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순조 32) 7월 이조(吏曹)에서 왕의 명령을 받들어 승문원저작(承文院著作) 김양묵(金養默)을 통덕랑(通德郞) 승문원박사 겸 봉상시직장(承文院博士兼奉常寺直長)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첩(敎牒)이다. 교첩이란 5품 이하의 관직자에게 주어지는 임명장을 말한다.
승문원저작은 홍문관, 승문원, 교서관 등에서 근무하던 정8품직 관리를 말하며, 통덕랑(通德郞)은 정5품 문산계이다. 그리고 승문원박사는 정7품직이다. 따라서 김양묵은 정8품직에서 정7품직으로 승진한 셈이다. 김양묵은 1829년(순조 29)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였다.
한편 문서의 배면(背面)을 보면 '이〃(吏〃) 김정호(金貞浩) '라는 기록이 있다. '이이(吏吏)'는, 이조(吏曹)의 서리(胥吏)를 지칭하는데, 흔히 단골, 단골서리, 단골리로도 불렸다. 즉 김양묵의 고신을 작성해 준 사람이 김정호였다.
김양묵은 김응상(金膺相)의 아들로, 현재 부안(扶安)에 있는 김응상의 후손가에는 김응상의 고신 8점을 포함하여 그의 처와 부, 조, 증조가 받았던 고신 또는 추증교지 12점, 김응상의 호구단자 7점, 그리고 아들 김양묵의 고신 16점과 차첩(差帖) 2점, 문과 홍패(紅牌)와 시권(試券) 등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