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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행록(西行錄) / 1823년(계미) / 4월(四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1.0002.TXT.0019
19일
새벽에 출발하여 노성(魯城)주 38) 읍내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황화정(皇華亭)주 39)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치등(峙登) 주막 어귀에 이르러 나는 성묘하기 위해 시조의 묘소에 들어갔다. 동행은 먼저 능측(陵側)으로 가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에 성묘한 뒤 성묘록(省墓錄)에 이름을 쓰고 급히 능측으로 갔다. 동행이 오지 않아서 몹시 기다리던 중에 날이 저어서야 강(姜)송(宋) 두 벗이 왔다. 다른 동행은 마병(馬病)으로 오지 못해서, 두 벗과 묵었다. 100리를 갔다.
주석 38)노성(魯城)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옛 지명이다. 지명 유래는 이산현의 지형이 공자가 탄생한 중국 노나라 이구산(尼丘山)의 지형과 비슷하다 하여 '노'(魯)자를 따고 이산(尼山)의 성을 상징하는 '성'자를 따서 노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주석 39)황화정(皇華亭)
지금의 충남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해당한다. 조선 시대에는 충청도 땅이 아니라 전라도 여산읍(익산의 옛 지명) 소속이었는데, 임금으로부터 전라도관찰사로 제수받으면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 지역인 여산 황화정에서 신·구 임무교대식인 교귀식(交龜式)을 치르고 전주 조경묘에 숙배(肅拜)하는 것이 순서였다. 때로는 활터로도 이용했으며 현재는 비석만 남아 있다.
十九日
曉發抵魯城邑內朝飯。 抵皇華亭午飯。 至峙登酒幕前, 余則省墓次, 入始祖墓所, 同行則先行約以陵側, 故省墓後, 書名《省墓錄》, 急往陵側, 則同行不來, 故苦待中, 暮時兩友來。 他同行則以馬病不來, 只與兩友留宿。 行百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