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화콘텐츠
- 일기
- 서행록(西行錄)
- 1831년(신묘)
- 10월(十月)
- 18일(十八日)
서행록(西行錄) / 1831년(신묘) / 10월(十月)
18일
○송흠준(宋欽俊), 박광승(朴光昇)이 동구 밖까지 나와 작별하였다. 밀목치를 넘어 신도(新都)를 지나 연산(連山) 읍 앞에 이르렀다. 요기 차 한 주막에 들어가니 주막 안이 몹시 북적거리고 어수선하였다. 그 연고를 물으니, 이 읍의 향회(鄕會)주 28)가 열려, 유향(儒鄕)주 29)과 이교(吏校)주 30)가 많이 모였다고 하였다. 술과 안주와 떡과 국을 얻어먹고 곧바로 출발하였다. 밤이 되어 전당(錢塘)에 도착하였다. 어젯밤 서원에 머무를 때 박광승이 《동학원(東學院)》 시축을 꺼내 보여 주었다. 원운은 송 생원의 시로 다음과 같다.
땅이 감추고 하늘이 아끼는 몇 이랑 언덕에(地秘天慳數畝邱)
청산은 우뚝 서 있고 물은 유유히 흘러가네(靑山屹立水長流)
드디어 열두 선생의 사당을 완성하였으니(終成十二先生廟)
나무에서 이는 바람 소리 만고토록 유장하리(樹得風聲萬古悠)
평생토록 부지런히 우러렀는데주 31)(平生勤仰止)
오늘 저녁 다행히 바람대로 되었네(今夕幸望依)
도학은 푸른 산처럼 우뚝 서 있고(道學靑山立)
순수한 충정은 밝은 해처럼 빛나네(精忠白日輝)
매월당의 풍모는 감개가 무량하고(梅翁風感慨)
세조의 뜻은 깊고 은미하였네(光廟旨深微)
일 년 만에 황폐해진 곳을 수리하니(一載修荒廢)
우리가 귀의할 곳이 만들어졌네(吾徒有所歸)
내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동학사를 새로이 이 언덕에 세우니(東學新祠闢此邱)
앞 시내 굽이굽이 반드시 동으로 흐르네(前川萬折必東流)
우리 또한 충신의 후예로서(而吾亦是忠賢後)
지금 조정에 망배하니 만감이 아득하네(望拜今朝百感悠)
동학이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으니(有洞名東學)
이곳에 제각(祭閣)과 사당이 지어졌네(此間閣廟依)
충혼은 위 아래가 같으니(忠魂同上下)
화려한 제도 아울러 밝게 빛나네(華制幷光輝)
우리 선조 배향하지 못한 게 한이니(恨未吾先配)
도리어 뜻이 미약했음을 참담히 느끼네(還慚感意微)
오늘의 행차에 충분한 뜻이 있으니(今行餘意在)
졸구를 읊고서 돌아가네(拙句詠而歸)
이찬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벼랑을 끼고 시내와 이어진 옛 언덕을 찾으니(拚壁緣溪訪古邱)
깎아지른 제각과 사당이 푸른 시내를 굽어보네(巍然閣廟俯淸溪)
오늘에 와서 임금과 신하가 일체가 될 즈음(于今一體君臣際)
뜻있는 선비의 천추 감회가 아련히 배가되네(志士千秋感倍悠)
오늘 계룡산 골짜기에(是日鷄山洞)
임금과 신하가 의지한 곳 있네(君臣有所依)
서교주 32)의 피는 붉게 남아 있고(西橋血有赤)
동봉주 33)의 달은 더욱 밝게 빛나네(東峯月更輝)
충절은 밝은 해를 관통하였고(忠節貫白日)
충혼각엔 자미가 빙 둘러있네(魂閣繞紫微)
만약 우리 선조를 배향하면(若配吾先祖)
영령이 저절로 돌아오리라(英靈自越歸)
- 주석 28)향회(鄕會)
- 지방에 거주하는 사족이 중심이 되어 운영한 지방자치회이다. 사족이 향안(鄕案)을 기반으로 향촌에 대한 지배를 실현하기 위한 장치로서 구성하여 운영하였다.
- 주석 29)유향(儒鄕)
- 유생(儒生)과 향청(鄕廳)의 직원을 이른 말이다.
- 주석 30)이교(吏校)
- 관아의 하급관리인 이서와 군교를 합하여 이르는 말이다.
- 주석 31)평생토록 …… 우러렀는데
- 존경할 만한 선현(先賢)을 사모할 때 쓰는 표현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차할(車舝)에 "저 높은 산봉우리 우러러보며, 큰길을 향해 나아가노라.[高山仰止, 景行行止. ]"라는 말이 나온다.
- 주석 32)서교
- 서재(西齋) 송간(宋侃)을 가리킨다.
- 주석 33)동봉
-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을 가리킨다.
十八日
○與宋欽俊、朴光昇出洞口外作別。 越密木峙, 歷新都, 至連山邑前。 療飢次入一幕, 則幕中頗煩撓。 故問其故, 則此邑鄕會云, 而儒鄕及吏校多會云。 酒肴及餠羹得食, 卽爲發程。 乘夜得達錢塘。 昨夜留院時, 朴光昇出見《東學院》韻軸。 而元韻卽宋生員韻。 "地秘天慳數畝邱, 靑山屹立水長流。 終成十二先生廟, 樹得風聲萬古悠。" "平生勤仰止, 今夕幸望依。 道學靑山立, 精忠白日輝。 梅翁風感慨, 光廟旨深微。 一載修荒廢, 吾徒有所歸。" 余拙次曰: "東學新祠闢此邱, 前川萬折必東流。 而吾亦是忠賢後, 望拜今朝百感悠。" "有洞名東學, 此間閣廟依。 忠魂同上下, 華制幷光輝。 恨未吾先配, 還慚感意微。 今行餘意在, 拙句詠而歸。" 而贊次曰: "拚壁緣溪訪古邱, 巍然閣廟俯淸溪。 于今一體君臣際, 志士千秋感倍悠。" "是日鷄山洞, 君臣有所依。 西橋血有赤, 東峯月更輝。 忠節貫白日, 魂閣繞紫微。 若配吾先祖, 英靈自越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