
봄철에 시행하는 과거(科擧)의 시험장으로, 곧 춘등 과시(春等課試)를 말한다.
주석 23)충막무짐(沖漠無朕)
지극히 고요하여 아무런 조짐이 없는 상태로, 본연(本然)의 성(性)을 표현한 것이다. 정이천(程伊川)이 사람의 성(性)에 이(理)가 본래 갖추어져 있음을 말하여 "충막무짐한 가운데 만상(萬象)이 빼곡히 갖추어져 있다."라고 하였다.(≪근사록≫)
주석 24)그 양단을 두드려
처음과 끝을 알려준다는 말. ≪논어≫ 〈자한〉에, 공자가 말하기를 "내가 아는 것이 있느냐? 아는 것이 없다. 무식한 사람이 내게 물을 경우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 하더라도 나는 그 양쪽의 실마리를 따져 빠짐없이 말해 줄 뿐이다.[吾有知乎哉, 無知也。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라고 하였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석 25)숨김이 없다는 것은
≪논어≫ 〈술이〉의 말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제자들아, 내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너희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나는 행동한 일 치고 너희들과 더불어 같이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것이 내 뜻이다[子曰, 二三子, 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丘也.]"라고 하였다.
주석 26)몸은 …… 있었네
소옹의 〈자여음(自餘吟)〉 시에 나오는 시구이다.
주석 27)그 극에 …… 돌아
≪서경≫ 〈홍범(洪範)〉에 나오는 말이다. "편벽됨이 없고 편당함이 없으면 왕의 도가 탕탕(蕩蕩)하며, 편당함이 없고 편벽됨이 없으면 왕의 도가 평평(平平)하며, 상도(常道)에 위배됨이 없고 기울어짐이 없으면 왕의 도가 정직(正直)할 것이니, 그 극(極)에 모이고 그 극에 돌아오리라.[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 無反無側, 王道正直, 會其有極, 歸其有極.]"라고 하였다.
二十八日 丙申
晴。看 ≪未能齋集≫行蹟。

先生諱尙重。 字汝厚。 崔氏系出朔寧。高麗平章事。 瑜價之後。 入本朝領議政寧城府院君。 贈諡文靖公。 諱恒之六世孫。 贈左承旨。 諱穎之子也。先生資禀粹美。 英睿夙成。年十六往從眉岩柳先生希春謫所。 初授 ≪大學≫經一章竝小註。 一日而誦之。眉岩深加歎賞曰。 "昌大崔門者。 必此人也。" 有〈對策〉記之。

策問。天地之間。 有形者易見。 無形者難知。欲知難知之無形。 則當求於易之有形。無形者何地? 而有形者何物歟? 太極一圖。 是聖賢欲使人知其難知者。 而孔子未曾與顔曾語到此義。 何歟? 至周子旣發之後。 而程子亦不以授門人者。 何意歟? 孔子未曾語。 程子不以授。 則似非初學之所可聞。 而朱子特編之於 ≪近思錄≫初頭者。 抑何意歟? 旣曰 '萬物各具一太極'。 則似當於有形處可見。 而先儒又謂 '太極是莊頭物事。 無方所無影響'。 則太極之妙。 終不可窺測歟? 未有天地萬物之前。 此極於何所寓? 旣有天地萬物之後。 此極於何可見歟? 孔子曰 '易有太極'。 周子則曰 '無極而太極'。 於易則謂之有。 於太極則謂之無。聖賢之異其說。 何歟? 朱子曰 '將有字訓太字不得'。 而又曰 '無極而太極。 只是說無形而有理者'。 旣曰 '有理'。 則何以云不得。 將有字作訓歟? 如以爲無。 則名之曰 太極者。 何物歟? 所以能動靜生陰陽者。 亦何物歟? 所謂'生於萬物未生之前。 具於萬物旣生之後'者。 抑何所憑着而能生以具歟? 邵翁說到無極之前。 則無極之前。 是何地頭。 而復有何物可說者歟? 莊生加一層於無極之上。 而先儒以爲與邵翁說到無極之前不同者。 何見歟? 先儒曰 '人人各具太極。 物物各具一太極'。 則於桀跖亦可見太極。 於木石亦可見太極歟? 欲知太極之具於萬物者。 當於何處尋去。 欲使太極具於吾心者。 同歸於無極。 則亦當於何地下手歟? 推有形於無形。 作易見於難知者。 必有其要。 願聞諸生之說焉。

對。聖朝取人。 春圍大闡。 執事先生。 爰下辱問。 特擧無極太極之理。 參以先賢說話之不同。 欲觀諸生能疑之論。愚也。 有耳不聞道。 十年憒憒。 有目不見睫。 一室倀倀。 何足以答厚望? 然就有道解吾惑。 學者志也。旣承鄭重之問。 敢隱率爾之對。竊謂沖漠無朕。 無聲臭之可言者。 理之莊於微妙者也。周流通達。 有形象之可見者。 氣之著於萬物者也。是以理具於玄黃未判之前。 而太極之體有以立。 氣流於品物已形之後。 而太極之用有以行。 淵微而難見者。 非太極之體乎? 昭著而易見者。 非太極之用乎? 言其體。 則有無形難知之妙。 語其用。 則有昭然易知之跡。用之昭著者易知。 而體之微妙者難知。 故惟聖人。 能見無形之理。 而能知不顯之體。凡天地所以爲天地。 人物所以爲人物。 日用之所以明。 江漢之所以流者。 莫不融會。 而黙契之。 故德與天合。 心與理一。 無形難見之妙。 洞然於方寸之中矣。後之賢者。 懼斯理之淪於虛寂。 則立言以闡其幽。 恐此理之滯於一物。 則著書以發其蘊。雖千言萬語之不相同 而無非發陽此理之微奧。苟非推明兆朕根極要領者。 其何以與於此哉? 雖然。 道之大原。 出於天。 而具於人心。 其大無外。 其小無內。 混然一太極也。因易見之物。 而究難見之理。 使靈源不昧於未發之前。 妙用不差於已發之後者。 夫豈外心而他求哉? 請因明問所及。 而條復之。大哉。 太極之妙也。具於茫乎杳爾之中。 而著於日用事物之間。 則實陰陽之根柢。 造化之樞杻也。千載道喪。 聖學不傳。 濂溪一圖。 爲是而作。闡奧明微。 如指諸掌。 當世學者。 得知至理之所在。 如呼寐者。 而使之醒。 豈非天民之先覺乎? 叩兩端而無隱者。 夫子之言也。 而未嘗擧其義。 說與顔曾者。 性命之理。 固聖人之罕言。 而子貢之徒。 猶得以聞之。 則以顔曾之亞聖。 必有默會於唯一貫無不悅之時矣。濂溪之圖書旣出。 而兩程之面承親切。 然而不授門人者。 其意以爲理之精微。 未可遽以示人。 而於易傳一書。 言之其詳。 則二程之於太極。 不可謂不發矣。幽深之理。 高妙之體。 不可向初學驟語。 而晦菴 ≪近思錄≫。 編於初頭者。 非謂學者捨近功務高遠也。欲以此爲標準期的之地。 而使不安於小成。 局於近效也。太極之理。 雖寓於萬物。 而固非塊然一物有形有衆之可指。 故晦菴謂之'藏頭物事'。 非謂'空虛寂滅'。 人不得以窺測也。在天地未剖未坼之前。 太極之體已具。 及天地已剖已坼之後。 而太極之用乃行。 所謂體者。 此理而已。 所謂用者。 此氣而已。'易有太極'者。 孔子之言。 而'無極而太極'者。 周子之說也。 謂之有者。 以其陰陽變易之中。 自有極至之理也。 謂之無者。 以其無方所無定體。 不可拘於形氣而論也。前聖後聖之言。 各有所主。 而亦無不同矣。 將有字訓太字不得者。 晦菴之說也。 無形有理者。 亦晦菴之說也。不謂之有極而必謂之太極者。 若曰有極。 則有一定可擬之物。 非此極無形體也。其曰有理者。 有極至之理。 實寓於其中。 不可以虛無罔象視之也。旣曰無極。 又曰太極者。 乃所以形容至隱至大之體。 非是疊床架屋之論也。'動而生陽。 靜而生陰。 一動一靜。 互爲其根'者。 非太極自然之妙乎? 萬物未生而體具焉。 萬物旣生而用行焉。 其所以憑着而施其功用者。 不過曰理與氣而已。發先天之論。 而說無極之前者。 康節邵子也。 其所謂'身在天地後。 心在天地前'者。 蓋言太極至妙之理。 已在於淸濁未分之前矣。以其理通行而言則曰道。 以其理之極至而言則曰太極。 而莊周乃欲加道字於太極之上以自高。 殊不知道卽太極。 太極卽道。其說之錯誤。 不攻自破矣。 豈可與邵子之說。 論其同不同哉? 天地間林林總總者。 莫不均得此理。 則不以賢而豊。 不以愚而嗇。草木有草木之理。 金石有金石之理。 則雖桀跖之暴。 木石之微。 太極之理。 無不同受。 而氣有昏明。 稟有偏全。 則自不得不異矣。嗚呼。 太極一陰陽而已。 陰陽一太極。 而流行天地間者。 無乎不在。 無物不然。 無方位之可言。 無影響之可稱。 學者求之。 將何以爲力哉? 亦求諸此心而已。寂然不動。 喜怒哀樂之未發者。 此心之體。 而太極之妙。 於是乎在也。感而遂通。 喜怒哀樂之旣發者。 此心之用而太極之妙。 於是乎行矣。已發者有形。 而未發者無形也。已發者可知。 而未發者不可知也。學者於此深體而默識之。因其有形。 以推其無形。 因其可知。 以推其不可知。 則庶幾融會貫通。 太極之妙。 可求而心極亦立矣。夫如是。 則以一身而體天地之運。 以一心而窮造化之原。 萬善咸備。 衆理畢明。 洞然於無涯之妙。 而難知難見之患。 不復憂矣。篇之將終又有獻焉。愚旣以此心爲立極之本。 而明此心之要。 又豈外於學問之道哉? 苟能加窮格之力。 盡明誠之功。 使吾一心昭然萬理之本原。 則無極太極之體。 旣立吾心而無極太極之用。 流行日用動靜之間矣。雖然。 不有倡之。 孰能和之? '會其有極。 歸其有極'。 深有望於主上殿下。 伏惟執事進而敎之謹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