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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13년(계축) / 8월(八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02.0008.TXT.0016
16일(경자)
맑음. 성묘를 갔다가 날이 저물어서 집에 돌아왔다. 객지생활을 하고 있는 홍익후(洪翊厚) 덕인(德仁)주 67)을 만나 손우당(遜愚堂)주 68)의 행실에 대해 들었다.
"대명천지에 집 없는 나그네요, 태백산중에 머리칼 있는 중이로구나."라는 구절을 두곡(斗谷, 홍우정)주 69)에게 주었으며주 70), 동춘선생(同春先生, 송준길)주 71)은 "태백산중에 세상을 피한 선비요, 대명천지에 정절 지키는 사람이로다."라는 구절을 지어 공에게 주었다고 한다.
주석 67)홍익후(洪翊厚) 덕인(德仁)
홍익후는 이름이고, 덕인은 그의 자이다. 본 일기에서는 이름 뒤에 자를 붙였다.
주석 68)손우당(遜愚堂)
홍석(洪錫, 1604~1680)을 말함. 자는 공서(公敍), 호는 손우당, 본관은 남양이다. 잠은(潛隱) 강흡(姜恰), 각금당(覺今堂) 심장세(沈長世), 포옹(抱翁) 정양(鄭瀁), 두곡(杜谷) 홍우정(洪宇定) 등과 함께 태백오현 중의 한 사람이다. 병자난 이후 봉화마을에 들어와 살았다.
주석 69)두곡(斗谷)
홍우정(洪宇定)을 말함. 자는 정이(靜而),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병진년(1616)에 진사에 입격하고, 계유년(1633)에 사재감 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다. 병자호란 이후 북쪽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어 문수산(文殊山)아래 두곡천(杜谷泉) 곁에 작은 암자를 짓고서 옥류암(玉溜庵)이라는 편액을 걸고, 이로 말미암아 '두곡기인(杜谷畸人)'이라고 자호하였다.
주석 70)대명천지에 …… 주었으며
김매순(金邁淳)의 ≪대산집≫ 〈두곡홍공행장(杜谷洪公行狀)〉에는 이 시구를 두곡이 지었다고 나온다.
주석 71)동춘선생(同春先生)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을 말함.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아버지는 영천군수를 지낸 송이창(宋爾昌)이다.
十六日 庚子
陽。作省墓之行。 日夕還巢。遇客居洪翊厚德仁。 聞遜愚堂行實。 '大明天地無家客。 太白山中有髮僧'之句。 贈斗谷。 同春先生。 以'太白山中遯世士。 大明天地守貞人'之句。 贈公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