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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행록(西行錄) / 1831년(신묘) / 10월(十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4.0001.TXT.0013
13일
○아침을 먹은 뒤 재실에 회의석을 마련하였다. 모두 자리에 모여 논의를 낼 적에 먼저 회의 안건의 조목을 적었다. 매월당(梅月堂) 선생(김시습(金時習))과 서재(西齋) 선생(송간(宋侃)), 망월암(望越菴) 이 선생(李先生) 축(蓄)주 24)을 추배할 생각으로 당장(堂長) 3명, 공사원(公事員) 1명, 색장(色掌) 1명을 정하였다. 이에 논의를 만들기 위해 공사원이 먼저 의견을 내니, 당장 이하 모두가 말하기를 "여러분의 의견과 서로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오촌(鰲村) 장석(丈席)주 25)에게 정품(呈禀)하고, 감영에 정서(呈書)하고, 원장에게 정품할 뜻으로 충분히 의견을 주고받으며 상의를 하였다. 자리를 파한 뒤에 어떤 사람은 가고 어떤 사람은 남았다.
오후에 일행과 광정(廣亭)김계원(金啓源)과 동학사(東鶴寺)로 갔다. 초혼각(招魂閣)을 둘러보았는데 전각 안의 단종이 쓴 어휘(御諱)와 궤(櫃) 안에서 나온 《초혼록(招魂錄)》을 다 보고 나서, 그길로 절 안에 들어가 월인(月仁) 스님을 불러서 만났다. 스님은 이 절을 중창한 스님으로 당시 나이가 83세였는데, 아주 많은 고적을 전해 주었다. 조금 쉬고 나서 서원 밑으로 내려와 유숙하였다.
주석 24)이 선생(李先生) 축(蓄)
1402~1473. 자는 윤보(潤甫)이며,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이색(李穡)의 증손이다.
주석 25)장석(丈席)
송치규(宋穉圭, 1759~1838)이다. 자는 기옥(奇玉)이고, 호는 강재(剛齋)이며, 본관은 은진이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송시열의 6대손으로 김정묵의 문인이다. 당시 오촌에 살아 '오촌 선생(鰲村先生)'이라고도 하였다.
十三日
○朝飯後, 設齋會席。 濟濟會座, 發論之際, 先書會議事節目。 而梅月堂先生、西齋先生、望越菴先生蓄追配之意, 定堂長三人, 公事員一人, 色掌一人。 仍爲成議, 而公事員先爲發論, 則堂長以下皆曰: "僉議詢同。" 呈禀于鰲村丈席, 呈書于營門, 呈禀于院長之意, 爛熳商議, 而罷坐後, 或去或留。 午後與同行及廣亭金啓源, 往東鶴寺。 玩招魂閣, 則閣內書端宗御諱, 自櫃中出《招魂錄》, 皆玩後, 仍入寺中招見月仁僧。 僧卽此寺重創之僧, 而時年八十三, 頗傳古蹟。 小憩後, 下來院底留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