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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행록(西行錄) / 1823년(계미) / 9월(九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1.0004.TXT.0013
13일
새벽에 출발하여 남태령(南泰嶺)주 66)을 넘었다. 승방점(僧房店)주 67)에 이르러 떡을 사서 요기한 다음, 강을 건너 수청거리점(水淸巨里店)에 이르렀다. 아침을 먹은 뒤에 청파(靑坡)의 길가에 이르러 동행과 서로 헤어지고, 나는 박영대(朴永大)의 집에 들어갔다. 이어 주인과 요기하고 잠시 쉬었다가 서소문(西小門) 밖 이희(李)의 집에 갔으나 주인은 부재중이었다. 그런데 어떤 모르는 조관(朝官) 한 사람이 내게 묻기를, "흥양에 사십니까?"라고 하므로 내가 답하기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하자 이어 말하기를,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바로 회덕(懷德)주 68)에 사는 장소(長小) 송명규(宋明圭)인데, 주인과 친사돈 관계인 사람이었다. 가지고 온 민어(民魚)를 노비에게 들여보내니 안채에서 말을 전하였는데 전일의 정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예조의 서리 안인성(安寅成)을 만나기 위해 예조에 갔더니 예조의 직방(直房)주 69)으로 들어갔다고 하므로 그길로 직방(直房)으로 갔다. 나는 문 밖에 서서 주인에게 통지하게 했더니 곧바로 나왔다. 선 채로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나서, 먼저 재록(載錄)했는지의 여부를 묻자 곧바로 재록하였다고 하였다. 술집에 함께 나가자고 청하자 옷을 입고 나왔는데, 곧바로 나오면서 《사원록(祠院錄)》을 가지고 나왔다. 직접 보니 과연 재록되어 있어 매우 다행스러웠다. 대개 이번 여행길은 전적으로 이 일을 보기 위하여 왔기 때문에, 이 일이 이처럼 재록(載錄)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그길로 함께 술집으로 나와 술을 사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액(賜額)을 청한 일에 대해 언급하였더니, 이 일은 큰일이라서 수령이 쉽사리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유생의 상소가 있더라도 마침내 이루어진다는 기약을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또 첩미(帖尾)에 대한 일도 언급하니, 그가 관계된 바가 아니어서 상세히 알 수는 없지만, 관장하는 사람과 상의해 보겠다고 하기에 내일 다시 오기로 약속을 하고 나왔다. 광교(廣橋) 경주인(京主人) 집에 들어가 잠시 쉬다가 저물녘에 주인집으로 나왔다.
주석 66)남태령(南泰嶺)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에서 과천시 과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경계가 되는 고개이다.
주석 67)승방점(僧房店)
승방평(僧房坪)에 있었던 객점을 말한다. 승방평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있던 마을로서, 마을 뒷산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고, 그 절 앞들에 있던 마을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승방뚤・심방뜰이라고도 불렀다.
주석 68)회덕(懷德)
대전광역시 대덕구 회덕지역의 옛 지명이다.
주석 69)직방(直房)
조방(朝房)이라고도 하는데, 조정의 신하들이 조회(朝會) 때를 기다리느라고 모여 있던 방이다. 대궐문 밖에 있었다.
十三日
曉發越南泰嶺, 抵僧房店, 買餠療飢, 仍爲越江, 抵水淸巨里店。 朝飯後, 抵靑坡路邊, 與同行相分, 余入朴永大家。 仍爲主人療飢, 暫憩後, 往西小門外家, 則主人不在, 而有不知朝官一人, 而問余曰: "在興陽?"云, 故答曰: "何以知之?" 仍曰: "有知之道"云, 故仍與敍話, 則乃懷德長小 明圭, 而與主人親査人也。 持來民魚, 使奴婢入送, 則內間傳語出來, 不忘前日之意。 爲見禮吏 安寅成禮曹, 則入去禮曹 直房云, 故仍往直房。 余則立門外, 使主人通奇, 則卽爲出來。 立談數語, 先問載錄與否, 則卽爲載錄云, 請與出去酒家, 則着衣出來矣。 卽爲出來, 而《祠院錄》持來, 親見則果爲載錄, 幸幸。 盖此行專以爲見此事而來矣, 此事若此載錄, 可幸可幸。 仍與出來酒家, 買酒相飮敍話, 仍說請額事, 則此事大事也, 倅難易成, 雖有儒疏, 畢成難期云矣。 又論帖尾事, 則渠非所關, 不可詳知, 與所掌之人相議云云, 故以明日更來爲約而出。 入廣橋 京主人家暫憩, 乘暮出來主人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