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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14년(갑인) / 5월(五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03.0005.TXT.0025
25일(을해)
맑음. 옥과(玉果) 목동(木洞)에 사는 정해필(鄭海弼)이 와서 말하길, "지금에 이르러 향교의 교궁(校宮)과 교토(校土)를 모두 일본에게 빼앗기겠다고 생각하여 그 일로 서울에 갔는데, 태극종교(太極宗敎)주 97)가 경성 서부 적선방(積善坊) 월궁동(月宮洞)주 98)에 있다는 것을 듣고, 가서 보니 주장자(主張者)는 여영조(呂永祚)주 99)였다. 통문을 꺼내 보여주었는데, 통문일자는 곧 공자 탄강 2461년 경술년(1910)이었다. 이어서 교사로 오도록 권하면서, 제유(諸儒)의 이름도 받아오기를 권하였다. 또한 공자교(孔子敎)라고 부르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주석 97)태극종교(太極宗敎)
1909년 을사오적 암살 계획 등에 참여했던 여영조와 윤충하, 권상익 등이 유교 문화 수호 및 국권 회복을 모색하기 위해 만든 단체이다. 정식 명칭은 '태극교종교회' 혹은 '태극교종'이다.
주석 98)월궁동(月宮洞)
서울특별시 종로구 적선동에 있던 마을이다.
주석 99)여영조(呂永祚, 1862~?)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일재(一齋)이다. 일제의 을미사변과 을미개혁에 맞서 1895년 12월 통문을 돌리고 의병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1904년 허위·여중룡 등이 조직한 충의사(忠義社)에 가담하여 배일 언론 투쟁을 적극 전개하였다. 1909년 여영조는 윤충하·권상익 등과 기존의 개동교(開東敎)를 태극교로 확대 개편하였다.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여영조는 독립의군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二十五日 乙亥
陽。玉果木洞鄭海弼來云。 "窃想至今。 鄕校校宮與校土。 皆見奪於日本。 事上京。 聞有太極宗敎在京城西部積善坊月宮洞。 往觀之。 主張者呂永祚。出示通文。 通文日字。 乃孔子誕降二千四百六十一年。 庚戌也。因爲勸敎師來。 勸諸儒納名。 亦云孔子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