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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행록(西行錄) / 1792년(임자) / 10월(十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01.0002.TXT.0012
12일
몹시 춥다. 동틀 무렵 길을 떠나 구현(駒峴)까지 40리를 가서 아침을 먹었는데, 사치스럽고 화려한 여점을 내 평생 처음 보았다. 여막(旅幕)과 장랑(長廊)주 52)은 기와집이 아닌 것이 없고, 그 규모를 보면 경성(京城)의 좋은 집 모양과 다름이 없었다. 말에게 꼴을 먹인 다음 출발하여 구현을 넘으니, 이곳은 바로 황해평안 두 도의 경계이다. 중화(中和)에 이르니 참으로 웅장한 고을이었다. 채찍을 재촉하여 재송원(栽松院)주 53)에 이르러 대동강 동쪽 언덕의 장림(長林)을 보니 수십 리가량 되었다. 기자(箕子) 때에 심어 놓은 수목이라고 하는데 울창하게 숲을 이루었고, 길은 숫돌처럼 판판하였다. 서둘러 대동강을 건너 여점(旅店)에서 묵었다. 이날 100리를 갔다.
주석 52)장랑(長廊)
대궐 문이나 집 대문의 안쪽 좌우에 죽 붙어서 벌여있는 행랑으로, 군사들이 입직하거나 하인들이 거처하였으며, 물건을 보관하기도 하였다.
주석 53)재송원(栽松院)
평양부 남쪽 11리 떨어진 곳에 있던 역원(驛院)인데, 원 주위에 소나무가 몇십 그루가 심어져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1권 평안도 평양부》
十二日
極寒。 平明登程, 至駒峴四十里朝飯, 旅店之侈麗, 平生初見。 旅幕及長廊, 無非瓦家, 見其制度, 則無異京城好家舍模樣。 秣馬後, 離發踰駒峴, 則此是黃海·平安兩道之界也。 至中和, 則儘雄府也。 催鞭至栽松院, 見大同江東崖長林, 可數十里。 稱云箕子時所植樹木, 而鬱鬱成林, 其道如砥矣。 急渡大同江, 留旅店。 是日行百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