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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암일기(棲巖日記)
- 1913년(계축)
- 8월(八月)
- 16일(경자)(十六日 庚子)
서암일기(棲巖日記) / 1913년(계축) / 8월(八月)
16일(경자)
맑음. 성묘를 갔다가 날이 저물어서 집에 돌아왔다. 객지생활을 하고 있는 홍익후(洪翊厚) 덕인(德仁)주 67)을 만나 손우당(遜愚堂)주 68)의 행실에 대해 들었다.
"대명천지에 집 없는 나그네요, 태백산중에 머리칼 있는 중이로구나."라는 구절을 두곡(斗谷, 홍우정)주 69)에게 주었으며주 70), 동춘선생(同春先生, 송준길)주 71)은 "태백산중에 세상을 피한 선비요, 대명천지에 정절 지키는 사람이로다."라는 구절을 지어 공에게 주었다고 한다.
- 주석 67)홍익후(洪翊厚) 덕인(德仁)
- 홍익후는 이름이고, 덕인은 그의 자이다. 본 일기에서는 이름 뒤에 자를 붙였다.
- 주석 68)손우당(遜愚堂)
- 홍석(洪錫, 1604~1680)을 말함. 자는 공서(公敍), 호는 손우당, 본관은 남양이다. 잠은(潛隱) 강흡(姜恰), 각금당(覺今堂) 심장세(沈長世), 포옹(抱翁) 정양(鄭瀁), 두곡(杜谷) 홍우정(洪宇定) 등과 함께 태백오현 중의 한 사람이다. 병자난 이후 봉화마을에 들어와 살았다.
- 주석 69)두곡(斗谷)
- 홍우정(洪宇定)을 말함. 자는 정이(靜而),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병진년(1616)에 진사에 입격하고, 계유년(1633)에 사재감 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다. 병자호란 이후 북쪽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어 문수산(文殊山)아래 두곡천(杜谷泉) 곁에 작은 암자를 짓고서 옥류암(玉溜庵)이라는 편액을 걸고, 이로 말미암아 '두곡기인(杜谷畸人)'이라고 자호하였다.
- 주석 70)대명천지에 …… 주었으며
- 김매순(金邁淳)의 ≪대산집≫ 〈두곡홍공행장(杜谷洪公行狀)〉에는 이 시구를 두곡이 지었다고 나온다.
- 주석 71)동춘선생(同春先生)
-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을 말함.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아버지는 영천군수를 지낸 송이창(宋爾昌)이다.
十六日 庚子
陽。作省墓之行。 日夕還巢。遇客居洪翊厚德仁。 聞遜愚堂行實。 '大明天地無家客。 太白山中有髮僧'之句。 贈斗谷。 同春先生。 以'太白山中遯世士。 大明天地守貞人'之句。 贈公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