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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 1638년 11월 7일 전문(箋文)(崇德三年十一月初七日 箋文)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자료ID HIKS_OB_F1047-01-220201.TXT.0092
1638년 11월 7일 전문(箋文)
092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전문(箋文)
: 인조의 탄신을 하례함.

절충장군(折衝將軍) 경기수군절도사(京畿水軍節度使) 겸(兼) 교동도호부사(喬桐都護府使) 삼도통어사(三道統禦使) 신(臣) 나덕헌(羅德憲)이주 153) 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11월 7일 탄신(誕辰)을 맞아 삼가 전문(箋文)을 올려 하례를 드립니다. 신 덕헌은주 154) 참으로 기쁜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말씀을 올립니다.
"삼가 아룁니다. 양(陽)의 기운이 돌아오는 계절에 속하여주 155) 임금의 덕을 누리는 것에 부합하고, 탄생하신 날이 돌아와 새로운 책력(冊曆)을 반포하는 경사와 합치되니,주 156) 동물과 식물이 똑같이 기뻐하고 신하와 백성은 기쁨이 넘칩니다. 공손히 생각건대, 주상전하께서는【홍색 찌지[紅籤]에 적었다.주 157)】 도덕(道德)이 있는 자손으로서 비교할 상대가 없는 무공(武功)을 세우시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 세상을 구제하는 아름다운 시기를 만나 하늘을 본받아 복을 똑같이 누리시고, 광대하고 심원한 어진 소문을 드날려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합니다. 이에 탄생하신 계절에 이르러 창대한 상서로움을 뚜렷이 받으셨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신은 외람되이 재주 없는 사람으로서주 158) 경기의 진보(鎭堡)를 지키고 있는데, 영원히 귀감이 될 만한 글을 기록해서 바쳐야 하지만 당나라 신하와 같은 충성을 바치지 못하고,주 159) 참으로 만세를 부르며 송축하여 한(漢)나라 궁전에서 축원하던 마음을 멀리서나마 표현합니다.주 160) 신이 하늘 같은 성상을 바라보며 매우 감격스럽고 두려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주 161) 삼가 전문을 올려 하례를 드립니다."
숭덕 3년 11월 7일에 절충장군 경기수군절도사 겸 교동도호부사 삼도통어사 신 나덕헌이주 162) 삼가 전문을 올립니다.
주석 153)
저본에는 원문 '德憲' 2자가 누락되어 있으나, 『전율통보(典律通補)』 「별편(別編)」 〈본조문자식(本朝文字式)〉 '진전식(進箋式)'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주석 154)
저본에는 원문 '德憲' 2자가 '〇〇'으로 되어 있으나,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주석 155)
'양(陽)의 기운이 돌아오는 계절'은 동짓달인 11월을 가리킨다. 고대에는 『주역(周易)』의 괘(卦)를 12개월의 각 달과 연결시켰는데, 그중 동지가 든 11월은 복괘(復卦)에 해당하였다. 복괘는 상괘(上卦)가 곤괘(坤卦)이고 하괘(下卦)가 진괘(震卦)로, 6개의 효(爻) 중 맨 아래의 효만 양효(陽爻)이고 나머지 다섯 개의 효는 모두 음효(陰爻)이다. 복괘의 형상이 음(陰)의 기운이 극성한 가운데 양의 기운 하나가 아래에서 싹트는 것처럼 생겼으므로, 양의 기운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동짓달을 복괘로 표현했던 것이다.
주석 156)
중국의 고대에는 한 해의 시작을 12지 중 어느 달에 시작하느냐에 따라 3가지로 나뉘었다. 주(周)나라는 하늘을 상징하는 자월(子月 11월)에 시작하였고, 은(殷)나라는 땅을 상징하는 축월(丑月 12월)에 시작하였으며, 하(夏)나라는 사람을 상징하는 인월(寅月 1월)에 시작하였다. 공자(孔子)는 그중 사람을 위주로 하는 하나라의 책력(冊曆)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고대에는 양의 기운이 생겨나는 동지(冬至)의 시작을 11월의 동짓날 자시 반(子時半)이라고 보았다. 그에 따라 조선 시대에는 관상감(觀象監)에서 동짓날에 책력을 만들어 바치면 국왕이 동문지보(同文之寶)를 찍어 신하들에게 나눠 주었으며, 그 책력을 '동지력[冬至曆]'이라고 불렀다. 『論語』 「衛靈公」; 『諸家曆象集』 「曆法」 〈性理大全〉; 『星湖全集』 「答禹大來」 〈甲戌〉; 『東國歲時記』 「十一月」 〈冬至〉; 『海東竹枝』 「名節風俗」.
주석 157)
전문(箋文)의 문서 형식에 의하면 '주상전하(主上殿下)' 또는 '존호(尊號)+주상전하(主上殿下)'는 줄을 바꾸어서 적되, 홍색 찌지[紅籤]에 적어서 붙였다. 『典律通補』 「別編」 〈本朝文字式〉 '進箋式'; 이강욱, 『조선시대문서개론』 상-신민의 상달문서-, 은대사랑, 2021, 475~479쪽.
주석 158)
저본에는 원문 '謏' 1자가 '謝'1자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주석 159)
당(唐)나라의 재상 장구령(張九齡)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충신인 굴원(屈原)이 간신의 모함을 받아 쫓겨난 뒤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이 고사에 따라 당(唐)나라의 신하들이 청동으로 거울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쳤다. 거울이 모든 사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임금도 충신과 간신을 잘 구분하라는 의미였다. 현종(玄宗) 때에도 천추절(千秋節)에 신하들이 모두 청동 거울을 바쳤으나, 당시의 재상 장구령만은 거울 대신 『천추금감록(千秋金鑑錄)』을 지어서 바쳤다. 『천추금감록』은 임금의 마음을 깨우쳐서 좋은 정치를 베풀기를 바라는 내용이었다. 『新唐書』 卷126 「張九齡列傳」.
주석 160)
한(漢)나라 무제(武帝)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무제가 화산(華山)에서 숭산(嵩山)에 이르러 제사를 지낼 때 이졸(吏卒)들이 모두 어디선가 세 차례 만세 부르는 소리를 들은 듯하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호숭(呼嵩)'은 임금이 장수하기를 축원하는 의미로 쓰였다. 『漢書』 卷6 「武帝紀」.
주석 161)
저본에는 원문 '激' 1자가 '謝' 1자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 및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주석 162)
저본에는 원문 '德憲' 2자가 '〇〇'으로 되어 있으나,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崇德三年十一月初七日 箋文
折衝將軍京畿水軍節度使兼喬桐都護府使三道統禦使臣羅德憲, 恭遇崇德三年十一月初七日誕辰, 謹奉箋稱賀者. 臣德憲誠歡誠忭稽首稽首上言.
"伏以. 序屬雷復, 載符龍德之亨; 日回虹流, 聿叶鳳紀之慶, 歡均動植, 喜溢臣民. 恭惟主上殿下[紅籤], 有道湯孫, 無競武烈, 履開濟之嘉會, 憲天齊休; 騰廣淵之仁聲, 與民同樂. 爰屆誕彌之節, 顯膺昌熾之祥. 伏念臣猥以謏才, 叨守畿鎭, 錄千秋而獻鑑, 未效唐臣之藎忠; 信萬歲以呼嵩, 遙申漢殿之祈祝. 臣無任望天仰聖激切屛營之至. 謹奉箋稱賀以聞."
崇德三年十一月初七日, 折衝將軍京畿水軍節度使兼喬桐都護府使三道統禦使臣羅德憲謹上箋.
❶ 德憲 : 저본에는 원문이 누락되어 있으나, 『전율통보(典律通補)』 「별편(別編)」 〈본조문자식(本朝文字式)〉 '진전식(進箋式)'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❷ 德憲 : 저본에는 원문이 '〇〇'으로 되어 있으나,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❸ 謏 : 저본에는 원문이 '謝'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❹ 激 : 저본에는 원문이 '謝'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 및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❺ 德憲 : 저본에는 원문이 '〇〇'으로 되어 있으나,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