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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15년(을묘) / 8월(八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04.0006.TXT.0020
22일(갑자)
맑음. 석양에 두 노인이 왔다. 한명은 정해건(鄭海健)으로, 문청공(文淸公, 정철(鄭澈))의 10대손이다. 옥과 월평(月坪)에 거주하며, 자(字)가 사강(士綱)이다. 다른 한 명은 심계택(沈繼澤)주 25)으로, 망세정(忘世亭) -양주에 있으며, 점필재와 종유하였다.- 휘는 선(璿)주 26) -단종(端宗)의 명신으로 황해・경기 양도의 관찰사, 집현전 대제학을 역임하였고, 보국숭록대부 영돈령을 추증 받았다.- 의 15대손이다. 옥과의 택촌(擇村)주 27)에 거주하며, 자는 여광(汝光)이고, 호는 석전(石田)이다.
주석 25)심계택(沈繼澤)
자는 여광(汝光), 호는 석전(石田),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대제학 망세정(忘世亭) 선(璿)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노헌(魯憲)이다. 소송(小松) 정재건(鄭在健), 녹실(綠室) 정해만(鄭海晩), 참봉 황석(黃{王+奭}), 잠계(潛溪) 조장섭(趙章燮), 매천(梅泉) 황현(黃玹) 등과 서로 종유했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이 〈석전기(石田記)〉를 지었다. 시문 4권이 있다.
주석 26)심선(沈璿)
자는 윤부(潤夫), 호는 망세정(忘世亭),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예조참의,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였고, 중추원부사를 지낼 때 정조사(正朝使)로 임명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6년에는 황해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하였다. 이후 5위의 부호군을 지내던 중 사망하였고 사후에 돈지돈녕부사로 추증되었다. 남양주시에 정자를 지어놓고 산수와 음율을 즐겼는데, 세상사를 다 잊었다는 뜻으로 망세정(忘世亭)이라 이름 붙였다. 뒤에 장릉(莊陵) 조사단(朝士壇)과 옥과에 있는 구암사(龜巖祠)에 배향되었다.
주석 27)택촌
곡성군 입면 금산리 택촌마을에 해당된다.
二十二日 甲子
陽。夕陽二老人來。 一鄭海健。 文淸十代孫。居玉果月坪。 字士綱。一沈繼澤。 忘世亭【在楊州。 佔畢齋從遊】諱璿【端廟名臣。 黃海京畿兩道觀察。 集賢殿大提學。 贈輔國崇祿大夫領敦寧】十五代孫也。居玉果擇村。 字汝光。 號石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