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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 1638년 6월 19일 장계(狀啓)(崇德三年六月十九日 狀啓)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1638년 6월 19일 장계(狀啓)
064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장계(狀啓)
: 전선(戰船)과 병선(兵船) 4척은 공사를 완료하였고, 군량미(軍糧米) 400섬 등을 별도로 갖추어 대변고(待變庫)에 들여놓았으므로 호조에서 회록(會錄)하게 해줄 것.
〈피봉〉 승정원(承政院)이 개봉할 것.
"신이 작년 6월에 부임하여 본영(本營)의 전선(戰船), 병선(兵船), 사후선(伺候船) 등을 하나하나 점검해보니, 제작한 지가 오래되어 썩은 것이 있었으므로 전선 2척, 병선, 사후선은 즉시 썩은 부분을 철거하여 차례대로 개조하고 그러한 연유를 주상께 급히 보고하였습니다.주 116) 그리고 비변사가 복계(覆啓)한 결과를 통지한 공문에 따라 모두 양남(兩南)에서 선박을 제작하는 제도에 따라 전선을 새로 제작해서 경기의 전선을 제작하는 표준으로 삼으려고 계획하였습니다.주 117) 그런데 작년 가을과 겨울에 칙사(勅使)를 접대하는 일 때문에 선박을 제작할 여력이 없다가, 얼음이 녹자마자 바로 올해 1월 20일에 요포(料布)를 모으고 군관(軍官)을 별도로 정해 안면곶[安眠串]으로 내려보내면서
'솜씨 좋은 선박의 장인(匠人)과 이장(耳匠)을 모으고 선박 목재를 산에서 끌어내릴 군인 등을 고용하여 기한을 정해놓고서 공사를 독촉하고, 제작을 마치면 돌아와서 정박시키라.'
라고 분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안면곶에 사는 백성이 전에는 선박을 제작하는 일에 고용되어 생계를 유지하다가, 올봄부터는 안면곶 안에 염장(鹽場)을 설치하였기 때문에 모두 소금 굽는 일에 의탁하여 소속되었으므로 모집할 군인을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먼 지역의 공사를 신이 직접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서 제때에 제작하지 못하고, 3개월째가 되어서야 겨우 제작을 마치고 돌아와서 정박시켰습니다. 배 위에 판옥(板屋)을 장치하는 일은 신이 직접 감독하여 별도로 제작하였는데, 공장(工匠)과 역군(役軍) 등의 요포로 쌀 57섬과 무명 10동(同) 반을 들여 겨우 완료하였습니다. 대체로 본영의 전선은 평상시에는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곳에 정박해있는데, 물이 빠질 때면 선체가 큰 전선을 강가에 매어두고 있으며 전선을 숨겨둘 장소가 별달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봄과 가을에 수영(水營) 소재지에 사는 약간의 군병과 백성으로 으레 포구를 파내게 하였는데, 한 달 안에 전선이 물에 떠 있는 시기는 적고 매어 두는 시기가 많습니다. 선박 위에 설치할 방패(防牌)와 각종 기구들을 모두 옛 선박의 제도에 따라 제작하면 체제가 무겁고 크므로, 잘못되어 바람에 요동칠 경우에는 반드시 손상되어 파괴될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두께를 참작하여, 선박 위에 설치할 방패는 걸어둘 수도 있고 뉘여 놓을 수도 있게 별도로 제작해서 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기타 회부(會付)한 병선들도 신이 개삭(改槊)하였을지라도 삼판(杉板)이 견고하지 못하였으므로, 해당 병선 3척을 모두 전선과 함께 일시에 삼판을 개조하여 4척의 선박은 공장들이 이미 완성하였습니다. 본영의 회부한 전선과 병선 등 각종 선박 15척 안에서 2척은 전(前) 경기수사 신경진(申景珍)이 새로 제작하였고, 그 나머지 13척은 개삭할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신이 부임한 뒤에 새로 제작하기도 하고 나무를 덧대 개삭하기도 하여 모두 공사를 마쳤습니다. 본영의 회부한 군량미(軍糧米)는 원래 수량 900섬 안에서 연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413섬은 군병 등에게 급료로 지급하고 회감(會減)하였고, 현재 남아있는 군량미는 526섬뿐이어서, 잘못되어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군병에게 급료를 지급할 때 부족할 우려가 있을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이 부임한 초기부터 오늘까지 쌀과 베, 소금과 장(醬) 등의 물품을 애써 마련하여 모으고 군량미 400섬을 별도로 갖추어 대변고(待變庫)에 들여놓았으니, 호조에서 회록(會錄)하여 시행할 것을 아울러 급히 보고합니다. 차례대로 잘 아뢰어 주시기 바랍니다."
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6월 19일에 봉해서 올림.
▶ 어휘 해설 ◀
❶ 염장(鹽場) : 소금을 만들기 위하여 바닷물을 끌어들여 논처럼 만든 곳으로, 염전(鹽田)이라고도 하였다. 바닷물을 여기에 모아서 막아 놓고, 햇볕에 수분을 증발시켜서 소금을 얻었다.
❷ 판옥(板屋) : 전선의 지붕을 널빤지로 덮은 것을 가리킨다.
❸ 삼판(杉板) : 선박의 좌우 뱃전에 붙이는 널빤지를 가리킨다.
- 주석 116)
- '005 나덕헌의 장계' 참조.
- 주석 117)
- '010 비변사의 관문' 참조.
崇德三年六月十九日 狀啓
承政院開拆.
"臣上年六月到任, 本營戰·兵船、伺候船等乙, 一一點檢, 則年久腐朽者有之, 故戰船二隻、兵船、伺候船段, 卽爲撤罷鱗次改造, 緣由已爲馳啓爲白有在果. 因備邊司覆啓行移, 一依兩南船制, 新造戰船, 以爲畿輔戰船之標的事是白乎矣. 上年秋冬, 以勅使支待, 力未遑於造船, 解氷卽時, 今正月二十日, 鳩聚料布, 別定軍官, 安眠串下送, '募得善手船匠、耳匠及雇立船材曳下軍人等, 使之刻期督役, 畢造回泊.'亦分付爲白有如乎. 安眠串居民, 在前段, 造船傭役資生爲白如可, 今春始叱, 串內設鹽場乙仍于, 盡爲投屬鹽役是白乎等以, 募軍難得. 遠地之役, 非臣親自監督, 未能及時造作, 第三朔, 僅以畢造回泊爲白有去乙. 船上板屋粧修事段, 臣親自監董, 別樣制作, 而工匠、役軍等料布段, 米五十七石、木十同半以, 僅僅完了爲白有齊. 大槪本營戰船, 常時留泊於潮汐出入之處, 水落之時, 則體大戰船, 掛置江邊, 而他無藏船之所. 不得已春秋若干營下軍民, 例爲堀浦爲白乎矣, 一朔之內, 浮水之時少, 掛置之日多. 船上防牌、各樣諸具乙, 一依古船制造作, 則體制重大, 脫有風擺, 必致傷破落是白乎去. 其間參酌厚薄, 船上防牌乙, 或掛或臥, 以爲別制避風之地爲白有齊. 其他會付兵船等段置, 臣已爲改槊爲白乎喩良置, 杉板不爲牢固是白乎等以, 同兵船三隻乙, 竝只戰船一時改造杉板, 四隻之船, 工已斷手爲白有在果. 本營會付戰兵各樣船十五隻內二隻, 前水使申景珍新造, 其餘十三隻段, 改槊當次乙仍于, 臣到任之後, 或新造, 或添木改槊, 竝爲畢役爲白有齊. 本營會付軍糧米, 元數九百石內, 年前兵亂時, 四百十三石段, 軍兵等放料, 已爲會減爲白有遣, 時留在軍糧, 只五百二十六石是白去等, 脫有緩急, 軍兵放料之際, 恐有缺乏之患. 臣自到任之初至于今日, 斗米、尺布、鹽醢等物乙, 拮据收合, 別備軍糧米四百石, 入置待變庫爲白有置, 令該曹會錄施行事, 幷以馳啓爲白臥乎事是良厼. 詮次善啓云云." 崇德三年六月十九日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