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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암일기(棲巖日記)
- 1915년(을묘)
- 8월(八月)
- 22일(갑자)(二十二日 甲子)
서암일기(棲巖日記) / 1915년(을묘) / 8월(八月)
22일(갑자)
맑음. 석양에 두 노인이 왔다. 한명은 정해건(鄭海健)으로, 문청공(文淸公, 정철(鄭澈))의 10대손이다. 옥과 월평(月坪)에 거주하며, 자(字)가 사강(士綱)이다. 다른 한 명은 심계택(沈繼澤)주 25)으로, 망세정(忘世亭) -양주에 있으며, 점필재와 종유하였다.- 휘는 선(璿)주 26) -단종(端宗)의 명신으로 황해・경기 양도의 관찰사, 집현전 대제학을 역임하였고, 보국숭록대부 영돈령을 추증 받았다.- 의 15대손이다. 옥과의 택촌(擇村)주 27)에 거주하며, 자는 여광(汝光)이고, 호는 석전(石田)이다.
- 주석 25)심계택(沈繼澤)
- 자는 여광(汝光), 호는 석전(石田),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대제학 망세정(忘世亭) 선(璿)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노헌(魯憲)이다. 소송(小松) 정재건(鄭在健), 녹실(綠室) 정해만(鄭海晩), 참봉 황석(黃{王+奭}), 잠계(潛溪) 조장섭(趙章燮), 매천(梅泉) 황현(黃玹) 등과 서로 종유했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이 〈석전기(石田記)〉를 지었다. 시문 4권이 있다.
- 주석 26)심선(沈璿)
- 자는 윤부(潤夫), 호는 망세정(忘世亭),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예조참의,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였고, 중추원부사를 지낼 때 정조사(正朝使)로 임명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6년에는 황해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하였다. 이후 5위의 부호군을 지내던 중 사망하였고 사후에 돈지돈녕부사로 추증되었다. 남양주시에 정자를 지어놓고 산수와 음율을 즐겼는데, 세상사를 다 잊었다는 뜻으로 망세정(忘世亭)이라 이름 붙였다. 뒤에 장릉(莊陵) 조사단(朝士壇)과 옥과에 있는 구암사(龜巖祠)에 배향되었다.
- 주석 27)택촌
- 곡성군 입면 금산리 택촌마을에 해당된다.
二十二日 甲子
陽。夕陽二老人來。 一鄭海健。 文淸十代孫。居玉果月坪。 字士綱。一沈繼澤。 忘世亭【在楊州。 佔畢齋從遊】諱璿【端廟名臣。 黃海京畿兩道觀察。 集賢殿大提學。 贈輔國崇祿大夫領敦寧】十五代孫也。居玉果擇村。 字汝光。 號石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