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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행록(西行錄) / 1799년(기미) / 1월(元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07.0001.TXT.0014
14일
날씨가 조금 풀렸다. 식후에 청파(靑坡) 상원(尙元)의 집에 가서 흥양(興陽)의 제태(祭駄, 제수(祭需)를 실은 짐바리) 하인으로 온 자를 보고자 하였는데 없다고 하니, 괴이하다. 감기가 가는 곳마다 크게 기승을 부리니 중도에 아파 눕는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오늘 한성부(漢城府)주 2)에서 초보(抄報, 뽑아 보고함)하였다. 오부(五部)주 3)에서 죽은 자가 4만 8000여 명이라고 하는데, 남쪽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어 답답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주석 2)한성부(漢城府)
조선왕조 수도의 행정구역 또는 조선왕조 수도를 관할하는 관청의 명칭이다.
주석 3)오부(五部)
조선 시대 한성부에 설치한 중(中)·동(東)·남(南)·서(西)·북(北)의 부의 종5품 아문으로 오부 관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위법 사항과 교량·도로·반화(頒火, 매년 병조에서 써 오던 불씨를 버리고 새로운 불씨를 만들던 의식)·금화(禁火)·가대타량(家垈打量, 집터 측량),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검시하는 일 등을 관장하였다.
十四日
日氣稍解。 食後往靑坡 尙元家, 欲見興陽祭駄下人來者而無之云, 可怪。 感氣到處熾盛, 無奈中路痛臥而然耶? 今日自漢城府抄報, 死亡於五部者, 乃爲四萬八千餘名云, 而南中消息, 寂然無聞, 悶菀不可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