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일기
  • 서암일기(棲巖日記)
  • 1914년(갑인)
  • 4월(四月)
  • 10일(경인)(十日 庚寅)

서암일기(棲巖日記) / 1914년(갑인) / 4월(四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03.0004.TXT.0010
10일(경인)
맑음. 유희적(柳羲迪)과 함께 ≪절곡집(節谷集)≫주 18)을 봉심(奉審)했다.
공의 휘(諱)는 시관(時觀)이고, 자(字)는 장숙(莊叔)이다. 김씨의 계(系)는 태사(太師) 휘 선평(宣平)으로부터 나왔는데, 고려 태조를 도와 공신으로 책훈되었으며 안동이라는 본관(本貫)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조선조에 이르러 높은 관직을 이은 사람으로는 휘가 극효(克孝), 호(號)가 사미당(四美堂)이라는 분이 있으니, 벼슬은 돈령(敦寧) 도정(都正)주 19)을 역임했고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이분에게서 선원선생(仙源先生)이 태어나시니, 휘는 상용(尙容)으로, 인조 정축(1637)년에 원임(原任) 우의정으로서 강화도에서 순절하셨다. 시호는 문충(文忠)이고 정려가 내려졌으니, 이 분이 공의 고조부이시다.

잡저(雜著)
〈오륜설(五倫說)〉주 20)
사람이 만물과 다른 까닭은 오륜(五倫)이 있기 때문이다. 오륜이란 무엇인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한 것이 이것이다. 부자는 골육지친으로 은애(恩愛)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친(親)'자로 의정한 것이다. 이른바 '친(親)'이라는 것은 지자지효(止慈止孝)의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군신(君臣)은 도를 행하는 것을 위주로 하니, 마땅함을 재량하여 거취하는 뜻이 있기 때문에 '의(義)'자로 의정한 것이다. 이른바 '의'라는 것은 진퇴구속(進退久速)주 21)의 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부부(夫婦)는 본래 음양의 분별이 있는데 그 하나로 섞여서 분별이 없을까 두렵기 때문에 '별(別)'자로 의정한 것이다. 이른바 '유별(有別)'이라는 것은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있고, 옷걸이를 같이 쓰지 않으며, 욕실을 같이 쓰지 않는 것의 종류가 이것이다. 장유(長幼)는 세상에 태어나는 선후로써 거스르지 못할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서(序)'자로써 의정한 것이다. 이른바 '유서(有序)'라는 것은 음식과 기거에 있어서 반드시 장자(長者) 뒤에 하는 류가 이것이다. 붕우(朋友)는 서로 친근함이 있는 사람이라, 너무 친압하여 성실함을 조금 함부로 할까 두렵기 때문에 '신(信)'자로 의정한 것이다. 이른바 '유신(有信)'이라는 것은 오래된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승낙한 일을 묵혀두지 않는 것주 22)이 이것이다.
그러나 이 다섯 글자를 의정(擬定)한 까닭은 어찌 구차히 안배해서 그렇게 했겠는가? 모두 천리의 자연에 근본한 것이다. 그러나 또 논하건대, 오성(五性)은 마음에 근본하지만 접물에 이르면 이 오륜이 있게 된다. 유친(有親)은 곧 인(仁)의 용(用)이고, 유의(有義)는 곧 의(義)의 용이며, 유별(有別)은 곧 지(知)의 용이고, 유서(有序)는 곧 예(禮)의 용이며, 유신(有信)은 곧 신(信)의 용이다. 부자(父子)가 오성을 겸하지 않음이 없으나 인(仁)을 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인에 배속했다. 군신이 오성을 겸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의(義)를 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의에 배속했다. 부부, 장유, 붕우도 모두 다 그렇지 않음이 없다.
만약 '부자(父子)는 인(仁)만 있어서 의·예·지·신을 겸할 수 없고, 군신은 의(義)만 있어서 인·예·지·신을 겸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오륜을 알지 못한 것이다. 상품지인(上品之人)은 힘쓰지 않아도 이에 능하고, 중품지인(中品之人)은 노력한 후에 이에 능하고, 하품지인(下品之人)은 힘써야 할 까닭을 알지 못한다. 노력하면 성현이고, 노력하지 않으면 금수이니, 성현이 되고 금수가 되는 구분이 단지 노력하고 노력하지 않는 사이에 있다.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세도(世道)가 퇴폐해지고 유풍(儒風)이 크게 변하여 선비 된 자가 다만 사장(詞章)에 힘쓸 줄만 알고, 경전에 대해 공부할 줄 모른다. 혹 경전을 읽은 자도 또한 문자를 표절(剽竊文字)하여 과거 공부하는 용도로 삼는 데에만 뜻이 있고, 질문할 만한 은미하고 심오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나의 친구 이원경(李遠卿)의 맏아들이 초츤(齠齔)주 23)의 나이에 ≪소학≫책을 읽으며 문득 오륜의 뜻을 묻는데, 자질이 아름다운 자가 아니라면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군자의 배움은 한갓 강문(講問)을 숭상해서만은 안 되고 반드시 실천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정자가 말하기를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 독행(篤行) 다섯 가지에서 그 하나라도 폐하면 배움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지금 배움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인해 성찰해서 극기치인의 공부에 나간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이 글을 써서 주며, 나의 구구한 희망의 정성을 바친다.

일찍이 포음선생(圃陰先生)주 24)에게 "사람과 사물이 품수(稟受) 받은 이후에는 청탁(淸濁)과 편정(偏正)을 논하지 않고 모두 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아뢰었더니, 선생이 답하기를 "이 말 또한 그럴 듯하다. 그러나 장자(張子)주 25)의 본설로써 본다면 오로지 기질의 편박(偏駁)된 것만을 '기질지성'이라 일컫는다. 그러니 기질이 통정(通正)한 것까지 기질지성이라 일컫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라고 하였다.주 26) -이 단락은 의심되는 바가 있으므로 기록한다.-

〈농암선생(農巖先生)주 27)에게 올리는 글〉주 28)
(문)이른바 물격지지(物格知至)라는 것은 곧 일분(一分)의 물사(物事)를 궁구하면 곧 내가 일분의 지식을 얻고, 십분(十分)의 물사를 궁구하면 곧 내가 십분의 지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궁리(窮理)가 이미 많으면 내가 아는 바는 자연히 명확하지 않는 바가 없게 됩니다.
(답)물격(物格)주 29)은 영쇄(零碎)한 설로, 일물(一物)을 궁구하더라도 진실로 물을 격했다고 이를 수 있다. 지지(知至)는 총괄하는 말로, 일물을 이미 궁구했다고 해서 곧바로 지지라고 말할 수 없다. 오직 오래 축적하고 관통한 이후에 지지라고 이를만 하다. -이 문장은 의심되는 바가 있으므로 기록한다.-
주석 18)절곡집(節谷集)
김시관(金時觀, 1677~1740)의 문집으로 1865년(고종 2)에 간행됨. 김시관은 김창협(金昌協), 김창흡(金昌翕), 김창집(金昌緝)의 문인으로서, 이재(李縡), 채지홍(蔡之洪), 임성주(任聖周), 김원행(金元行) 등과 교유하였다.
주석 19)도정(都正)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돈령부(敦寧府)・훈련원(訓練院)의 정3품(正三品) 벼슬. 당상관(堂上官)이다.
주석 20)오륜설
≪절곡집(節谷集)≫에 있다.
주석 21)진퇴구속(進退久速)
사지구속(仕止久速), 행지구속(行止久速), 가부구속(可否久速) 등과 같은 말로, 벼슬할 때 시의(時宜)에 맞게 처신함을 가리킨다.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며, 오래 머무를 만하면 오래 머물고 빨리 떠날 만하면 빨리 떠나신 분은 공자이시다.[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孔子也.]"라고 하였다.
주석 22)승낙한 …… 않는 것
≪논어≫ 〈안연(顔淵)〉에 "자로(子路)는 승낙한 일을 묵혀두지 않았다.[子路無宿諾]"라고 하였다.
주석 23)초츤(齠齔)
7~8세의 나이를 말함.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츤(齔)이란 '이를 가는 것'이다. 남아는 8개월이면 이가 나서 8세에 이를 갈, 여아는 7개월이면 이가 나서 7세에 이를 간다."라고 하였다.
주석 24)포음선생(圃陰先生)
김창집(金昌緝, 1662~1713)을 말한다. 자는 경명(敬明), 호는 포음(圃陰)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왕자사부(王子師傅)와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제자로는 유척기(兪拓基) 등이 있고 저서로는 ≪징회록(澄懷錄)≫ 1권과 ≪포음집(圃陰集)≫ 6권이 있다.
주석 25)장자(張子)
장재(張載, 1020~1077)를 말한다. 장재는 봉상(鳳翔) 미현(郿縣) 횡거진(橫渠鎮) 사람으로, 자는 자후(子厚), 호는 횡거선생(橫渠先生)이며, 시호는 명공(明公)이다. 송나라 이학(理學)을 창시한 오현(五賢) 가운데 한 사람이다. 관중(關中)에서 강학했기 때문에 그의 학문을 관학(關學)이라 부른다. 저서에 ≪정몽(正蒙)≫과 ≪횡거역설(橫渠易說)≫, ≪경학이굴(經學理窟)≫ 등이 있다.
주석 26)
위 글은 ≪절곡집(節谷集)≫권3 잡저의 〈잡지(雜識)〉 속에 들어있는 문장의 한 단락이다.
주석 27)농암선생(農巖先生)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을 말한다.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저서로는 ≪농암집(農巖集)≫・≪주자대전차의문목(朱子大全箚疑問目)≫・≪논어상설(論語詳說)≫ 등이 있다. 문장에 능하고 글씨도 잘 써서 〈문정공 이단상비(文貞公李端相碑)〉・〈감사 이만웅비(監司李萬雄碑)〉・〈김숭겸표(金崇謙表)〉 등의 작품을 남겼다.
주석 28)
위 글은 ≪절곡집(節谷集)≫권2 서(書)의 〈상농암선생서(上農巖先生書)〉 속에 들어있는 문장의 한 단락으로서, 절곡이 묻고, 농암선생이 답한 글이다.
주석 29)물격(物格)
주자는 물격을 해석하기를 '사물의 이가 각기 그 극처에 나아가 남김이 없는 것을 이른다.[物理之極處無不到]'라고 하였다.
十日 庚寅
陽。與柳羲迪奉審 ≪節谷集≫。
公諱時觀。 字莊叔。金氏系出。 太師諱宣平。 佐麗祖策勳。 籍安東始此。至我祖襲珪組。 有諱克孝號四美堂。 宦敦寧都正。 贈議政府領議政。是生仙源先生。 諱尙容。 仁廟丁丑以原任右議政。 殉節江都。諡文忠旌閭。 寔公高祖也。

雜著
五倫說。
人之所以異於萬物者。 以其有五倫也。五倫者。 何也。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是也。父子骨肉之親。 以恩愛爲主。 故擬以'親'字。所謂'親'者。 不外乎止慈止孝之事矣。君臣以行道爲主。 而有裁宜去就之義。 故擬以'義'字。所謂'義'者。 不外乎進退久速之道矣。夫婦本有陰陽之分。 恐其一於混而無分。 故擬以'別'字。所謂'有別'者。 男左女右。 不同椸架。 不共湢浴之類。 是也。長幼則以生世之先後。 有不可犯之分。 故擬以'序'字。所謂'有序'者。 如飮食起居。 必後長者之類。 是也。朋友有相親暱者也。 恐其狎侮少誠實。 故擬以'信'字。所謂'有信'者。 不忘久要。 無宿諾之類。 是也。然其所以擬此五字者。 又豈苟然安排而爲之? 皆本於天理之自然也。抑又論之。 五性根於心。 而至其接於物。 則有此五倫。有親卽仁之用也。 有義卽義之用也。 有別卽智之用也。 有序卽禮之用也。 有信卽信之用也。父子非不兼五性。 而仁爲之重。 故屬之仁。君臣非不兼五性。 而義爲之重。 故屬之義。夫婦長幼朋友。 莫不皆然。如曰'父子但有仁而不得兼乎義禮知信。 君臣但有義而不得兼乎仁禮智信'。 則是不知五倫者也。上品之人。 不勉而能此。 中品之人。 勉而後能此。 下品之人。 不知所以勉之。勉之則聖賢。 不勉則禽獸。作聖爲獸之分。 只在於勉不勉之間。 豈不可畏也哉? 世道頹廢。 儒風大變。 爲士者。 但知用力於詞章。 而不知加功於經傳。其或讀經傳者。 又志在於剽竊文字以爲擧業之用。 而不知微奧之可問。 而今吾友李遠卿之胤子。 以齠齔之齡。 讀小學書。 而輒問五倫之義。 非資質之美。 能如是乎? 然君子之學。 不徒講問之爲尙。 必以實踐爲貴。故程子曰。 "博學審問愼思明辨篤行五者。 廢其一。 非學也"。今因好學之心。 而進之省察克治之功。 則豈不尤爲嘉美也哉? 書此以贈。 以效區區。 希望之忱。

嘗稟于圃陰先生曰。 "人物稟受以後。 勿論淸濁偏正。 皆可謂之氣質之性。" 先生答曰。 "此言亦似矣。 然以張子本說觀之。 專以氣質之偏駁者。 謂之氣質之性。然則氣質之通正者。 似不可謂氣質之性。" 【右一段有疑故記之。】

書上農巖先生。
所謂物格知至。 乃謂窮得一分物事。 便致得吾一分知識。 窮得十分物事。 便致得吾十分知識。窮理旣多。 吾之所知。 自然無所不明矣。
答。物格是零碎底說。 窮得一物。 固可謂物格矣。知至者。 總包底說。 不可以一物旣格。 而旋謂之知至。除是積久貫通之後。 乃可謂知至耳。【右一段有疑故記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