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일기
  • 서행록(西行錄)
  • 1792년(임자)
  • 10월(十月)
  • 18일(十八日)

서행록(西行錄) / 1792년(임자) / 10월(十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01.0002.TXT.0018
18일
오늘은 바로 약산(藥山)주 65)의 서장대(西將臺)주 66)에서 성조(城操, 성에서 하는 군사훈련)하는 날이다. 일단 천주사(天柱寺)주 67)로 들어가 잠시 쉬면서 추위를 피한 뒤, 채찍을 재촉하여 서장대로 올라갔다. 서장대는 약산(藥山)제일봉(第一峯) 서쪽에 있는데, 평안도 전역을 높이 누르고 있고 그 터가 매우 견고하여 철옹(鉄瓮)이라는 호칭에 딱 들어맞았다. 시력(視力)이 비록 미치지 못하지만 저 땅의 산천이 지척에 있는 듯하고, 북쪽으로는 묘향산(妙香山)주 68)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청천(晴川)을 내려다보았다. 가없이 너른 들판은 무릎 아래에 펼쳐져 있고 뭇 봉우리는 첩첩히 쌓여 마치 돌을 포개 놓은 것 같았다. 이날 3천 병마를 거느리고 성 위에 도열하여 종일토록 무예를 연마하였다. 마침내 율시 한 수를 읊었다.

관서에서 일찍 약산이 명성을 드날렸으니(西關夙擅藥山名)
기모주 69)가 남긴 정채 귀신의 도끼로 이루어진 것이리(氣母留精鬼斧成)
넓은 벌판에 그 누가 천 자나 우뚝 서는 것을 다투랴(大野誰爭千尺立)
끝없는 하늘에 만년토록 혼자서 지탱하였네(長天獨任萬年撑)
형세는 제일가는 금성탕지주 70)의 요충지이며(形便第一金湯地)
보루와 장벽주 71)은 둘도 없는 철옹성이라(保障無雙鉄瓮城)
성상은 변방을 향한 근심 잊지 못하여(聖主邊憂猶不忘)
태평 시대에도 군대를 단련시키네(太平時節鍊軍兵)

밤 2경에 호령하고 횃불을 들어 올리니 멀리서 보면 화성(火城)과 같았다. 잠시 뒤 불이 꺼지자 파진(罷陳)하였다. 영감(令監)과 모든 사람들이 내려갔는데, 나는 서운사(捿雲寺)에 가서 묵었다.
주석 65)약산(藥山)
조선 태종실록에는 "약산은 사방이 높고 험하고 바위들이 깎은 듯이 서 있어 하늘이 만든 성이라고 일컬으며, 의주와 삭주, 강계 등 여러 고을 중에서 군사를 모으기에 적당한 곳"으로 기록돼 있다.
주석 66)서장대(西將臺)
장수가 올라서서 지휘할 수 있도록 산성 서쪽에 높이 만든 대를 이르던 말이다.
주석 67)천주사(天柱寺)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읍 약산 동대(東臺)의 동남쪽에 있는 절이다. 1684년(숙종10) 창건하였으며, 1722년(경종2) 중수하였다. 진달래가 온 산을 덮는 봄철에는 약산동대와 천주사가 꽃구름 속에 떠 있는 듯하다 하여 예로부터 관서팔경의 하나로 불렸다.
주석 68)묘향산(妙香山)
묘향산은 원래 영변군에 속해 있었는데, 지금은 향산군(香山郡)으로 분할되었다. 주봉은 비로봉(毘盧峰)이다. 기암과 괴봉 등 명승풍치가 둘레 160km나 되는 넓은 지역에 펼쳐져 있다. 원래 연주(延州) 고을에 속한 산이라는 뜻에서 '연주산'이라고도 하고 바위들이 유달리 희고 정갈하다는 의미에서 '태백산'으로도 불렸는데, 산세가 기묘하고 수려하여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특히 누운 향나무가 많아 사철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산이라 하여 11세기부터 묘향산이라 하였다.
주석 69)기모
기모(氣母)는 만물을 생성하는 근본이라는 의미이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복희(伏羲)가 자연의 대도(大道)를 터득하여 기모(氣母)를 가지게 되었다.[伏戱得之, 以襲氣母.]"라 하였는데, 그 주석에 '기모'는 '원기(元氣)'라고 하였다. 《남명집(南冥集)》 <원천부(原泉賦)>
주석 70)금성탕지
원문의 '금탕(金湯)'은 금성탕지(金城湯池)의 준말이다. 금으로 조성한 성과 끓는 물이 흐르는 해자라는 뜻으로, 견고한 성지를 말한다. 《한서》 권45 〈괴통전(蒯通傳)〉에 "반드시 성을 고수하려면 모두 금성과 탕지로 만들어야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71)보루와 장벽
원문의 '보장(保障)'은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돌이나 흙 등으로 만든 견고한 보루와 장벽을 말한다. 춘추 전국 시대 조(趙)나라 간자앙(簡子鞅)이 윤탁(尹鐸)이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양(晉陽)을 다스리게 하자 윤탁이 "세금을 많이 거둘까요, 보장(保障)이 되게 할까요?"라고 물으니 간자(簡子)가 보장이 되게 하라고 답한 고사가 있다. 《十九史略通攷 卷1 春秋戰國時代》 《通鑑節要 卷1 周紀 威烈王》
十八日
是日卽藥山西將臺城操日也。 先行入天柱寺, 暫憩禦寒。 遂催鞭上西將臺, 則臺在於藥山第一峯之西, 而高壓平安一道, 其基址甚固, 鉄瓮之號, 眞得題語也。 眼力雖不及, 而彼地山川, 如對咫尺, 北望香山, 西瞰晴川。 大野無邊膝下, 羣峯磊磊, 若累石之狀。 是日率三千兵馬, 羅列城頭, 終日鍊武。 遂吟一律, "西關夙擅藥山名, 氣毋留精鬼斧成。 大野誰爭千尺立, 長天獨任萬年撑。 形便第一金湯地, 保障無雙鉄瓮城。 聖主邊憂猶不忘, 太平時節鍊軍兵。" 夜二更, 號令擧火, 遠若火城。 稍間掩火, 因罷陳, 令監及諸人皆下去, 而余則往留於捿雲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