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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행록(西行錄) / 1792년(임자) / 10월(十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01.0002.TXT.0021
21일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너는데, 이때는 첫추위라서 얼음이 단단하게 얼어붙지 않았다. 창고지기가 전하는 말을 들으니, 어제부터 사람과 말이 비로소 건널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얼음이 이제 막 얼어서 맑기가 유리와 같아 맑은 모래와 흰 돌을 하나하나 셀 수 있을 정도였으나 그 위태로운 상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먼저 노복과 말을 건너가게 한 뒤에 강을 건너 평지를 밟고 나서야 비로소 생기가 돌았다.
몇 마장을 지나지 않아서 신창(新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채찍을 재촉하여 하행정(下杏亭) 주막에 이르러 잠시 말에게 꼴을 먹이고 곧바로 산으로 향했다. 절까지 10여 리를 채 못 갔는데 여승(輿僧)이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말에서 내려 수레를 타고 곧장 보현사(普賢寺)주 74)에 이르러 관음전(觀音殿)에서 묵었다. 이날 50리를 갔다.
주석 74)보현사(普賢寺)
평안북도 영변군 북신현면의 묘향산에 있는 절이다. 고려 초기인 968년(고려 광종19) 창건 당시에는 매우 작은 사찰이었다고 한다. 1028년(고려 현종19) 이후부터는 탐밀(探密)과 굉확(宏廓)이 243칸의 건물을 이룩하여 묘향산의 대표적인 가람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역대 국왕의 초상화인 어진(御眞)과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귀중한 기록들을 보관하기도 하였다. 또한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당시 청허휴정은 경상도 양산의 통도사(通度寺)에 보관되어 있던 석가여래사리를 보현사에 봉안하기도 하였다.
二十一日
乘氷渡江, 是時初寒, 氷不緊凝。 聞倉直所傳, 則自昨日人馬始渡云, 而淸氷初合, 淨若琉璃, 明沙白石, 歷歷可數, 其危凜之狀, 不可盡言。 先渡奴馬, 後乃渡江, 方踏平地, 始有生意。 不過數馬場, 到新倉朝飯。 促鞭至下杏亭酒幕, 暫時秣馬, 卽爲入山。 未到寺十餘里, 輿僧已來待矣。 遂下馬乘輿, 直到普賢寺, 觀音殿留宿。 是日行五十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