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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 1639년 5월 3일 관문(關文)(崇德四年五月初三日 關文)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자료ID HIKS_OB_F1047-01-220201.TXT.0114
1639년 5월 3일 관문(關文)
114 의정부(議政府) 사인사(舍人司)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 숨김없이 직언(直言)을 바치라는 주상의 전교를 살펴서 시행하고 각 진포(鎭浦)에도 알릴 것.

기묘년(1639, 인조 17) 5월 10일 도착.

의정부(議政府) 사인사(舍人司)가 직언(直言)을 구하는 일 때문에 보낸다.
"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5월 2일에 동부승지(同副承旨) 신(臣) 박수홍(朴守弘)이 공경히 받은 전지(傳旨)에 이르기를,
'다음과 같이 전교(傳敎)한다.
「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이치는 털끝조차도 용납할 틈이 없을 정도로 긴밀하여 사람이 사특한 짓을 행하면 하늘이 반드시 위엄을 보여 경고하니, 북채로 북을 치면 곧바로 소리가 나는 것이나 형체가 있으면 곧바로 그림자가 나타나고 소리를 지르면 곧바로 메아리가 울리는 것으로도 하늘의 빠른 반응을 비유하기에 부족하다.주 235) 내가 외람되이 백성에게 군림한 지 이제 17년이 되었는데, 항상 삼가고 두려워하여 마치 썩은 새끼줄로 여섯 마리의 말을 모는 것처럼 위태롭게 여겼다.주 236)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위해 근면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능한 최선을 다하였으나, 학문은 나아갈 방향을 몰라 기질(氣質)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 없었고,주 237) 마음은 정욕(情慾)에 가려져서 통치의 주요 방도에 통달하지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하늘을 공경하였지만 하늘의 분노는 그치지 않았고, 백성을 위해 근면하였지만 백성의 원망은 날이 갈수록 불어났다. 재앙이 보고되지 않는 때가 없었으나 나는 여전히 죄를 몰랐고, 화란이 지금 세 번이나 발생하였으나 나는 여전히 잘못을 고치지 못하였다. 그러니 깊은 연못에 임하고 엷은 얼음을 건너는 것처럼 아득하여 끝이 없다.주 238) 지금 내게 위로는 삼공(三公)과 경사(卿士), 아래로는 노복(奴僕)과 집사(執事)로부터 재야의 벼슬하지 않는 선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의 부족한 점을 서로 바로잡아 주지 못하여 끝내 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면, 이것도 배를 같이 타고 가는 사람이 앉아서 구경만 한 채 구원하지 않아 서로 빠져 죽는 지경에 이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주 239)
지금 큰 난리를 겪고 난 뒤에 큰 재앙들이 거듭 발생하였는데, 작년에 있었던 가뭄의 참혹한 피해는 근래에 없었던 변고였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비축해놓았던 비용은 진휼을 논의할 때에 벌써 바닥이 나서, 겨우 살아남은 가엾은 우리 백성만 아직도 도로에서 굶어 죽고 있으니, 나의 마음이 마치 질병을 앓는 것처럼 몹시 아플 뿐만이 아니다. 그나마 양맥(兩麥 보리와 밀)이 다소 무성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서 날마다 수확하기만 바라고 있었는데, 5일이나 비가 내리지 않고 10일이나 비가 내리지 않더니 벌써 40여 일이나 되었다. 그리하여 이삭이 이미 팬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였고, 아직 이삭이 패지 않은 것은 말라서 다 죽었으며, 땅에 심은 오곡(五穀 쌀, 보리, 콩, 조, 기장)은 땅이 갈라져서 터졌고, 아직 파종하지 않은 온갖 곡식들도 쟁기질을 멈추고 파종을 포기하였다. 백성의 굶주려 죽은 시체가 골짜기에 가득 찰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니, 미약한 나 한 사람이 또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이러한 지경에 이르고 보니, 나는 살고 싶지가 않다.
침전(寢殿)을 피해 거처하는 일, 평소에 먹던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는 일, 술을 마시지 않는 일 등은 이미 거행하기는 하였으나, 이런 것들은 자신을 수양하고 성찰하는 방도에 있어서 그저 말단적인 일일 뿐이니, 이런 것들도 어떻게 하늘의 뜻에 감응하여 재앙을 그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다음과 같이 바란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끓는 물에 빠지거나 타는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다급한 나의 상황을 가엾게 여겨서, 그대들의 진실한 마음을 펼쳐 보이고 각각 원대한 계책을 힘껏 세워서, 출구가 막힌 나에게 길을 열어주고 길을 잃고 헤매는 나에게 길을 가리켜 주라. 나의 과실이나 정치의 하자와 관계된 것들을 숨기지 말고 정직하게 지적하고 할 말을 다하라. 그리하여 우매한 자질을 가진 내가 바로잡아 주는 그대들의 힘에 의지하여 조금이나마 깨달을 길을 찾아서 개과천선할 수 있다면, 아마도 하늘의 마음을 다소나마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백성의 원망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어서 은택이 내리기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와 근심을 함께하는 묘당(廟堂)의 한두 신하들은 나의 지극한 뜻을 깨닫고서 서울과 지방에 반포하여 모두 들어서 알게 하기 바란다.」
라고 의정부에 내려주라.'
라고 하였다. 전지의 내용을 잘 살펴서 시행하되, 도내 각 진포(鎭浦)에도 알려주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
숭덕 4년 5월 3일.주 240)
주석 235)
『논어집주(論語集註)』 「자장(子張)」의 주(註)에 인용된 사씨(謝氏)의 말에 '부자(夫子)께서 국가를 얻으셨다면 백성을 고무시키고 감동시키는 교화가 북채로 북을 울리면 곧바로 소리가 나는 것이나 형체가 있으면 곧바로 그림자가 나타나고 소리를 지르면 곧바로 메아리가 울리는 것보다 빠르다.[夫子之得邦家者其鼓舞群動捷於桴鼓影響]'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주석 236)
『서경(書經)』의 구절을 인용하여 임금으로서 인조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서경』 「우서(虞書)」 〈고요모(皐陶謨)〉에서는 고요(皐陶)가 우(禹)에게 '안일과 욕심으로 제후(諸侯)들을 가르치지 마시어 삼가고 두려워하소서![無敎逸欲有邦兢兢業業]'라고 하였고, 『서경』 「하서(夏書)」 〈오자지가(五子之歌)〉에서는 하(夏)나라의 태강(太康)이 안일과 향락에 빠졌다가 후예(后羿)에게 폐위당하였는데, 태강의 다섯 아우가 우(禹)임금의 훈계를 인용하면서 노래하기를, '내가 수많은 백성 위에 임하는 것은 마치 썩은 새끼줄로 여섯 마리의 말을 모는 것처럼 조심스러우니, 백성의 윗사람으로 있는 자로서 어떻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予臨兆民懍乎若朽索之馭六馬爲人上者奈何不敬]'라고 하였다.
주석 237)
중국 송(宋)나라의 장재(張載)는 인간의 본성을 악이 없고 순전히 선만 있는 본연지성(本然之性)과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누었다. 본연지성은 모든 사람이 본래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착하고 평등한 천성(天性)을 가리키며, 기질지성은 형체가 갖추어진 뒤에 생긴 정욕(情慾)이 포함된 본성을 가리킨다. 따라서 기질지성을 잘 수양해야만 본연지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학설은 이후 정이(程頤)와 주희(朱熹)로 이어지면서 성리학(性理學)의 대표적인 이론이 되었다. 『張子全書』 卷3 「誠明篇」 第6; 『性理大全』 卷5 「正蒙」 〈誠明〉.
주석 238)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민지십(小旻之什)〉 '소완(小宛)'에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깊은 연못에 임한 것처럼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것처럼 하였다.[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冰]'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주석 239)
『시경』 「대아(大雅)」 〈탕지십(蕩之什)〉 '상유(桑楡)'에 '어찌 선할 수 있겠는가! 서로 빠져 죽고 말뿐이로다[其何能淑載胥及溺]'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주석 240)
『승정원일기』 인조 17년 5월 2일에도 동일한 인조의 전교(傳敎)가 수록되어 있다.
崇德四年五月初三日 關文
議政府舍人司爲求言事.
"崇德四年五月初二日, 同副承旨臣朴守弘敬奉傳旨, '「王若曰. 於戲! 天人之理, 間不容髮, 人之作慝, 天必動威以警之, 桴鼓影響, 不足以喩其疾. 予之忝臨兆民, 十有七年于玆, 兢兢業業, 凜凜乎若朽索之御六馬. 凡所以敬天而勤民者, 靡所不用其極, 而學未知方, 無以變氣質之性; 心有所蔽, 不能通治道之要. 敬天而天怒未已; 勤民而民怨日滋. 災沴靡辰不報, 而予猶不能知罪; 禍亂今已三作, 而猶不能改轍. 茫茫然若涉淵氷, 其無津涘. 今我上而股肱卿士, 下而陪僕執事, 以至草野韋布之士, 不能交修不逮, 終致淪喪, 則亦何異同舟之人坐視不救而載胥及溺者哉! 卽今大亂之餘, 大孽荐作, 上年旱魃之酷, 近古所無之變. 公私儲積, 已竭於議賑, 而哀我孑遺之民, 尙有道路之餓莩. 予心恫瘝, 不啻若疚疾. 惟幸兩麥稍茂, 日望登場, 而五日不雨, 十日不雨, 已至於四十餘日. 已秀者, 不能成實, 未秀者, 枯損且盡, 五種之入土者, 已龜坼矣, 百穀之未播者, 又輟耒矣. 民之塡壑, 若執左契, 眇眇予一人, 又將疇依! 到此地頭, 予欲無生. 如避殿、減膳、禁酒等, 旣已擧行, 而其於修省之道, 直是末務, 亦何能應天弭災哉! 尙望愛君憂國之人, 肯恤予湯火之急, 敷爾腎腸, 各盡訏謨, 開予茅塞, 指予迷途. 凡係予之闕失、政之疵纇, 直斥極言, 縻有所諱. 俾予愚昧之質, 賴爾匡救之力, 稍尋一分開悟路經得以遷改, 則庶幾天心可以少豫, 民怨可以少紓, 而膏澤之降, 或可望矣. 惟我一二廟堂同憂之臣, 體予至意, 布告中外, 咸使聞知.」爲只爲, 下議政府爲良如敎.'傳敎事是去有等以. 傳旨內事意, 奉審施行爲乎矣, 道內各鎭、浦良中, 亦爲知悉向事. 合行云云."
崇德四年五月初三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