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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15년(을묘) / 9월(九日)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04.0007.TXT.0019
19일(신묘)
맑음. 광주(光州)의 신만식(申萬湜)이 왔는데, 호가 석포(石圃)로, 새로 지은 초당(草堂)의 주인이라고 한다.
≪도산급문제현록(陶山及門諸賢錄)≫주 30)을 보았다.
김융(金隆)은 자(字)가 도성(道盛)이고, 호(號)는 물암(勿巖)이며, 함창인(咸昌人)인데,〈태극도설(太極圖說)〉의 '오행(五行)은 하나의 음양(陰陽)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太極)이다.'에 대하여 물었다. (퇴계)선생이 말하기를, "오행은 곧 음양이 한 것이고, 음양은 태극이 한 것을 말한 것이지, 음양이 하나의 태극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박광전(朴光前)주 31)은 호(號)가 죽천(竹川)고, 본관은 진원(珎原)이다. 8세 때 부모님의 명령으로 하나의 연구(聯句)를 지었다. 즉 "도(道)는 하늘로부터 명한 것이니 어찌 인위로 하는 것이랴.[道自天命豈人爲] 한 번 공자의 도를 크게 이루리라.[爲一大成孔子道]"라는 내용이다. 병인년 겨울에 도산선생에게 집지하였는데 선생은 전별할 때 ≪주자절요≫ 8책을 주었다. 또 절구(絶句) 5수를 주셨는데, 그 하나에 이르기를,

일월의 찬 시냇물에도 뜻은 더욱 굳세어지니,
돌아가리라는 이 뜻을 바꿀 순 없구나.
다만 달콤한 복숭아를 버리고 보낼 수 없나니,주 32)
보배로운 밝은 구슬[明珠]주 33)이 다만 연못에 있다네.

라고 하였다.
주석 30)도산급문제현록(陶山及門諸賢錄)
이황(李滉)과 그의 문인들에 대한 사적을 모아 엮은 책. 이 책은 원래 권두경(權斗經)이 ≪계문제자록(溪門諸子錄)≫이라는 제명으로 이황의 문인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엮은 바 있었으나 간행되지 못하다가, 권두경의 후손 수연(守淵)・수항(守恒) 등이 자료를 수집하고, 뒤에 이야순(李野淳)이 다시 자료를 추가하여 총 309인에 대한 사적을 수록하여 간행한 것이다. 간기(刊記)는 없으나 도산서원(陶山書院)에서 19세기 중엽에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석 31)박광전(朴光前, 1526~1597)
자는 현재(顯哉), 호는 죽천(竹川), 본관은 진원(珍原)이다. 아버지는 진사 박이의(朴而誼)이며, 어머니는 습득 최명기(崔命夔)의 딸이다. 보성출신으로,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1568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유희춘(柳希春)이 감사(監司)였을 때 천거되어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이 되었고, 다시 헌릉참봉(獻陵參奉)으로 옮겼으나 곧 그만두었다. 1581년 왕자의 사부(師傅)가 되었고, 함열(咸悅)·회덕(懷德)의 현감을 역임하였으나 상관의 뜻을 거슬려 파직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계영(任啓英)·김익복(金益福)·문위세(文緯世) 등과 보성(寶城)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597년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 적이 호남을 침범하자, 전 판관(判官) 송홍렬(宋弘烈), 생원 박사길(朴士吉) 등에게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고 의병장이 되었다. 동복(同福)에서 적을 크게 무찔렀으나 병이 악화되어 죽었다. 좌승지에 추증되고 보성의 용산서원(龍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주석 32)달콤한 복숭아
버리지 말아야 할 좋은 것을 말함. ≪주자어류≫ 권118 〈주훈문인(朱訓門人)〉에, 정자상(鄭子上)이 ≪좌전(左傳)≫의 몇 가지 일에 대해 묻자, 주희가 "수년 동안 그대를 보지 못하여 장차 훌륭한 질문을 하여 서로 계발되리라 생각하였는데, 도리어 이러한 긴요하지 않은 것을 물으니,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사람이 만약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 사서(四書)에서 궁구하여 통철할 수 있다면 경전(經傳) 가운데 곡절이 극심한 큰일도 그 이치로 미루어 나가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는데, 더구나 이러한 지엽적인 일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지금 이와 같은 것은 '단맛 나는 복숭아를 버리고 산 근처의 신맛 나는 배를 따는 것이다.'라고 이를 수 있다.[數年不見公, 將謂有異問相發明, 却問這般不緊要者, 何益? 人若能於大學語孟中庸四書窮究得通透, 則經傳中折莫甚大事, 以其理推之, 無有不曉者. 況此末事, 今若此, 可謂是颺了甜桃樹, 沿山摘醋梨也.]"라고 하였다.
주석 33)명주(明珠)
고운 빛이 나는 아름다운 구슬. 방합(蚌蛤) 속에서 생긴 진주(眞珠). 여기서는 훌륭한 인물을 가리킨다.
十九日 辛卯
陽。光州申萬湜來。 号石圃。 新草堂主人云。看 ≪陶山及門諸賢錄≫。金隆。 字道盛。 号勿巖。 咸昌人。問。 "〈太極圖說〉五行一陰陽。 陰陽一太極也。" 先生曰。 "言五行卽陰陽之所爲。 陰陽乃太極之所爲也。 非謂陰陽一太極也。" 朴光前。 號竹川。 珎原人。八歲以親命製一聯。"道自天命豈人爲。 爲一大成孔子道。" 丙寅冬贄見于陶山先生。 先生以 ≪朱子節要≫八冊贐之。又贈五絶詩。 其一曰。 "一月寒溪意更堅。 歸歟此意莫留遷。 但能不遣甜桃颺。 無價明珠只在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