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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행록(西行錄)
- 1828년(무자)
- 5월(五月)
- 17일(十七日)
서행록(西行錄) / 1828년(무자) / 5월(五月)
17일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진위(振威, 경기도 평택) 고을 앞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흥양의 지자(持者, 문서를 전하는 사람) 신우당(申于堂)이라는 녀석을 만나, 그편에 아들 편지를 받았다. 집을 떠난 후 처음으로 받은 편지였다. 집안에 별다른 우환이 없다고 하니 매우 다행이었다. 경기와 충청, 두 도는 가뭄이 극심해 보리농사를 흉작으로 치부한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런 데다 14일 내린 비는 겨우 쟁기질이나 할 정도의 비에 불과하여 모내기할 길이 만무하다고 하였다. 남쪽의 소식은 그간에 몇 차례 비가 내려 보리농사와 모내기는 윗지방보다는 그나마 넉넉하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소사(素沙)주 46)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직산(稷山) 삼거리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80리를 갔다.
- 주석 46)소사(素沙)
-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이다. 삼남대로는 소사동 북쪽에서 당산을 넘어 소사원을 지나 소사교를 건넌 뒤 소사벌을 지나 곧장 남쪽으로 내려갔다. 소사원은 삼남대로 경기도 구간의 마지막 원으로 충청도에서 넘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十七日
○早朝發程, 抵振威邑前酒店朝飯。 逢興陽持者申亍堂上京之漢, 其便得見家兒書。 離家後初見書也。 家中別無憂故云, 幸幸。 京畿、忠淸兩道, 則旱乾太甚, 麥凶辦之已久。 而雖十四日雨, 不過犁雨, 萬無移秧之道云。 南中消息, 則間有數次雨, 麥事與移種, 稍贍於上道云, 可幸可幸。 抵素沙療飢。 抵稷山三巨里留宿。 行八十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