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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행록(西行錄) / 1794년(갑인) / 3월(三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03.0003.TXT.0024
24일
아침을 먹은 뒤에 경모궁(景慕宮)의 조가(趙哥) 집에 갔더니, 조한(趙汗)아한(兒汗)이 모두 부재중이었다. 그래서 반촌(泮村)재광(再光) 집에 가서 화옥(華玉)을 보러 가자고 하였더니, 화옥(華玉)은 어제 미음(渼陰)주 45)에 갔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현(梨峴) 내사거리(內四渠里)에 와서 흥양 지방군의 주인을 찾아갔는데, 수표교(水摽橋)주 46) 앞인 것을 알지 못하였다. 우연히 이리(李吏)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죽동(竹洞)으로 왔는데, 사수(士壽)가 부재중이어서 잠시 쉬었다가 주동(鑄洞)으로 왔다. 치회(穉會)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에 차동(車洞)으로 왔다.
주석 45)미음(渼陰)
강동구 암사동의 광나루 동쪽 한강이 꺾여 흐르는 곳을 가리키는 이름으로서, 노수포, 독포라고도 하였다.
주석 46)수표교(水標橋)
수표교는 현재 장충공원 내에 있다. 원래는 청계천에 있었던 것을 1959년 청계천 복개하면서 현재 위치로 옮겨 왔다. 세종 23년(1441년) 물 높이를 재는 '수표(水標)'를 다리 옆에 세워 홍수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세종 때 나무로 만든 수표는 썩는 문제가 발생하여 성종 때 돌로 만들어 다시 세웠다고 한다.
二十四日
食後往景慕宮 趙哥家, 則趙汗兒汗皆不在, 故往泮村 再光家, 要見華玉爲言, 則華玉昨日出去渼陰云, 故來梨峴內四渠里, 尋訪興陽鄕軍主人, 而不知水摽橋頭。 偶逢吏, 暫話來竹洞, 則士壽不在, 故暫憩後來鑄洞。 暫與穉會相話, 夕間來車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