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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 1637년 7월 18일 관문(關文)(七月十八日 關文)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1637년 7월 18일 관문(關文)
019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황해도의 각 고을에 보낸 관문(關文)
: 7월과 8월 두 달은 반 달씩 입번(立番)하도록 통지하여 수군(水軍)을 올려보내고 9월부터는 정해진 달수대로 입번하도록 통지할 것.
시급히 거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
"본영(本營) 소속의 황해도 연안(延安)에 거주하는 수군(水軍) 16명을 입번(立番)시키기 위해 올려보낸다는 연안부의 보고 문서와 소강첨사(所江僉使)의 보고에 의거하여 황해감사(黃海監司)가 보내온 관문(關文) 내용을 요약하면,
'해당 수군을 각 진포(鎭浦)가 똑같이 오는 4월부터 시작하여, 1월에 입번을 거른 수군으로 절반을 줄여서 마련하여 시기를 물려서 입번시키라고 통지하여 거행하되, 3월에 입번해야 할 수군도 차례차례 시기를 물려서 마련하여 시행하라.'주 50)
라고 하였다. 연안부는 본영 소속인 수군을 1월부터 시작하여 절반을 줄여서 마련하였고, 3월에 입번해야 할 수군도 차례차례 시기를 물려 마련하였으며, 수군의 생존 여부를 정리한 책자 중 현재 생존해 있는 수군을 빠짐없이 올려보냈다. 기타 각 고을도 본도(本道)의 순찰사(巡察使)가 분부하는 명령을 내렸으니 본도 각 진포에 입번할 수군을 반드시 올려보내야 한다. 그러나 본영이 예전에 관문을 보내 재촉하였는데도 수군의 생존 여부를 정리한 책자만 보내 책임을 메우고, 달수를 줄여서 마련하여 시기를 물려 입번시키도록 한 수군은 한 명도 올려보내지 않았다. 군정(軍政)의 중대한 사안을 예사롭게 여겨서는 안 되는데도 거행한 상황에 대해 여태까지 이렇다저렇다 말이 없으니, 몹시 합당치 못한 일이다. 이번에 도착한 비변사(備邊司)가 본영의 장계(狀啓)에 의거하여 회계(回啓) 결과를 통지한 관문 내용을 요약하면,
'장계에 이르기를,
「7월과 8월은 달수를 줄여서 마련하여 입번시켰다가 9월부터 시작하여 전례대로 정해진 달수대로 입번시키게 해주소서.」
라고 하였다. 그 장계에 대해 회계한 본사(本司)의 계목(啓目)에 아뢰기를,
「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각 진포의 수많은 전선(戰船)과 병선(兵船)은 강변에 매어둔 채 난리를 겪고 난 뒤로는 간수할 사람이 없어 폐기할 물건이 될 상황이니 몹시 고민스러운 일입니다. 수리하는 일이 하루가 시급하니 앞으로 칡을 채취하고 초둔(草芚)을 제작하는 등의 일을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조치해야, 겨울을 넘기고 봄과 여름까지도 사용할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잘못되어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는 용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주 51)
라고 하였다. 모두 묘당(廟堂)이 주상의 결정을 받거나 재가받은 사안 대로 본영의 소속 및 각 진포의 수군 등을 생존해 있는 숫자로 7월과 8월에는 달수를 줄여서 입번시키고 9월부터는 달수에 맞추어 입번하게 하라고 하나하나 통지하라. 그리고 7월부터 시작하여 입번시키기 위해 실색리(實色吏)가 영솔하여 책자에 기록된 숫자대로 넘겨주어 위에 올려보내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
이상은 황해도 각 고을에 7월 18일에 보낸 관문임.
- 주석 50)
- '011 나덕헌의 장계' 참조.
- 주석 51)
- '016 비변사의 관문' 참조.
七月十八日 關文
爲急急擧行事.
"本營屬黃海道延安水軍十六名立番起送事同府報狀及所江僉使所報據黃海監司關內節該, '同水軍, 各浦一體, 來四月朔爲始, 正月朔闕番水軍以, 減半磨鍊退立事, 知委擧行爲乎矣, 三月朔當番水軍以, 次次退磨鍊施行.'亦爲有等以. 延安府段, 本營屬水軍乙, 正月爲始, 減半磨鍊, 三月朔當番水軍段置, 次次退磨鍊. 存沒成冊時存水軍乙, 無遺起送爲有去等, 其他各官, 本道巡察使, 已爲分付之令果, 本道各鎭浦入番水軍乙, 必爲起送, 而本營曾已論關催促爲乎矣, 存沒成冊叱分, 塞責輸送爲遣, 減朔磨鍊退立番水軍等, 無一名起送爲臥乎所. 軍政重事乙, 不可置諸尋常, 而擧行形止乙, 迄無皁白, 事甚不當爲置. 節到付備邊司本營狀啓據回啓關內節該, '「七、八月段, 減朔磨鍊立番爲如可, 自九月爲始, 依前準朔立番.」事司啓目, 「粘連啓下是置有亦. 各鎭浦許多戰、兵船, 掛置江邊, 自經亂之後, 看護無人, 將爲棄物, 事甚竭悶. 修緝之擧, 一日爲急, 前頭葛物採取草芚造作, 未寒前措備爲良沙, 以爲經冬春夏至用之俱, 脫有緩急, 可作不時之用.」'是置. 一依廟堂定奪、啓下公事, 本營屬及各鎭浦水軍等乙, 存沒數以, 七、八月減朔立番, 自九月準朔立番事乙, 一一知委, 七月爲始立番次以, 實色吏押領, 成冊準授上使向事. 合行云云."
已上黃海道各官, 七月十八日, 行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