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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正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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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일기(棲巖日記) / 1913년(계축) / 1월(正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1.0002.0001.TXT.0029
15일(신미)
맑음. 점을 쳐서 〈절괘(節卦)〉주 2)를 만났는데, 구오(九五)에 '감절(甘節)이라 길(吉)하니 왕(往)하면 유상(有尙)하리라.'라고 하였고, 상(象)에 '감절의 길함은 자리 가운데 있는 것이다[甘節之吉, 居位中也.]'라고 하였다.
지곡(芝谷) 녹실장(綠室丈)댁에 도착하여 기록한다.

〈김명숙의 서암유장시를 인용하여 화답하다(和金明叔棲巖幽莊詩引)〉
나 해만은 옛날부터 산에 살려는 뜻을 두었는데 (자취를) 감추려고[晦] 하면서도 이루지 못한 것이 회(晦)이다. 이윽고 회암(晦菴) 주자의 시를 얻어 읽었는데 '암서기미효(巖栖冀微效)'주 3) 구절에 이르러 문득 책을 덮고 효효(嘐嘐)주 4)하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음을 개탄했다.
지금 담양의 남쪽에는 무이산(武夷山)과 마산(馬山)이 있는데 모두 깎아지른 듯 우뚝우뚝 솟아서 사람이 발돋움하고 서 있는 것 같다. 산 근처의 사람들은 질박하고 근검하여 고기잡고 도자기 구우며 농사짓고, 풍속은 순박하고 고풍스러우며, 땅은 그윽하고 깊고 또 넓다. 바위의 절벽이 옷깃과 띠처럼 두른 곳과 숲과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곳에 물이 콸콸 흐르며 또 뜰을 돌아 흐르니, 황야에 자취를 감추고 속세와 무리를 떠난 자가 아니면 살 수 없는 곳이다.
김명숙(金明叔) 군은 그것들을 즐겨 집을 짓고 소요하는 곳으로 삼아 '서암(栖巖)'이라고 이름하였다. 아! 명숙은 옛날 내가 이른바 '효효하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음을 개탄했던[嘐嘐慨世]' 데 해당하는 그 사람인가? 아닌가? 어찌하여 살고 있는 무이(武夷)가 회옹(晦翁)의 정사기(精舍記)주 5)와 함께 고금에 한 가지란 말인가?
내가 듣건대 옛날에 게[蟹]를 싫어해서 해(解)자 성을 가진 사람을 미워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 음이 가깝기 때문에 그를 싫어했다고 한다. 하물며 그를 사랑하여서 거처하는 지역의 명칭을 동일하게 한다면, 그를 사랑하고 사모하고 배우려는 뜻이 더욱 어떠하겠는가? 비록 그렇더라도 또 그 사람이 어진지 아닌지에 달려있을 따름이다.
장문중(臧文仲)이 단(壇)에서 현가(絃歌)를 부르고주 6), 증자(曾子)가 수레를 타고 가다 회피(廻避)한 것주 7)은 이미 명숙이 힘써 행한 것이다. 명숙의 이름은 모이니, 우리 유가의 무리이다. 가난하게 살면서 독서하고 힘써 밭 갈면서 어버이를 봉양하였으니 대개 담양의 어진 자이다.
담양 사람이 시에 이른다.
때를 만났다고 어찌 상암(商巖)주 8)을 쌓지 않겠으며(逢時胡不築商巖)
세상과 어긋났다고 공연히 진의 도잠(陶潛, 도연명)을 은둔케 하랴(違世空敎隱晋潛)
물은 졸졸 흘러와 겨우 섬돌을 지나가고(水送潺湲纔過砌)
바위는 아름드리 되어 고졸하게 처마에 간직되었네(石爲懷抱劣蔵簷)
임천을 문득 자기 물건으로 만들고(林泉便屬自家物)
과축(薖軸)주 9)하며 생을 마침은 군자의 겸손이네(薖軸堪終君子謙)
마침 고인의 진중한 뜻을 얻었으니(會得故人珍重意)
천고의 병산주 10)이 멀리 눈속에 들어오네(屛山千古入遐瞻)

임자년(1912) 봄에 오천 정해만이 쓰다.
주석 2)절괘(節卦)
≪주역≫ 60번째 괘인 '수택절괘(水澤節卦)'를 말한다. 연못 위에 물이 있는 형상이다.
주석 3)암서기미효(巖棲冀微效)
주자의 〈운곡이십육영(雲谷二十六詠)〉에서 회암(晦庵)을 노래한 시 중에 "능하지 못함을 자신한 지 오래거니, 산속에 거처하며 은미한 효험 바라네[自信久未能, 巖棲冀微效]"라고 한 구절이 있어 이를 인용한 것이다.
주석 4)효효(嘐嘐)
맹자가 광자(狂者)에 대해 만장(萬章)에게 설명하기를 "그 뜻이 효효연(嘐嘐然)하여 말하기를 '옛사람이여, 옛사람이여!' 하되 그 평소의 행실을 쭉 살펴보면 행실이 말을 따라가지 못하는 자들이다." 하였는데, 주자의 주에 "효효연(嘐嘐然)은 뜻이 크고 말이 큰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맹자≫ 〈진심 하(盡心下)〉)
주석 5)회옹(晦翁)의 정사기(精舍記)
주희는 1183년 무이구곡의 제5곡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 병서(并序)〉을 지었는데, 정사기는 이 서문을 말한다.
주석 6)장문중 …… 부르고
춘추시대에 노(魯) 나라 동문 밖에 원거(爰居)라는 크기가 망아지만한 해조(海鳥)가 있어 3일 동안 머물렀는데, 장문중(藏文仲)이 이상한 새라 하여 그 앞에서 큰 잔치를 베풀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주석 7)증자 …… 것
≪사기(史記)≫ 〈추양전(鄒陽傳)〉에 증자(曾子)는 효성이 지극했는데, 수레를 타고 가다가 마을 이름이 어미를 이긴다는 이름을 가진 '승모(勝母)'라는 것을 보고 마을에 들어가지 않고 수레를 돌렸다고 한다.
주석 8)상암(商巖)
상의 부열이 등용되기 전에 담쌓는 일을 한 장소인 부암을 말한다. 전하여 초야의 어진 선비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주석 9)과축(薖軸)
≪시경≫ 〈위풍(衛風)・고반(考槃)〉의 "숨어 살 집이 언덕에 있으니, 큰 선비의 마음이 넉넉하도다.[考槃在阿, 碩人之薖]"라는 말과 "숨어 살 집이 고원에 있으니, 큰 선비가 소요하는 곳이로다.[考槃在陸, 碩人之軸]"라는 말을 압축한 것으로, 산림에 은거하며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은사(隱士)의 생활을 비유한 것이다.
주석 10)병산(屛山)
병풍처럼 늘어선 산. 또는 담양 병풍산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十五日 辛未
陽。占遇節九五。 '甘節。 吉。 往有尙。' 象曰。 '甘節之吉。 居位得中也。' 到芝谷綠室丈宅記。
〈和金明叔棲巖幽莊詩引〉
晩。 自昔志于山。 欲晦而所不得者晦。旣而得晦菴子詩。 讀之。 至'巖栖冀微效'。 輒掩卷。 嘐嘐慨世無人。今潭之南。 有武夷馬山。 皆嶄嶻崱屴。 跂而若人立者。近山之人。 質朴勤儉。 漁陶耕稼。 而俗淳古。 地窈然。 深且曠也。巖崖之所衿帶。 林木之所叢蔚。 水㶁㶁。 又循除流。 非遜荒匿跡。 絶俗離群者。 不可得以居也。金君明叔樂之築室。 爲盤旋所而曰'栖巖'。噫。 明叔曩吾所謂'嘐嘐慨世'中其人歟? 抑非歟? 何所居武夷之與晦翁精舍記。 一般今古也? 吾聞昔有惡蟹而惡解姓人者。 爲其音近而惡之也。況愛之而所居之地。 同一其名。 則其愛而慕之學之之意。 尤何如也? 雖然。 又在其人之所賢否。臧壇之絃歌。 曾車之廻避。 是已明叔勉之矣。明叔名某。 吾徒也。窮居讀書。 力田而養老。 盖潭人之賢者也。潭人云詩曰。
逢時胡不築商巖。違世空敎隱晋潛。水送潺湲纔過砌。石爲懷抱劣蔵簷。林泉便屬自家物。薖軸堪終君子謙。會得故人珍重意。屛山千古入遐瞻。
壬子春。 烏川鄭海晩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