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봄에 柳日榮이 작성한 門案의 序文이다. 문서의 내용에 따르면 우리 집안은 이미 족보가 있지만 案을 어찌 그만둘 수 있겠냐고 하면서 우리 21세조 戶長公(柳英)이 처음으로 高伊의 부곡에 살았다고 하였다. 고이는 지금의 고흥으로 호장공의 6세손 英密公府君(柳淸臣)이 문과에 급제하여 정승이 되어 府院君에 봉해짐으로 部曲이 縣으로 승격되고 高伊를 高興으로 고치었다고 한다. 영밀공 이후에 高興柳氏가 되었으며 이로부터 분파가 나뉘었다. 고흥은 先祖의 자취가 일어난 땅이고, 貫居之鄕으로 지금 우리 門長이 發議하여 聚族하니 옛사람들의 花樹會와 같다고 하면서 昭穆의 차례에 나이를 따져서 마침내 問安 1책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서술하였다.
류일영(柳日榮)은 자가 달부(達夫)이고 자호는 창명(滄溟)이다. 1767년에 태어나 1837년에 사망하였다. 아버지는 류경(柳坰)이고, 형제로는 형 必榮과 동생 思榮, 宗榮, 여동생이 있다. 배우자는 礪山宋氏이다. 信庵實記와 誠齋年譜를 편찬하였고, 문집으로 滄溟遺稿가 있다.○원문
門案序
吾家旣有譜矣又何事於案于譜所以放先世記後承也案
所以敍時人述嘉會也譜雖作矣案烏得已乎噫我家之受
姓爲柳不知自何代始而其問世代之振不振又未可考矣前
乎高興以何鄕爲貫以何地爲居而自吾二十一世祖戶長公始
有傳焉蓋居高伊之部曲高伊卽令之興陽也戶長公之
六世孫英密公府君起於高伊大闡爲政丞封府院君以是之
故陞部曲爲縣改高伊爲高興英密公之後遂大昌爲高興柳
氏自是以來世有分派環東土數千里之內殆將遍焉而無非冠
儒衣儒之人則先世之積善種德蓋可驗矣高興卽先祖發
跡之地而又後人貫居之鄕則實異諸凡他人奠接之比也居是
之鄕者宜乎宗法之自別矣此案之所以作也嗚呼族雖有遠近
人雖有賢愚推溯以究則俱是一家之人豈可以今視今而不
顧其同根一源之義哉今吾門長發議聚族爲古人花樹之
會而序昭穆講年齒遂成門案一冊入是案者緬先世積
累之功思後承繼述之業罔或睽異罔或違越每以循循雅
飭自成家範則此非一門之幸他人之觀瞻哉凡我同案盍
各勉之勢辛巳春案末日榮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