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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 1637년 7월 6일 장계(狀啓)(崇德二年七月初六日 狀啓)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자료ID HIKS_OB_F1047-01-220201.TXT.0007
1637년 7월 6일 장계(狀啓)
007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장계(狀啓)
철곶[鐵串]의 진포(鎭浦)를 설치할 곳이 모두 백성의 전답이므로 비변사에서 대책을 지시해줄 것.

〈피봉〉 승정원(承政院)이 개봉할 것.
"이번에 도착한 철곶첨사[鐵串僉使] 박한남(朴翰男)의 첩정(牒呈)에 이르기를,
'본진(本鎭)이 작년 10월에 초지(草芝)와 제물(濟物) 두 진포(鎭浦)를 혁파하여 강화(江華) 지역의 승천부(昇天府)에 옮겨 설치된 뒤에 또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거주할 곳을 미처 짓지 못하였으므로, 우선 부락 백성의 집에 들어가서 거처해야만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집을 짓고 진포를 설치할 곳은 모두 백성의 전답이니, 첨사로서는 스스로 결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서 너무나 걱정스럽습니다. 이러한 연유를 장계(狀啓)로 보고하여 주상의 결정을 받아주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부임한 지 오래되지 않은 상태에서 즉시 전선(戰船)과 사후선(伺候船)을 개조하는 공사를 시작하였으므로, 신이 관할하는 각 진포는 아직 순찰하여 불편한지의 여부를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철곶첨사가 이와 같은 내용으로 보고하였으니, 묘당(廟堂)에서 주상의 결정을 받아 지시하게 해주소서. 차례대로주 25) 잘 아뢰어 주시기 바랍니다."
숭덕(崇德) 2년(1637, 인조 15) 7월 6일. …… 신 나덕헌.
주석 25)
저본에는 원문 '只爲詮次' 4자가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崇德二年七月初六日 狀啓
承政院開拆.
"節到付鐵串僉使朴翰男牒呈內, '本鎭亦, 上年十月分, 草芝、濟物兩浦, 撤罷移設於江華地昇天府後, 又仍兵亂, 未及造作着身之所, 先可村民家入接叱分不喩. 前頭家舍造作設鎭處, 皆是民田. 僉使以, 勢難自斷, 極爲悶慮. 將此緣由狀啓定奪爲只爲.'牒呈是白置. 臣到任未久, 卽起戰船與伺候船改造之役, 所管各鎭浦, 未及巡歷便否爲白有在果, 僉使所報內辭緣如此, 令廟堂定奪指揮爲只爲. 詮次善啓云云."
崇德二年七月初六日. 云云, 臣羅.
❶ 只爲詮次 : 저본에는 원문이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