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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5

기본정보
· 유형분류 고문서-교령류-고신
· 내용분류 정치/행정-임면-고신
· 작성주체 발급자 : 순조(純祖) / 수취자 : 김양묵(金養默)
· 작성시기 道光十二年十二月二十日 (1832)
·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종로구
· 형태사항 크기 : 53.4 X 73.3 / 인장 :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 소장처 현소장처 :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 원소장처 :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정의

1832년(순조 32) 12월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조봉대부(朝奉大夫) 행(行)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해제
1832년(순조 32) 12월 20일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조봉대부(朝奉大夫) 행(行)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조봉대부는 종4품 하계의 품계이다. 성균관전적은 정6품 관직이다. 조봉대부의 품계가 관직인 성균관전적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한편, 문서 배면(背面)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貞益'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서리이며, 김정익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의 배면을 보면 김정익뿐만 아니라 김형복, 김정호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성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원문텍스트
敎旨
金養黙朝奉
大夫行成均館
典籍


道光十二年十二月二十日

[官印]

吏吏金貞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