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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13년(계축) / 8월(八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02.0008.TXT.0015
15일(기해)
맑음. 아침에 일전에 지은 〈녹실을 곡하는 글(哭綠室文)〉을 기록하였다.

〈녹실선생을 곡하는 글〉(哭綠室先生文)
오호라, 선생이시여.(嗚呼先生)
타고난 자태는 순수하시고,(天姿純粹)
기상은 준수하셨으며,(氣宇俊秀)
덕업은 높고 넓었고,(德業崇曠)
문장은 온축된 것을 펼치셨습니다.(文章暢發)
처신함은 또한 공손하셨으며,(處己也恭)
남을 때할 때는 공경으로서 하였으니,(接物以敬)
세상에서 추중하는 바가(世所推重)
태산북두를 우러르는 것과 같습니다.(望若山斗)
천박한 소견의 말학이(淺見末學)
무엇을 알겠습니까.(何以知識)
난이 오니 따르고,(亂來追從)
조용히 계합하였을 뿐입니다.(契合從容)
청천에서 탁족할 때는(濯足晴川)
공이 먼저고 저는 뒤였으며,(公先我後)
반석에서 술을 두고 부를 때는(招酒盤石)
공은 권하고 저는 마셨습니다.(公勸我飮)
제가 이단을 걱정하여(我憂異端)
천하가 바뀐다고 하자,(以易天下)
공께서는 말씀하시길 하늘의 운은(公言天運)
비태와 박복주 61)이 있다고 하셨습니다.(否泰剝復)
제가 보신명철하는 방법과(我問保身)
기미를 아는 것에 대해 묻자,(明哲知幾)
공께서는 자취를 숨겨 드러내지 않고,(公誨遯跡)
괄낭검덕주 62)하라고 가르쳤습니다.(括囊儉德)
평소의 행함을 들어보면,(聞其素履)
뜻이 확고한 잠룡이시고,주 63)(確乎潛龍)
모든 논의하셨던 것은(凡所論議)
시귀(蓍龜)주 64)처럼 믿음직스러웠습니다.(信如蓍龜)
무릎을 맞대고 아홉 달을 지내니,(促膝九朔)
은혜는 부형과 같고,(恩如父兄)
헤어진 지 5년이나 되었으니,(分手五載)
의분은 사우와 같습니다.(義分師友)
봄 정월 보름 사이에(春正望間)
깨우쳐주시는 말이 자상하시더니,(誨語諄諄)
가을 칠월 보름에(秋七望日)
선가(仙駕)주 65)타고 어디로 가신 것입니까.(仙駕焉歸)
질의는 누구에게 할 것이며,(質疑有誰)
질문은 또 누구에게 할 것입니까.(問難復誰)
살아서는 하늘을 순히 섬기고 죽어서는 편안하셨으니,주 66)(存順歿寧)
공으로서는 부끄럼이 없으시겠으나(公則無愧)
세상이 어지럽고 도는 없어졌으니,(世亂道喪)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我安適歸)
초상 때는 빈소에도 임하지 못했고,(喪不臨殯)
장례 때는 상여끈도 잡지 못했습니다.(葬未執紼)
유명 사이가 멀리 떨어졌으니,(幽明逈隔)
어떻게 다시 볼 수 있겠습니까.(何以復見)
길거리에서 부고를 받고,(訃言街路)
애통하여 목이 막혔는데,(痛鬱塞哽)
궤연에 와서 곡하니,(來哭几筵)
눈물이 옷깃에 가득합니다.(涕淚滿襟)
생각하면 보이는 것 같다가도,(思而如見)
들으려 하면 소리가 없으니,(聽而無聲)
아, 애통합니다.(嗚呼痛矣)
그러나 어떻게 하겠습니까.(爲之奈何)
손 닦고 한 잔 술 올리니,(盥手一酌)
영혼께서는 감응하여 이르소서.(靈其感格)
주석 61)비태와 박복
모두 주역의 괘 이름으로, 자연이 순환하고 치란(治亂)이 소장(消長)하며, 군자와 소인이 진퇴(進退)하는 이치를 담고 있다.
주석 62)괄낭검덕(括囊儉德)
괄낭무구(括囊无咎)와 검덕피난(儉德辟難)을 합친 말이다. ≪주역≫ 〈곤괘〉 육사(六四)에는 "주머니를 묶으면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다.[括囊, 无咎, 无譽.]"라고 하였고, 비괘(否卦)의 상(象)에는 "덕을 검약하여 난을 피한다.[儉德辟難]"라고 하였다.
주석 63)뜻이 …… 잠룡이시고
≪주역(周易)≫ 〈건괘(乾卦)·문언(文言)〉에 "좋은 세상을 만나면 도(道)를 행하고 좋지 않은 세상을 만나면 은둔하여 그 뜻이 확고하여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잠겨 있는 용이다.[樂則行之, 憂則違之, 確乎其不可拔, 潛龍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석 64)시귀(蓍龜)
점을 칠 때 쓰는 시초(蓍草)와 거북으로, 국가에서 그처럼 믿고서 의지할 수 있는 원로를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주석 65)선가(仙駕)
사람이 죽어 신선이 되어 타고 간다는 수레로, 죽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석 66)살아서…… 편안하셨으니
송(宋)나라 때 유학자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나오는 '살아서는 순리대로 섬길 것이고 죽어서는 편안하리라.[存吾順事, 沒吾寧也]'라는 말을 줄인 것이다.
十五日 己亥
陽。朝記日前所制哭綠室文。

〈哭綠室先生文〉
嗚呼先生.天姿純粹。氣宇俊秀。德業崇曠。文章暢發.處己也恭。接物以敬。世所推重。望若山斗.淺見末學。何以知識.亂來追從。契合從容.濯足晴川。公先我後。招酒盤石。公勸我飮.我憂異端。以易天下。公言天運。否泰剝復.我問保身。明哲知幾。公誨遯跡。括囊儉德.聞其素履。確乎潛龍。凡所論議。信如蓍龜.促膝九朔。恩如父兄。分手五載。義分師友.春正望間。誨語諄諄。秋七望日。仙駕焉歸.質疑有誰。問難復誰.存順歿寧。公則無愧。世亂道喪。我安適歸.喪不臨殯。葬未執紼.幽明逈隔。何以復見.訃言街路。痛鬱塞哽。來哭几筵。涕淚滿襟.思而如見。聽而無聲。嗚呼痛矣.爲之奈何.盥手一酌。靈其感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